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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01 12:45:52

스사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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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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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신화에서의 등장3. 기타4. 이 이름을 사용한 것

1. 개요

スサノオ

일본의 신화에 등장하는 남신으로, '建速須佐之男命'(타케하야스사노오노미코토). '素戔嗚'(스사노오)라고 쓰기도 한다.[1]

2. 신화에서의 등장

수사노오노미꼬도[素戔鳴尊]는 성질이 포악하여 여러 신들은 벌로써 치구라오기도[千座置戶]를 과하여 고천원으로부터 내쫓았다. 그래서 수사노오노미꼬도는 그의 아들 이다게루노미꼬도[五十猛尊]를 데리고 신라국 소시모리[曾尸茂梨][소머리산, 牛頭山]에 가서 말하기를 나는 이 땅에 살고 싶지 않다 하고 배를 만들어 타고 동쪽으로 항해하여 이즈모국[出雲國]의 히노가와[簸川] 상류인 도리가미노다케[鳥上峯]에 도착하여 그곳에 살았다 『일본서기』

一書曰, 素戔鳴尊所行無状, 故諸神, 科以千座置戸, 而遂逐之, 是時所素戔鳴尊, 師其子五十猛神, 隆到於新羅国 曾尸茂梨之処, 乃興言曰, 此地吾不欲居, 逐以埴土作舟, 乗之東渡, 到出雲国簸川上所在鳥上之峯 『日本書紀』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일본 신화. 이자나기 이자나미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쓰여 있으며 《 고사기》에선 이자나기가 코를 씻을 때 탄생했고, 야마타노오로치를 퇴치했다. 토착 한반도 도래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신이며 현재 황실계 남자의 조상[2]에 해당한다.

아마테라스, 츠쿠요미와 함께 일본 신화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삼귀자(三貴子, 미하시라노우즈노미코) 중 하나로 아마테라스가 태양, 츠쿠요미가 , 스사노오는 바다 폭풍[3]을 다스린다고 한다. 일본 신화에서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에서 나온 신 중 츠쿠요미는 비중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남매인 스사노오와 아마테라스가 가장 중요한 신으로 나타난다. 출신만 보면 아마츠카미가 당연할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오오쿠니누시와 엮여서 쿠니츠카미로도 분류된다.

기기신화, 즉 《 일본서기》와 《 고사기》에 기록된 스사노오는 성격이 대단히 기묘한 신이다. 아마테라스의 동생이면서 이자나기/이자나미 부부신의 아들로서 격이 매우 높거니와, 오로치를 물리칠 정도로 힘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어린애와 같은 면이 매우 강하다. 《 일본서기》 권1 제8단 일서 제4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머니 신인 이자나미가 황천에 간 뒤, 그리움에 잠겨 바다를 다스리라는 이자나기의 명을 거역하고, 어머니를 찾으러 황천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이에 이자나기가 노하여 그를 천계에서 추방했다. 이에 누이인 아마테라스에게 인사를 하려고 천계인 타카마가하라에 갔다. 하지만 폭풍의 신인 그의 움직임에 산천이 흔들리고 타카마가하라의 국토가 진동하자, 아마테라스 또한 동생의 의도를 믿지 못하고 자신의 자리를 빼앗으려 한다고 생각하여 무장을 한 채 강가에서 맞이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스사노오의 말이 정말인지 확인하려고 주술적인 내기를 했는데, 이 내기에서 아마테라스가 졌다. 그래서 아마테라스는 스사노오의 말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뒤로 타카마가하라(高天原, 고천원, 하늘나라)에서 논두렁을 허물고, 제사상에 오물을 뿌리는 등 온갖 못된 짓을 하다가, 베를 짜던 아마테라스를 다치게 하자[4] 아마테라스는 동굴 아마노이와토에 숨었다. 신들이 가까스로 아마테라스를 밖으로 유인해냈으나 스사노오는 그 대가로 여러 신들에게 머리채를 잡혀 끌려와 수염(혹은 머리카락)과 손발톱을 뽑히고 신라의 소시모리(曽尸茂梨)에 떨어졌다고 기기신화(記紀: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기록된 신화)에 전해지고 있다. 털이나 손발톱 같은 신체의 일부가 빼앗기는 것은 자유를 빼앗김을 뜻한다고 한다.

스사노오는 천계에서 죄를 지어 쫓겨난 뒤 아들 이소타케루(五十猛) 신과 함께 먼저 신라의 소시모리(曽尸茂梨, *solmuri)[5]란 곳에 강림했지만, 여기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서 흙으로 만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동쪽으로 가서 일본 땅 이즈모(出雲)에 도착했다. 그 후 울고 있던 노부부를 발견하게 되었고 매년 야마타노오로치에게 자식들을 제물로 바치게 되었다는 사연을 듣게 되었다. 그는 제물이 될 예정인 쿠시나다히메를 비녀로 바꾼 뒤 오로치를 퇴치했다. 그리고 그녀와 결혼을 했다고 전해진다.

기기신화에 따르면 그 뒤 아메노하바키리를 들고서 오로치를 물리치고 꼬리에서 꺼낸 신검 아마노무라쿠모노츠루기는 타카마노하라에 바치는 등, 성숙한 영웅신적 모습을 보이지만... 자기 사위 오오쿠니누시[6]에게 딸을 주기 싫어 잔꾀를 쓰는 등 예전 모습도 여전히 있다.

