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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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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제17대 대통령
앤드루 존슨
Andrew Johnson
파일:Andrew_Johnson_photo_portrait_head_and_shoulders,_c1870-1880-Edit1.jpg
<colbgcolor=#0d164a><colcolor=#ffc224> 출생 1808년 12월 29일[1]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롤리
사망 1875년 7월 31일 (향년 66세)
미국 테네시 주 엘리자베스톤
재임기간 제16대 부통령
1865년 3월 4일 ~ 1865년 4월 15일
제17대 대통령
1865년 4월 15일 ~ 1869년 3월 4일
서명 파일:앤드루 존슨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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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d164a><colcolor=#ffc224> 부모 아버지 제이콥 존슨
어머니 메리 맥도나 존슨
배우자 엘리자 맥카들 존슨[2]
자녀 딸 마르타 존슨, 메리 존슨
아들 찰스 존슨, 로버트 존슨, 앤드루 존슨 2세
학력 해당사항 없음
종교 개신교 ( 초교파)[3]
신장 178cm
소속 정당

의원 선수 1 (상원)
6 (하원)
의원 대수 28, 29, 30, 31, 32, 43 (하원)
44 (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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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cf3ea7e50fe961a5c6f9210a6a1cf25486e479d344392cb4943b35e87b9462ee.jpg
백악관 공식 초상화

1. 개요2. 약력3. 생애
3.1.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3.2. 대통령 재임 시절
3.2.1. 탄핵 위기
3.3. 말년
4. 평가5. 기타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제17대 대통령.

2. 약력

3. 생애

3.1.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1808년에 노스캐롤라이나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3살때 양복점에서 일을 배우고 애인으로부터 글쓰기를 배워 독학으로 학문을 익히고 정계에 진출하여 연방 하원의원(1843~1853), 테네시 주지사[5], 연방 상원의원(테네시, 1857~1862) 등을 거치면서 점차 이름이 알려졌다. 1860년 링컨의 당선 이후 남부가 차례로 연방을 탈퇴했지만 그는 연방에 남아있었으며, 이후 북군에 점령된 테네시의 군사 총독을 맡는 등 연방측에서 활동했다. 왜 그랬는가 하면 존슨 본인은 노예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는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연방 탈퇴에 반대했다.[6] 이로 인해 북부에서는 찬양받았지만 남부에서는 배신자 소리를 듣게 되는데 그의 출신주인 노스캐롤라이나와 정치적 기반이나 다름없던 테네시가 모두 연방에서 탈퇴한 걸 생각해보면... 결국 이것이 뒷날 탄핵당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1864년 대선에서 공화당은 국가연합당(National Union Party)으로 잠시 당명을 바꾸고 자신들에게 지지를 호소한다. 또한 링컨 대통령 또한 분열된 국가를 통합하겠다는 의지에서 민주당 소속이었던 그에게 손을 내민다. 그 당시 북부에는 민주당의 위세가 약한 편이었다. 왜 그런가 하면 대부분의 민주당원은 남부를 지지했기 때문. 이 사례는 아직까지도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후보의 정당이 다른 유일한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7]

어찌되었건 그는 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시작부터 영 좋지 않았다. 본인으로서도 어중간한 포지션에 있기도 하고 부담감도 있고 해서 긴장을 풀기 위해 부통령 취임식장에 위스키를 마시고 입장하게 된다. 결국 이로 인해 주정뱅이라는 비아냥을 듣게 된다. 그를 부통령으로 세운 링컨이 적극적으로 그를 감싸주었지만... 불과 1달만에 링컨이 포드 극장에서 저격당한다. 다음날 링컨은 사망하였고,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3.2. 대통령 재임 시절

대통령으로 취임한 존슨은 초기만 해도 오히려 공화당 급진파 지도자 중 한명인 Chandler 상원의원에게 자신만큼 급진적이라는 평도 받을 정도로 (당시 압도적 인기를 가지고 있던 야당인) 공화당과 원만한 관계를 가졌으나, 지나친 남부 유화책 등으로 점점 사이가 멀어져 급진파가 장악한 의회의 인권법 등 여러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고, 이에 급진파는 압도적인 의석수로 대통령의 거부권을 찍어누르고 법안을 통과시키는 일을 반복하였다.

