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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05-20 12:23:34

오사카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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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y(大, ruby=おお)][ruby(阪, ruby=さか)][ruby(城, ruby=じょう)] / 오사카 성 / Osaka-jo

1. 개요2. 역사3. 현대의 오사카 성4. 미디어에서5. 기타6. 관련 문서

1. 개요

오사카에 있는 성. 히메지 성, 구마모토 성과 함께, '일본 3대 명성(名城)'[1]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현대에 복원한 성이다.[2]

JR니시니혼 오사카 환상선 오사카죠코엔역(大阪城公園)이나 지하철 츄오선 타니마치욘초메역(谷町四丁目), 모리노미야역(森ノ宮), 타니마치선 텐마바시역(天満橋), 나가호리츠루미료쿠치선 오사카 비즈니스파크역이 근처에 위치해 있다. 성 자체까지는 600m 이상 떨어져있으니 좀 걸리지만 산책하기에는 딱 맞는다. 천수각이 목적이라면 오사카 비즈니스파크역이 가장 가깝다. 특히 봄에는 주변의 벚꽃 나무로 풍경이 절정을 이룬다.

일본의 성 중에서도 가장 큰 편에 속하기 때문에 주위를 한 바퀴 도는 것만 해도 지칠 수 있다. 오사카 성의 전시 자료에 따르면 현재의 오사카 성이 에도 막부에 의해 상당 부분 축소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 정말로 축소되었다고 가정하면 실제로는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2. 역사

오사카 성 부지에는 원래는 정토진종(淨土眞宗)[3]의 본산지인 이시야마혼간지(石山本願寺)가 있었다. 혼간지 세력은 천험의 요새를 구축하고 다이묘에 맞먹을 정도로 힘을 키웠으며 잇코잇키를 일으켜 오다 노부나가에 대항하였다. 하지만 오다 노부나가와의 10년에 걸친 긴 전투 끝에 이곳을 내주고 옮겨가는 조건으로 종전에 동의했다. 이 시점에 이시야마 혼간지는 불타 사라진다.

1582년 오다 노부나가가 죽고, 이후 정권을 잡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83년 수도 교토의 외항인 상업도시 오사카에 거대한 성을 건설하여 자신의 거점으로 삼았다. 히데요시가 건설한 오사카 성은 지금 남아있는 오사카 성과는 다른 것으로, 훨씬 규모가 큰 성이었다. 대규모의 이중 해자가 성을 보호하고 있었다.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은 후에도 오사카 성은 히데요시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도요토미 가에 충성하는 세력의 본거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도요토미 가문과 도쿠가와가 격돌한 1615년의 오사카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하면서 오사카 성의 건물들은 도쿠가와 측의 화포 공격 등으로 모두 소실되었고 성의 바깥 해자는 완전히 매립되었다. 자세한 것은 오사카 전투 참고.
원래는 이랬을 것이라는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건축한 오사카 성을 재현한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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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시대와 도쿠가와 시대 천수각의 비교.

일본 전역에 토목 공사가 성했던 에도 시대 초기, 에도 막부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명으로 오사카 성은 1620년부터 1629년에 걸쳐 재건되었다. 이른바 천하보청[4]의 일환. 비용은 다이묘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마련했다. 도요토미 가문의 성벽과 해자를 파괴하고 그 위에 새로운 석벽을 쌓아 옛 흔적은 사라졌다. 니노마루와 산노마루의 해자를 매립하면서 성의 전체 규모는 1/4 정도로 축소되었지만 원래 높이 약 40m이던 천수각은 새로운 위치에 58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로 완성했다. 지금의 55m 높이 천수각보다 더 큰 규모. 혼마루의 지반도 한층 돋워 더욱 웅장해 보이도록 했다. 이 정도의 대역사를 벌인 것은 오사카가 라이벌인 도요토미 가문의 중심지이기는 했지만 도요토미 가문은 멸문했고, 오사카가 서일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거대한 도시로 성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도쿠가와 막부가 오사카 일대를 직할지로 만든 것을 보면 이러한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그런데 에도 막부가 오사카 성을 허물고 성을 새로 재건했다는 사실은 시간이 지나 에도 막부 중기에 이르자 잊혀지고, 쇼와 시대까지 사람들은 오사카 성이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지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1959년의 학술 조사 과정에서 에도 막부가 다시 건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오사카 사람들이 충격을 받을 것을 염려해서 그 발표를 주저했다는 일화가 있다.

