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4-03 14:32:39

영구(심형래)


1. 개요2. 특징3. '영구야 영구야' 코너 등장인물4. 여담5. 영화화

1. 개요



유머 1번지 코너 '영구야 영구야'(1988년 6월 ~ 1990년 1월 6일)의 캐릭터. 여로의 영구를 재해석해서 개그화했다. 즉, 영구는 심형래 개그캐릭터가 아니라 여로의 패러디 캐릭터에서 출발한 것이다.

1986년작 여로 리메이크 극장판에서 영구 역을 맡은 심형래가 1988년에 유머 일번지에서 여로를 패러디한 코너에서 주역을 맡았는데 심형래 특유의 슬랩스틱한 면을 절실히 보여준 바보 캐릭터이다.

2. 특징

심형래가 영구야 영구야에 출연하기 전, 원조 영구를 연기했고 배우 은퇴 후 부산에서 면세점을 경영하던 장욱제를 찾아가 선배님의 영구를 오마주하려 하는데 괜찮겠느냐고 묻자 장욱제는 기뻐하면서 "나는 영구를 특허낸 적이 없다"며 흔쾌히 허락했다고 한다.

아버지 역으로 출연한 송영길은 아들 대의 돌림자가 '영'자라며 영일이, 영이, 영삼이를 차례로 읊다가 마지막 숫자인 영를 아들의 이름으로 지어주었다. 이후 일제강점기 ~ 광복후 혼돈기 ~ 6.25 전쟁 이후 시절까지를 다루었다.

유행어로는 띠리리리리~ 소쩍꿍~ 소쩍꿍~♪, 영구 없~다!, 안냐떼여가 있다.

인기로만 따지면 지금 웬만한 개그맨들보다도 넘사벽 급의 캐릭터였다. 하지만 이 캐릭터를 연기한 본인 심형래가 흑역사가 된지라 자연스럽게 영구 그 자체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게 되었다.

다만 이 캐릭터가 끼친 어마어마한 영향력이 아직까지 남아있기는 해서 아무래도 영구 하면 뭔가 바보스러운 인간이라는 이미지가 꽤 오랜 시간동안 박혀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영구라는 이름은 이 캐릭터가 생기기 전에는 흔하지는 않아도 그다지 이상하지는 않은 남자이름이었다. 조영구 등. 그러나 이 캐릭터가 나온 이후로 자식 이름을 영구라고 지어주는 부모는 거의 없다시피 한 게 그 예다.

본인도 영구에 큰 애정이 있는지 본인이 속한 영화 제작사의 이름이 영구아트이다. 현재는 영구아트무비가 도산해서 사라진 상태.

영구와 맹구의 영향으로 바보로 분장해서 슬랩스틱을 하는 개그맨들은 배역에 가 들어가기도 했다. 빡구 대구가 그 예.

다만 기본 복장은 판이하게 다른데, 장욱제의 원조 영구가 덮수룩한 수염에 얼굴만 바보같고 그외에는 비교적 말끔한 정장차림이었다면, 여기의 영구는 (개량)한복 차림이 시그니처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옆머리의 땜빵정도.

3. '영구야 영구야' 코너 등장인물

4. 여담


마지막회를 한 회 앞둔 1989년 12월 30일 방영분의 내용이 충격적이다.

6.25 전쟁으로 인해 영구 일가와 쌍라이트 형제는 피난길에 나선다. 산길에서 빨치산 부대에게 납치당해서 동굴로 끌려가는데 그곳은 김학래가 대장인 빨치산 부대의 근거지였다. 빨치산들은 먼저 연락한다는 핑계로 도망치던 쌍라이트 형제를 쏴죽이고 뒤이어 영구를 죽이려 한다. 하지만 영구의 바보짓을 보고는 '죽일 가치도 없다'며 혀를 차며 쫓아낸다. 영구는 빨치산의 근거지인 동굴을 벗어난 뒤에야 쌍라이트 형제의 죽음을 슬퍼하며, '한국의 비극 6.25'를 외친다.

평소의 개그적인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아주 비극적인 결말이었다. 이 회차의 내용이 매우 충격적이었던지라, 세월이 흐른 후 이 회차가 <영구야 영구야>의 마지막회였다고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하다.

<영구야 영구야>는 바로 다음 주인 1990년 1월 6일에 종영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마을에 돌아온 뒤의 시점으로, 출연진들이 모두 모여서 마을 잔치를 하고 영구가 일장 연설을 한 후 시청자들에게 그동안 <영구야 영구야>를 시청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새해맞이 큰절을 하는 장면으로 마지막회를 끝맺는다.

5. 영화화

심형래와 영구 캐릭터의 폭발적인 인기로 인해 영구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여러 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1990년대 중후반까지 아이들한테 엄청난 인기를 누렸으며 초딩 아이들이 비디오로 많이 빌려서도 시청했고, 어린이날에는 항상 TV에서 방영해줬다. 주인공 심형래의 바보 연기가 아주 재미있는 포인트였으며, 스토리라인이 다소 뜬금없고 허술한 면이 중간중간 있었지만, 그래도 어린 아이들을 타겟으로 하는 영화치고 당시에는 명작이었다.
대원미디어가 제작/배급해 큰 흥행을 거두며 영구 시리즈의 상업적 가치를 증명한 남기남 감독의 '영구와 땡칠이'시리즈 이후, 여러 영화사에서 심형래가 영구로 분한 개별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1] 1946년생 원로 코미디언이자 동양화가 구지연의 남편. 1989년 2월 28일 방영분에서 극중 독립군 자금 대준 게 발각되어 상해 임시정부로 피신하는 식으로 하차하고 3월 10일 미국 유학을 떠났다.(출처: <TV가이드> 1989년 9권 10호(3월 18일) 기사 '송영감 영구 버리고 미국가네' p54~55.) [2] 시부모님이 '에미야'라고 부르자 '에미 없다'를 영구 대신 외쳤는데 영구가 뒤에서 팔을 꺾어잡고 강요했다. 윤혜영은 생전 미녀 코미디언으로 유명했으나 2004년 복막염으로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했다. [3] 영구람보를 감독한 김주희가 감독을 했다. 땡칠이가 수컷 개라면 땡분이는 암컷 개다. [4] 유호프로덕션에서 제작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유호프로덕션은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를 전문으로 제작했으나 외환위기로 도산의 위기를 겪자 타깃을 성인으로 바꾸고 에로영화 제작에 뛰어들게 된다. 유호프로덕션은 에로배우 하유선을 데뷔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5] 복장을 볼때 황비홍 영화 중 이연걸이 주연으로 나온 황비홍 영화를 떠올린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