실제 존슨은 자유민은 되었지만 여전히 차별받던 흑인들의 실상에 대해서는[8] 무관심했다. 해방노예국 기한 연장 거부 등 해방 노예들에 대한 지원 법안을 무르고[9], 심지어 KKK 같은 인종 차별주의를 근간에 둔 불법 폭력 집단의 준동을 방치하는 등 흑인들을 사실상 2등 국민 취급하였다. 존슨은 위에서 보았듯 스스로도 노예를 소유했던 인물이었고 노예제 찬성론자였으며 노예 지원 법안 폐지에 관한 발언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백인 우월주의 사상을 지닌 인물이었다. 이런 인물이 링컨의 부통령이었다고?

1865년 1월 윌리엄 테쿰세 셔먼 장군은 셔먼의 바다로의 행진을 마치고 군정장관 자격으로 40만 에이커에 달하는 백인 농장주의 토지를 몰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이를 나눠 노예였던 흑인 난민들에게 땅 40에이커와 노새 한마리씩을 분배하는 칙령을 공포하였다. 하지만 링컨 대통령 암살사건 이후 대통령직을 승계받은 존슨은 재건 법령 제1조로 이를 전면 무효화시키고 토지를 백인 농장주들에게 반환했다. 흑인들은 생계를 위해 소작농이 되어 예전과 똑같이 가혹한 착취를 겪는 수밖에 없었다. 이후 1866년 남부 홈스테드법으로 남부의 공유지를 흑인들과 백인 연방주의자들에게 판매했으나 가난한 흑인 소작농들에게는 토지 구매 비용이 없었고 결국 군정 해제와 함께 법도 폐지되었다. 공유지는 백인 투기꾼들과 목축업자에게 돌아갔고 결국 남부의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흑인들의 빈곤문제를 해결할 토지개혁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

이 때문에 공화당에게는 '인종차별주의자, 인간 쓰레기, 당의 배신자'라 불렸다. 그렇다고 민주당을 비롯한 남부에게 지지를 받았냐면 그것 역시 아닌게 사실상 공화당에 붙은 '남부의 배신자' 등의 소리를 들으며 남부쪽의 지지도 영 시원찮았다. 이렇게 양 당 모두에게 찍힌 존슨은 국방부장관 에드윈 스탠턴이 헌법은 '모든 권력은 의회에 있다'고 적혀있으니, 자신의 충성 대상은 대통령이 아닌 의회에 있다고 선언한 '스탠턴 사건'을 통해 자멸했다. 정치적 입지로만 보면 좀 불쌍하기도 하다.

당시 공화당 급진파들이 주도했던 상하원에서 (존슨을 길들이기 위해) 1867년 "육군 통솔법"과 "공직 보장법"을 통과시킨 상황이었기 때문에 존슨 대통령이 장관 등을 해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전에 의회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러나 결국 상원이 해임동의안을 의결하는데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존슨의 의지로 스탠턴은 기어이 해임되었다. 결국 나중에 의결해줬지만서도 정확히는 탄핵이 부결된 후 스탠턴의 사임으로 해결을 봤다.

참고로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이 사람 재임 중에 발생했다. 당시 조선의 국왕은 고종. 물론 민간 상선인 제너럴 셔먼호가 독단적으로 벌인 만행이기에 뒤늦게서야 이 소식을 접하고 두 번 선박을 파견해 사실 관계를 확인한다.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율리시스 S. 그랜트 대통령 시점에 진행되었다.

3.2.1. 탄핵 위기

파일:Andrew_Johnson_impeachment_trial.jpg
연방 상원에서 열린 앤드루 존슨에 대한 탄핵 심판
I never thought of it that way, but it does relieve God Almighty of a heavy responsibility!
난 그런 쪽으로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네. 하지만 그가 스스로 만들어졌으면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막중한 책임을 덜어주겠는데!
1860년대 중반 친구가 앤드루 존슨이 자수성가한(self-made) 인물이라고 칭찬하자 한 공화당 급진파 지도자 새디어스 스티븐스가 비웃으면서 한 말. #[10]
Andrew Johnson is the impersonation of the tyrannical slave power. In him it lives again. He is the lineal successor of John C. Calhoun and Jefferson Davis; and he gathers about him the same supporters.
앤드루 존슨은 압제적인 노예 권력의 인격화이다. 그 안에서 노예제는 다시 살아났다. 그는 존 C. 칼훈 제퍼슨 데이비스의 직계 후계자이며, 똑같은 지지자들을 모으고 있다.
1868년 앤드루 존슨 탄핵 재판 당시 공화당 급진파 지도자 찰스 섬너가 한 말. #