에도 막부 시절 쇼군은 에도에 머물렀으므로 정치 무대에서 오사카가 부각되는 일은 없었다. 19세기에 막부 대신 천황을 받드는 존왕양이파가 서일본을 중심으로 세력을 얻으면서 다시금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도쿠가와 이에모치 조슈 정벌 도중 오사카 성에 머무르다가 사망했으며, 대정봉환 이후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오사카 성에 잠시 들어온 적도 있다.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재건한 후에도 오사카 성은 여러 번 화재를 겪어 수리해야 했다. 결국 1665년에 낙뢰로 인해 천수가 소실되었다. 그 뒤로는 오랫동안 성이 재건되지 못하다가 근대에 와서 성터에 일본 육군 오사카 조병창과 제4사단의 건물들이 들어섰으며, 1931년[5]에야 철근 콘크리트로 재건되었다. 철골 콘크리트로 지은 것은 당시의 건축법상 방화, 내진 등을 이유로 목조 건축이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수각 부분은 현대 건축에 속한다. 1~4층은 에도 막부 시절의 양식을 따라 벽에 회칠을 했지만 5층은 도요토미 시절의 양식을 따라 검은색과 금색을 둘렀다. 꼭대기 층만 뭔가 다른 것은 이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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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철골 콘크리트로 재건 중인 오사카 성 천수각.

1945년 3월 9일에 일어난 도쿄 대공습이 일어난 지 4일 뒤에 오사카에 미 공군이 네이팜탄을 쏟아부어 성도 오사카와 함께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종전 이후에 다시 재건되었다.

3. 현대의 오사카 성

지금의 오사카 성 천수각은 겉으로는 그럴 듯하지만 실체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엘리베이터까지 들어가 있다.[6] 외관은 화려하지만 실은 4층까지는 도쿠가와 시대, 5층은 도요토미 시대의 천수각으로 혼합하여 복원해 고증오류가 심하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외관만 성이고 내부는 현대라고 말한다. 내부의 전시 공간은 유물 내용도 다소 부실하고 사진 촬영도 금지되어 있어 차라리 주변에 있는 오사카역사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천수각 자체는 오사카시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이며 전시는 부실하지만 거기서 파는 전시 도록은 꽤나 훌륭한 편이다.

천수각 주변에는 옛 오사카 시립 박물관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원래는 오사카 성에 자리잡았던 제4사단 본부 건물로, 1931년 천수각 재건과 함께 성내의 사단 본부대 소속 건물들을 집약하면서 건축되었고, 1948년부터 1958년까지는 오사카부 경찰청사로 이용되었다. 1960년 이후에는 박물관으로 쓰이다가 2001년 오사카 역사 박물관 개관과 함께 폐관되었다. 현재는 기념품 가게와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사카 성은 천수각은 제외하고 바깥만 구경하며 거니는 것도 괜찮다. 유물 설명은 거의 대부분이 영어가 병기되어 있고, 한글 설명이 있는 유물도 있다. 조선과 연관된 유물이나[7] 도록은 영문판은 있는데 한국어판은 없다. 오사카 전투에 관한 전시물도 꽤 있는데, 특히 마쓰다이라 다다나오 부대가 사나다 유키무라의 부대를 향해 돌격하는 장면을 묘사한 병풍과 그것을 재현한 미니어처 작품이 유명하다.

그 외에도 구로다 나가마사가 그리게 했다는 오사카 전투 여름의 진 그림을 설명하는 스크린도 있는데, 한국인에게 생소한 일본 전국시대 말기 오사카 성 전투에 참전한 무장들의 그림을 하나 하나 확대해가면서 설명해주는 데다가 일어, 영어, 중국어, 한국어 설명이 잘 되어 있으므로 보는 맛이 있다. 이 그림에 대한 설명만 제대로 봐도 600엔이 아깝지 않다. 하지만 박물관의 특성상 설명이 느리게 지나가기 때문에 지루해서 지나가는 관람객도 많다.

그냥 공원은 무료 입장이지만 천수각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입장료가 성인 600엔. 중학생 이하 무료(신분증 제시해야 함). 스룻토 간사이 패스를 제시하면 500엔이다. 2014년 이후 아베노믹스로 인해 100엔당 1050원도 안되는 상황이 지속되어 많이 저렴해진 편으로 특히 오사카 주유 패스(헵파이브 대관람차도 탑승 가능)를 사용 시 무료로 입장 가능하다. 천수각 3~4층 내에서는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다.

오사카 성 천수각 입구에 다다르면 엘리베이터 줄과 계단 줄이 보이는데 당연히 엘리베이터는 줄이 상당히 길어 꽤나 기다려야 하고 계단은 바로 입장 가능하다. 계단이 상당히 가팔라서 올라가려면 힘이 많이 들지만 빨리 가려면 이 길을 추천한다. 걸어가다 보면 한번에 천수각이 나오는게 아니라 층마다 들어가서 관람할 수 있다. 안을 보면 오사카 성의 역사라든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과거 같은 이야기들을 홀로그램으로 감상할 수 있고 각종 유물도 볼 수 있다.

