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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03 05:02:14

연경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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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궁
1. 개요2. 역사
2.1. 연경원2.2. 본궐 흡수2.3. 최후
3. 주요 건축4. 역대 주인

1. 개요

고려 왕조 제8대 현종 대에 만들어진 궁궐. 위치는 북한 개성시 송악산 부근이었다.

2. 역사

2.1. 연경원

본디 현종의 세번째 아내 원성태후 김씨를 위해 만든 관저였으며 명복궁처럼 원(院)에서 시작했다. 처음 명칭은 연경원(延慶院)이었으며 원성태후는 연경원주(延慶院主), 즉 연경원의 주인으로 봉해졌다.

원성태후가 첫 아들 덕종을 낳자 현종은 연경원에 금접시와 은접시, 비단을 하사했고 논과 밭, 노예, 소금 밭, 생선을 잡을 호수까지 딸려 주었다. 둘째 아들 정종을 낳았을 땐 드디어 연경궁(延慶宮)으로 승격됐고 하사품을 보냈다.

현종은 재위 11년에 아들 덕종을 연경궁의 가신, 연경군(延慶君)으로 삼았고 재위 18년에 원성태후에게 옛 집을 하사해 장경궁으로 봉했다.

2.2. 본궐 흡수

이렇게 대충 연경궁의 역사가 끝나는 듯 했지만 고려 중기에 가 이자겸의 난 척준경 본궐을 불태우면서 인종은 연경궁에 거처한다.[1] 인종 대에 잠시 인덕궁(仁德宮)으로 명칭이 바뀐 적이 있다. 인종은 이자겸의 난 이후 연경궁에 추가 공사를 했는데, 연경궁은 본궐 동쪽에 위치했으며 공사 후 연경궁은 100여 칸의 궁궐이었다고 한다.[2]

본궐이 다시 지어지는 동안 인종은 연경궁에 계속 거주하는데 이 때부터 연경궁의 지위가 점점 상승한다. 그러면서 연경궁은 점차 본궐을 흡수해 연경궁이 본궐과 같은 의미로 쓰이게 된다. 본궐 > 연경궁인데 연경궁 > 본궐이 돼 버려 별궁의 범위가 부숴진 정궁의 범위까지 흡수한 셈. 그래서 그런지 본궐의 건축이 연경궁의 건축으로 소개되고 있기도 하고 아예 고려 본궐의 이름이 연경궁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연경궁은 어디까지나 별궁에서 시작해 고려 후기에 본궐을 흡수한 것이기에 완전히 맞다고는 할 수 없다.

2.3. 최후

현재는 전해져 오고 있지 않다. 홍건적의 난 이후 연경궁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공민왕, 우왕은 수창궁을 재건해 정궁으로 사용했다. 연경궁은 제1편전 강안전과 광장인 구정만 재건되어 부분적으로 사용되었다.

3. 주요 건축

천복전의 전문으로 보인다. 이자겸의 난 당시 인종이 이 곳에서 척준경을 맞이했다. 인종이 정전을 천성전으로 개명했을 때 천복전문도 천성전문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연경궁의 정전으로 추정되는 전각. 김부식이 묘청의 난을 진압하러 서경에 가기 전, 인종이 여기서 갑옷을 입은 김부식에게 부월을 내려주며 잘 싸우고 오라고 당부했다. 나중에 인종이 궁 이름을 인덕궁으로 바꿀 때 천성전(天成殿)[3]으로 바꾼다. 근데 선조인 목종 대 천성전에 벼락이 떨어졌다는 기사가 있다. 이를 보아 천성전은 아마 옛날에도 있었던 전각 이름으로 보인다.

동문선 108권에 연경궁 정전을 지을 때 쓴 '연경궁 정전 상량문'이 남아있다. 이 상량문에 정전이 무너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썼고 '숭악응호만세삼(嵩嶽應呼萬歲三)[4]'라 하여 군주를 찬양했다. 상량문은 인종 대 지어진 듯 한데 이궁(離宮)임을 밝히고[5] 반정(反正)을 언급하는 걸 보면 두번의 난을 겪은 인종이 맞다. 이 상량문은 정전을 확장하며 쓴 것이고 백만(百蠻)[6]이 조천하러 온다며 고려를 찬양했다.
인종 대의 전각. 본궐의 전각일 수도 있다.
인종 대의 전각. 본궐의 전각일 수도 있다.

4. 역대 주인

역대 연경원주(延慶院主)
대수 시호 배우자 봉위기간 비고
초대 원성태후 현종 ? ~ 1018.07 덕종(고려), 정종(고려 10대)의 모후.
역대 연경궁주(延慶宮主)
대수 시호 배우자 봉위기간 비고
초대 원성태후 현종 1018.07 ~ 1028.07(?) 덕종(고려), 정종(고려 10대)의 모후.
역대 연경궁의 가신
대수 시호 봉호 봉위기간 비고
초대 덕종 연경군 1020 ~ 1023 정종(고려 10대), 문종(고려)의 형.


[1] 이 때 이자겸이 자신의 관저 의친궁을 연경궁과 연결 시킨 적도 있다. [2] 동문선 제108권 연경궁정전상량문 기록. 이 기록을 보면 연경궁의 크기는 그렇게 크진 않은 듯 하다. 연경궁이 인종 대엔 어디까지나 별궁의 지위였기에 크게 짓지 않은 듯 하다. [3] 하늘이 완성되는 전각. [4] 숭고한 산악이 마땅히 만세를 3창 할 것이다. [5] 즉 연경궁이 본궐을 흡수하기 전 상태라는 것. [6] 온갖 오랑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