결국 "지금 우리에게 도전하는 거지?"라면서 하원에서[11] 탄핵안을 제출하여 찬성 126표, 반대 47표로 가결된다. 이때 하원에서는 열이 머리 끝까지 오른 공화당 뿐 아니라 존슨을 고까워하던 민주당 의원들과 남부민주당 의원들마저 탄핵 절차를 밟는 것에 찬성하며 앤드루 존슨 탄핵 과정에 동참해버리고 만다.[12]

탄핵안이 나온 것은 예전에도 몇번 있었으나 탄핵소추가 가결되어 상원까지 올라간 것[13]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거기다 상원의원의 2/3를 넘게 차지한 공화당 대부분이 존슨의 탄핵에 동의하고 있던 상황.

그러므로 사람들은 존슨이 당연히 탄핵될 거라 생각했는데... 결과는 3개의 탄핵 안건이 모두 1표차로 간신히 부결. 3건 모두 찬성 35표, 반대 19표였다.

이렇게 된 이유는 민주당 의원 9명이 그의 탄핵을 반대한 점도 있지만,[14] 무엇보다 소수(10명)의 공화당원들이 막판에 등돌렸던 것이 컸다. 그들도 존슨을 지지한 건 아니었지만, 탄핵이 선례가 돼서 의회가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 즉 삼권분립의 원칙 침해를 막기 위해 반대표를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15] 결국 60년 뒤인 1926년, 연방대법원에서 이 공직 보장법이 위헌이라고 판단하면서("마이어스 vs U.S" 판결) 존슨이 주장한 공직 보장법의 위헌성이 뒤늦게 입증되었다.

당연히 재선은 도전조차 하지 못했고, 존슨의 후임으로는 남북전쟁의 영웅인 율리시스 S. 그랜트가 취임했다. 하지만 존슨은 그랜트를 대선 후보로 내세운 공화당 급진파가 탄핵 정국을 주도한 탓에 서로 관계가 험악했으므로 취임식때 참석하지 않았다. 이후 152년 뒤 도널드 트럼프가 후임 대통령인 조 바이든의 취임식에 불참하기 전까지 마지막으로 후임 대통령의 취임식에 불참한 대통령이었다.

만약 앤드루 존슨이 탄핵되었다면 대통령직은 상원임시의장이 승계받게 되는 것이다.[16][17] 그러면 그때 최초로 선거로 선출되지 않은 대통령이 나오는 것이다. 다만 약 100년 뒤에 이 사건 때문에 리처드 닉슨이 사임하면서 진짜로 선거로 선출되지 않은 대통령이 나왔다.[18]

3.3. 말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ndrew_Johnson,_1875.jpg
1875년 촬영

탄핵 소동으로 인해 재선은 꿈도 못꾸고 사실상 정치 생명이 끝장난 상태에서 백악관을 떠나게 되었지만, 명예 회복한답시고 계속 정계에 남았다. 결국 1875년 테네시 주 상원의원이 되었지만 얼마 안가 세상을 떠났다. 4월 당선되어 7월 사망. 그의 고집불통 같은 면모는 죽기 직전에도 잘 보여줬는데, 죽기 직전 존슨은 앉아 있다가 의자에서 굴러떨어져 쓰러졌다. 몸 오른쪽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고통을 호소했는데, 놀란 이 의사를 부르려고 하자 " 의사 따위는 필요 없어! 혼자 설 수 있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망했다. 하여간 한 많은 삶을 살다 간 대통령.

4. 평가

학자들과 대중들에게 모두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같이 도매금으로 까이는 프랭클린 피어스, 제임스 뷰캐넌, 워런 G. 하딩은 물론 최근 이 4인방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와 비교하더라도 협상력, 연설력, 호소력 등 각종 정치력 지표가 최악이다. 2021년 발표된 C-SPAN에서는 제임스 뷰캐넌에 이어 44위, 2022년 Siena 조사에서는 뷰캐넌(44위), 트럼프(43위), 하딩(42위), 피어스(41위)를 제치고 최하위를 차지했다.