일본 성의 진면목을 보고 싶다면 차라리 JR 니시니혼 신쾌속으로 40분쯤 걸리는 히메지 성이나 조금 마이너하지만 더욱 잘 보존되어 있는 히코네 성으로 가자. 가까운 교토에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니조 성이 있지만 니조 성의 천수각은 소실된 상태이므로 천수각의 화려함을 감상할 수는 없다. 대신 니조 성은 니노마루 궁전의 화려한 외관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성 내 궁전의 실내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또한 정원이 오사카 성의 니시노마루 정원보다 훨씬 잘 조성되어 있으므로, 정원 매니아라면 니조 성을 꼭 가도록 하자.

한편 오사카 성 주변의 해자를 감상하고 싶다면 타니마치욘초메역 보다는 오사카 비즈니스파크역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지나다니는 사람수가 매우 적기 때문에 사진 촬영 시 방해받을 일도 없고, 멀리서부터 천수각을 사진을 담을 수 있다. 오사카 성 내 해자에서 배를 타고 관람할 수 있는 오사카 성 고자부네도 오사카 비즈니스파크역 쪽이 훨씬 가깝다. 오테몬 방향보다 지하철역이 더 가깝기도 하다.

일본어를 잘 모르는 아시아권 외국인 관광객이 많아서 그런지 내부 수리 같은 이유로 들어가면 안 되는 장소에 들어가려고 하면 들어가지 말라고 말로 안내하는 게 아니라 여성 안내원이 방실방실 웃으면서 두 팔 벌려 막는다. 당황해서 영어나 일본어가 안 나오면 제스처로 해결해도 된다. 손가락으로 들어가려는 방향을 가리키면서 고개를 가로저으면 안내원이 고개를 끄덕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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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8월 말에는 오사카 성 등불 축제(城灯りの景, しろあかりのえ)가 열리는데 오사카 성을 은은하게 비추는 서치라이트와 소원을 비는 등불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볼거리를 자아낸다. 또한 2010년부터 오사카 맛집 경연 대회를 같이 실시한다. 맛의 고장으로 유명한 오사카의 유명한 맛집들이 모두 모여 경연 대회를 하기 때문에 꼭 참석해야 할 축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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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성 공원 내에는 1만 6천 명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큰 오사카 성 홀이 있어서 주요 콘서트가 자주 열린다. 또한 2015년부터는 매년 6월 무렵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전반기 최대 규모 PPV인 신일본 도미니언이 개최되고 있다. 돔구장처럼 생긴 외관 때문에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오사카 돔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오사카 성 홀에서 가까운 역은 시영 지하철 나가호리츠루미료쿠치선 오사카 비즈니스파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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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성 옆쪽에 보면 동상이 있고 신사가 하나 있는데 그 동상의 주인공이 바로 성의 주인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이다. 일본의 107대 천황인 고요제이 덴노(後陽成天皇)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호코쿠다이묘진(豊國大明神)이라는 신호(神呼)를 내려주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신으로 모셔지게 됐고, 신호에 따라 호코쿠 신사라고 불리게 됐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가지고 있던 출세의 운을 받아보고자 지금도 많은 일본인이 이곳에 와서 참배한다고 한다.

4. 미디어에서

5. 기타

6. 관련 문서


[1] 오사카 성, 히코네 성, 나고야 성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2] 구마모토 성도 현대 복원이고, 유일한 오리지널 성인 히메지 성도 현대에 많은 보수가 있었다. [3] 일본 역사서나 소설에서 자주 보이는 일향종(一向宗)의 원래 호칭이다. [4]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압박하기 위해 성을 쌓고 도시를 정비하도록 명한 것이 시초이다. 도쿠가와 막부의 오사카 성 천수각은 이러한 건축 붐의 절정. [5] 쇼와 금융 공황에다 1930년 만철 적자 누적으로 일본의 불황이 심각하던 해. [6] 2019년레 아베 총리가 오사카 성 안에 엘리베이터가 필요한가에 대해서 말하다가 장애인들에게 욕먹고 까인 적이 있다. # [7] 예를 들면 울산성 전투에서 노획해왔다는 조선 두정갑 승자총통,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유재란 지시 명령서 등. [8] 1부는 '나니와 검사' 사건이고, 2부는 '타이코 성'이다. [9]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수많은 실직자들이 노숙자가 되어 오사카성 공원에 텐트를 치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 오사카시가 노숙자들을 오사카성 공원에서 강제로 쫓아내고 사회 재활 캠페인 등을 실시한 이후로 노숙자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