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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9-26 21:14:31

왕십붕

1. 개요2. 생애 3. 사후
3.1. 왕십붕 기념관
4. 기타5. 대중매체에서

1. 개요

王十朋, 1112~1171
남송의 정치가이자 시인, 애국명신이다. 수차례 조정을 정비하고 금나라의 항장들을 기용할 것을 건의한 뒤 송 효종에게 금나라에 항거하고 고토를 수복할 계책을 세운다. 자는 귀령(龜齡), 호는 매계(梅溪),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매계집 등이 있다.

2. 생애

송 휘종 정화 2년 10월 18일(1112년 11월 9일) 온주(溫州) 낙청사 도좌원(지금의 절강성 낙청시)에서 태어났다.

왕십붕은 어렸을 때 영오강기하여 일곱 살에 학당에 들어갔고, 열네 살에 녹암향숙, 금계읍관, 낙청현에서 차례로 공부하여 경사를 배웠으며, 시문의 명성은 원근에 전해졌다.

어릴 적부터 세상을 걱정하며 백성을 구하려는 의지가 있었고, 17세에 정강의 변이 터지고 송 황실이 남천했다. 이후 열아홉 살 때 '북두성 못은 왕기를 돋우고 동구의 산수는 맑게 빛난다'는 명구를 썼다. 그 재능은 절남의 시단을 뒤흔들었다.

그의 나이 33세 때 고향에서 매계서원을 세워 제자를 가르쳤고 이듬해 태학에 들어갔다. 당시 남송의 정치 부패로 간신 진회가 권력을 독점하고 과거 시험장이 어두웠기 때문에 여러 번 시도하지 못했다. 소흥 25년(1155년), 진회가 죽고 2년 뒤인 소흥 27년(1157년) 왕십붕은 46세의 나이로 '권력잡기' 중흥을 상대로 송 고종으로부터 진사 제일(장원)에 올랐다. 후에 항전을 강하게 주장하고 노장 장준과 유기를 추천하였고 그로 인해 주화파로부터 배척당하여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송 효종이 즉위한 후, 지엄주에서 시작하여 소대 사봉원 외랑에 부임하지 않고, 국자사업(國子司業)으로 옮기고, 기거사를 거쳐 시어사로서 화의를 물리치고 주화파 대표이자 재상인 사호[1]를 간통, 오국 등 8대 죄목으로 탄핵하여 파직시켰다.

융흥 원년(1163년), 장준 북벌에 패하자 주화파의 비난이 분분했으나 왕십붕은 대업을 회복하는 데 일패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상소하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호 등 주에서 재난을 구제하고 폐단을 제거하여 상당한 업적을 남겼다. 건도 4년(1168년), 천주지주로 기용되었고 그 이듬해인 건도 5년(1169년) 겨울에 퇴임하였다. 그가 천주를 떠날 때, 남녀노소는 눈물을 흘리며 애써 만류했고, 요주 백성들이 왕십붕을 만류한 것을 본받아 그가 반드시 거쳐야 할 다리를 끊었다. 왕십붕은 우회할 수밖에 없었고, 사민들은 그를 선유현 풍정역으로 보냈다.

건도 7년(1171년), 태자 첨사로 임명된 뒤 용도각(龍圖閣) 학사가 되었다. 7월 3일 낙청 현의 자택에서 60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천주 사민들은 소식을 듣고 개원사에 모여 침통하게 추모하고, 동가에 왕충문사를 지어 그를 기념하였다.

3. 사후

소희 3년(1192년), 송광종에 의해 '충문(忠文)'이라는 시호를 받는다.

3.1. 왕십붕 기념관

파일:왕십붕 기념관.jpg
후대 사람들이 그의 고향 절강 성 낙청 현에 왕십붕 기념관을 세웠다.

기념관 전체는 삼퇴삼진 삼교식 마당이다. 기념관 대청은 5칸의 겹처마식 모조 건물로, 대청 양쪽 툇마루는 각각 불부헌과 불기실로 구성되어 있다. 이 둘은 기념관의 주요 전시실이며, 왕십붕의 생애사적, 시·사·문집, 연구저서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 중 불부헌은 30점의 만화로 구성된 왕십붕의 신상을 소개하며, 불기실은 24점의 도판을 통해 왕십붕의 사람됨과 생애, 성취, 그리고 명사 요인의 글씨를 보여준다. 왕십붕은 서재를 불기실이라 명명하고, 장준에게 불기실이라는 현판을 써 달라고 부탁하여 자신을 경면하였다.

기념관 정전에 왕십붕 좌상이 있고, 뒤편에는 70개 품종, 700여 그루의 매화를 심은 매계문화공원이 조성 중이다.

매화원에는 매화 재배 외에도 왕십붕 시사비 복도, 왕십붕 저서비벽, 역대 유명인들의 영매시비 700여 편이 있다.

4. 기타

5. 대중매체에서

월극 '왕십붕'에서 육금연이 왕십붕 역을 맡았다.


[1] 남송 권신이 되는 사미원의 아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