집권 전 존슨은 성실하고 정직한 이미지로 주변인들의 고평가를 받았다.
"나는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거만한 귀족들이 사실은 얼마나 형편없는가를 여러분 앞에 보여줄 것입니다. 노력하지 않고 돈을 버는 그들은 열심히 노동해서 자기 먹을 빵을 버는 사람들에 비하면 정말로 형편없는 사람들이지요."
ㅡ 앤드루 존슨
국가의 이익을 위해 그만큼 고통을 겪고 일해보지 않은 사람은 어떤 면에서든지 앤드루 존슨을 평가할 수 없다.
에이브러햄 링컨
"만약 내가 그랬듯이 여러분이 그의 정직한 모습과 진심 어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여러분은 결국 그를 믿게 될 것이다."
ㅡ 오하이오 주지사 제이콥 콕스

그러나 집권 후에 이러한 호평들은 완전히 뒤집혔다.
" 칼리굴라의 말(馬)[19]에 필적할 만한 술주정뱅이 짐승"
ㅡ 공화당 상원의원 찰스 섬너[20]
" 저런 무례한 촌놈이 대통령 옆에 서있다니! 하나님! 링컨을 축복하고 용서하소서!"
ㅡ 뉴욕 월드지, 부통령 취임 당시[21]
"그는 자신 출신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부에 관심이 별로 없었으며 칭찬과 비난에도 무감각했다."
ㅡ 남부연합 대통령이었던 제퍼슨 데이비스

물론 알래스카 조약처럼 나름 업적도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국무장관이던 '슈어드의[22] 냉장고'라 불리면서 의회로부터 조롱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매입은 미국에게 신의 한 수가 되었다.[23] 그 외에도 먼로 독트린을 내세워 멕시코에서 찝적거리던 나폴레옹 3세 프랑스 세력을 몰아낸 것도 업적. 내전 이후 아메리카에서 미국이 맹주라는 걸 확인시켜주는 조치를 보였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링컨의 후임자라는 불리한 위치에서 고생만 한 대통령이 되었지만 본인 또한 좋은 정치인은 결코 아니었다. 본인이 남부 편의를 많이 봐주고, 남부 연합 가담자가 연방에 충성을 인정한다면 사면해주려고 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와의 극한 충돌로 당시까지의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많은 거부권을 난사하며 공화당 급진파는 물론 중도파와도 갈등을 빚었다. 1866년 인권 법안에 끝까지 거부권을 행사했으나 의회는 2/3을 넘는 찬성표로 거부권을 눌러버렸고, 그의 비타협적인 태도는 공화당 중도파조차 존슨과 함께 일하는 것을 포기하게 할 정도였다. 1866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대승하며 존슨을 압박했지만 존슨은 끝까지 양보없이 적대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남부를 제외하면 존슨의 지지세는 크지 않았고, 현역 대통령이면서도 경선에서 뉴욕 주지사 호레이쇼 시모어에게 패배하여 일찌감치 재선에 실패했다.

위의 언급에서 보듯 스스로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서 농장 소유주나 귀족화된 상류층들을 좋아하지 않았고, 계속 자신의 출신 성분을 반영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많은 반감과 어그로를 샀지만, 그만큼 자신의 신념에 투철하고 도덕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렇듯 그의 올곧은(?) 행보 때문에 양당에 모두 왕따당하는[24] 불행한 임기를 보냈다는 동정어린 평가도 있지만(주로 남부를 중심으로), 그럼에도 오늘날 대통령 평가 순위에서는 최하위권인 일이 많다. 특히 흑인민권운동이 자리잡은 이후로 남부 재건의 실패가 재조명되면서 존슨의 책임이 다시 불거지기 시작했으며 고의로 재건을 사보타주한 인종차별주의자, 남부 보수파에 힘을 실어 흑인 인권을 100년 뒤로 미룬 원흉이라는 평가도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5. 기타

앤드루 존슨은 미국 대통령 중 성씨와 이름이 모두 겹치는 사례에 해당한다. 이름인 앤드루는 7대 대통령 잭슨과 겹치며, 성씨인 존슨은 36대 대통령 린든 B. 존슨과 겹친다.[25] 그것도 완전한 생판 남으로서 겹친 사례.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이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에서 정 반대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앤드루 존슨은 남부 재건을 방해해 궁극적으로 노예 해방 이후 흑인 민권의 신장을 가로막은 인물로 평가받지만, 반대로 린든 B. 존슨은 당 내의 반발을 무시하고 연방 민권법을 통과시켜 흑인 인권 신장의 포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다만 공교롭게도 둘 다 민주당, 그것도 남부 출신.

공교롭게도 미연합국의 대통령이던 제퍼슨 데이비스와 생년이 겹친다.


[1] 역대 미국 대통령들 중에서 생일이 가장 늦다. 반면 생일이 가장 빠른 미국 대통령은 13대인 밀러드 필모어. [2] 키가 145cm였는데, 이는 역대 미국 대통령 영부인들중 최단신이다. 그 반대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아내인 엘리너 루스벨트, 버락 오바마의 아내인 미셸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의 아내인 멜라니아 트럼프로 이들은 모두 180cm로 최장신 공동 1위이다. [3] 본인 스스로 기독교인이란 정체성을 확고히 했으나, 특정 교파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다. 감리회에 주로 출석했으나 가톨릭의 미사에도 자주 참석하는 초교파적 신앙을 추구했다. [4] 전임자 사망으로 인한 승계 [5] 18대(1853~1857), 20대(1862~1865) 두차례나 지냈다. 특히 20대 주지사로서는 1861년 벌어진 남북전쟁의 전장에서 3년간 군정 주지사(military governor)를 맡았는데, 이 공로로 주지사에서 물러난 뒤 바로 부통령이 되고 또 뒤로 대통령이 된 것. [6] 때문에 남북전쟁 시기 남부 출신으로서 연방 상원에 남은 '유일한' 의원이 되었다. [7] 대통령과 부통령의 정당이 달랐던 사례는 2대 대통령 존 애덤스 때의 부통령 토마스 제퍼슨도 있다. 그러나 이 때는 부통령 후보가 따로 없이 대통령 선거에서 2등을 한 자가 부통령이 되었다. [8]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린치를 당하는 등 차별은 여전했다. [9] 토지 분배, 교육 등 여러 방면에서 지원하는 정책이었으나, 존슨은 이를 '백인에 대한 역차별'이라 주장하며 폐지했다. [10] "self-made"는 자수성가한이란 뜻이 있지만 직역하면 스스로 만들어진, 스스로 창조된이란 의미가 있다. 앤드루 존슨이 공화당 급진파 내에서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11] 당시 하원은 새디어스 스티븐스 공화당 급진파가 장악하고 있었다. 거기다 해임당한 스탠턴도 공화당 급진파의 일원이었으니... 당시 앤드루 존슨을 제외한 모든 내각 구성원이 공화당이었으며 앤드루 존슨의 최측근이 임명되어야 하는 비서진들마저 공화당으로 채워져 있었다. 말그대로 공화당이 탄 거대한 방주에서 선장만 민주당인 셈. 민주당에서 앤드루 존슨을 배신자라고 불러대는게 괜한건 아니었던 것. [12] 하지만 최종 탄핵 소추 표결에서는 민주당 하원의원 45명은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13] 미국은 양원제 국가이므로 탄핵이 상원에서 끝난다. 탄핵소추는 하원, 탄핵심판은 상원이다. [14] 다만 이 민주당 상원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지게 된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당장 탄핵소추할 때도 민주당/남부민주당 사람들마저 적극 탄핵 절차에 동참했다. 애초에 존슨에 대해 링컨에 영합한 배신자라며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것조차 탐탁지 않아하던게 당시 민주당이었다. [15] 한국에서 2017년 헌정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 현실화된 후, 보수와 진보가 정치적으로 불만이 있으면 '탄핵'을 너무나도 쉽게 거론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데, 미국 의회도 이 여파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두 사건은 부류가 조금 다른데 존슨 쪽은 대통령과 의회의 정치싸움의 성격인 반면 박근혜는 명백히 본인의 잘못으로 국회에서 탄핵한 것이었다. [16] 왜냐면 존슨은 링컨 암살로 승계받은 대통령이고 부통령을 따로 지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7] 왜 하원의장이 아닌지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현재의(부통령 다음에 하원의장과 상원의장이 승계받는) 승계 순위는 트루먼 대통령 시절에 정해진 것이고 이 시기엔 상원임시의장이 부통령 다음으로 승계서열 2위였다. 그 이후 1886년에 국무장관이 승계서열 2위로 바뀌었다가 트루먼 대통령 시기 현재의 서열이 확정되었다. 이 시기 법에 따르면 이렇게 승계받은 (부통령 출신이 아닌) 대통령은 정식 대통령이 아니라 임시 대통령으로 취급되며 임기를 채울 수 없고 가까운 시일 내에 보궐선거(!)를 실시해야 했다. 다만 존슨의 경우 탄핵된 그해에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음으로 보궐선거가 열릴 일은 없었을 것이다. [18] 전임자인 스피로 애그뉴도 뇌물수수 혐의로 퇴진한 상태였고, 닉슨이 포드를 후임 부통령으로 지명했기 때문이다. 대신 이를 보완하는 의미에서 부통령 임명 당시 상원의 인준 절차를 거쳤다. [19] 유명한 야사로 칼리굴라가 자신의 애마를 원로원 집정관(또는 의원)으로 임명했다는 소리가 있다. 다만 실제로 그런 적은 없다. 칼리굴라가 원로원을 조롱하기 위해 '저 노친네들 대신에 내 애마를 원로원 의원으로 임명해도 딱히 별일 없을듯.'이라고 농담했던 게 시간이 흐르면서 와전된 것이다. 이외에도 칼리굴라의 기행들은 사실 뜬소문 정도였던 것이 실제 있었던 것처럼 와전된 게 태반이었다. [20] 찰스 섬너는 그의 스피치를 듣고 빡친 사우스 캐롤라이나 하원의원 프레스턴 브룩스에게 지팡이로 공격당한 사건으로 유명하다. 말이 좋아 지팡이지 보스턴에 있는 올드 스테이트 하우스에 전시된 것을 보면 금박도 잘 되어있는 엄청난 흉기이다(이 시절에는 신사의 필수템이었던 지팡이 속에 쇠를 넣어서 호신용 무기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다. 브룩스의 지팡이도 이런 류의 무기였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섬너는 다행히 목숨은 부지했지만 3년 간 요양을 해야 했으며 죽을 때까지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이 사건은 남과 북을 더욱더 양극화시켜 훗날... [21] 긴장을 풀기 위해 부통령 취임식장에 위스키를 마시고 입장했다. 이것을 악의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대한민국 국무총리가 청문회장에 소주 한병 마시고 입장한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22] 이 슈어드는 링컨처럼 남부의 몰락에 기여했는데,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을 권한 사람이 슈어드였다. 때문인지 링컨이 암살당하던 날 그는 병중이었는데, 링컨의 암살범 부스의 공범인 루이스 파월이 그를 암살하려고 했지만 링컨이 암살당한 것과는 달리 슈어드는 끝내 무사했다. [23] 만약 알래스카가 현재에도 러시아 땅으로 남아 있었다면 미국은 지근거리에 적성국의 미사일이 배치되어 전략적으로 상당히 불리했을 것이다. 물론 러시아가 이걸 판건 애초에 지키기도 힘들거 같으니 걍 돈이라도 받고 팔자는 의도도 있었지만. [24] 비슷한 사례가 존 타일러인데 이 사람도 마찬가지로 임기 중 양당에게 왕따당했다. 그런데 타일러도 앤드루 존슨처럼 여당과 마찰을 빚던 인물이었다. [25] 이 경우는 앤드루 존슨 외에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조지 H. W. 부시도 해당한다. 다만 루스벨트는 피어스와 이름이 겹치는 건 그렇다 쳐도 성씨가 겹친 시어도어와는 12촌 형제라서 그렇고, 부시도 마찬가지로 워싱턴과 이름이 겹치는 건 맞지만 성씨의 경우는 부모와 자식 간, 즉 가족이라서 당연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