저승의 부정함에 물든 어머니 이자나미를 버리고 도망쳐 나온 아버지 이자나기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들을 내쫒고, 누이에게 갔더니 누이는 자신을 완전무장하고 맞이했으니 비뚤어진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다만 아마테라스가 내기에서 이긴 스사노오를 하늘에 받아준 이후, 이겼다는 표시로 스사노오가 벌인 일은 명백한 행패이며, 처음에 변호해주던 아마테라스도 참다 못해 분노와 수치심에 잠겨 아마노이와토 동굴에 숨어버려 아메노우즈메가 올 때까지 세상 전체가 태양 없는 어둠에 물들이는 재앙을 맛보는 일까지 벌어졌다. 무엇보다 스사노오는 이 사건에 대해 아마테라스에게 정식으로 제대로 된 사죄나 사과 한 마디조차 안 했다. 그 상황에서 아마테라스는 남동생과의 그 어떤 접촉에도 전혀 안도할 수 없고, 아버지 이자나기와 형 츠쿠요미를 포함한 천계의 신들도 고작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누나의 신역을 훼손한 것도 모자라 세상을 어둠으로 뒤덮는 큰 민폐를 저지른 스사노오에게 좋은 감정을 느낄 수 없다. 이것만큼은 빼도 박도 못할 스사노오 본인의 잘못이자 자업자득인 셈.

하지만 정작 일본의 옛 현지 기록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없다. 스사노오가 길을 가다가 땅 이름을 정했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쪽이 일본 스사노오 신앙의 원형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즈모 지방에만 하더라도 스사노오 신앙의 권역이 있긴 하지만, 오오나무치(오오쿠니누시) 신앙이 더 폭넓고, 더 강했다.[7]

기기신화는 '정치신화'라고 불릴 정도로 《일본서기》와 《고사기》가 성립될 당시 정치적 요소를 강력하게 담고 있어, 읽을 때 주의가 필요하다. 신화적 논리와 정치적 논리가 뒤섞였기 때문에 이를 구분하지 않으면 일본 신화의 원형적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다.

스사노오는 일본 신화의 가장 대표적인 영웅신이면서도 폭력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에 때문에 현대 만화/ 애니메이션 등의 대중문화에서는 매우 인기가 높다. 보통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 중 최강 클래스에 속하며 등장했다하면 보이는 대로 부수는 파괴신으로 묘사된다.

또한 스사노오는 상기한 대로 일본 신화의 가장 대표적인 영웅신으로 뇌신 타케미카즈치와 함께 일본 신화의 대표적인 무신· 군신으로 통하기에, 타케미카즈치나 의 신 카구츠치 등과 더불어 일본 창작물에서는 강력한 캐릭터나 무기 등의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스사노오에게서 따온 이름이 붙은 캐릭터들 역시 대체로 상당히 강하게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3. 기타

스사노오가 신라로 먼저 강림했다는 사실 때문에 일제강점기 때는 ' 일선동조론'(조선인과 일본인은 조상이 같다라는 이념)의 종교적 표상으로 강원 신사를 세우기도 했다. 대표 사례로 강원도 춘천의 우두산을 스사노오가 강림한 소시모리로 간주했는데 신•불습합에서 스사노오는 우두천왕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세후리산(脊振山) 소시모리라는 단어가 서울에서 나왔다는 것이 일본학계에서 정설이라 소시모리를 우두(牛頭), 즉 순우리말 '소머리'(또는 쇠머리)의 음차라고 생각하는 학설도 있다.

비록 고대 한국어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긴 하지만 소시모리에서 '시'(尸)는 우시산 울산과 같이, 한글이 없던 고대 향찰식 표기에서 尸는 받침발음을 표현하기 위한 보조 글자로 흔히 쓰였으므로 소머리로 유추하는 것 자체는 무리한 발상은 아니었다. 물론 신라의 한 지명이라 써 있는데도 초기 신라에서 거리가 먼 춘천으로 비정한 것은 좀 무리하긴 했다.

일부 일본인들이 우두산=소시모리설로 우두산 자체에 신사를 두려 하던 걸 막은 건 의외로 조선총독부였다. 총독부는 이 설에 부정적이었는데, 조상을 섬기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 유교문화권의 조선인들을 크게 자극할까 두려웠기 때문에, 이걸 추진하던 일본인들은 대신 인근에 있는 봉의산 강원 신사에 스사노오를 합사했다. 일제가 패망하며 강원 신사는 폐쇄됐고 지금은 강원 신사가 있던 자리엔 세종호텔이 있다. 그 외에 소시모리를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로 보는 설도 있다.

지금도 이즈모 서쪽 옆동네 오다시 현지 바닷가, 산인 본선 이소타케역 인근에 가라카미시라기(韓神新羅, 한신 신라) 신사라는 신사가 있고, 여기서 구로라는 이름으로 마츠리 비슷한 행사를 한다. 현지 주민도 정확히 왜 신라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구로가 뭔지 정확히 모른다고......[8] 다만 명백히 한반도와 관련있는 이름인 듯하기 때문에, 가라카미시라기 신사에 가면 일본어 안내판에서 한국과 관련된 이름일 가능성과 한일관계에 대해 써 있다. 그리고 거기서 머지 않은 곳 마을 앞바다에 가라시마(韓島)라는 작은 섬도 있고, 그 섬에 가라시마 신사도 있다. 이렇게 스사노오가 도달했다고 기록된 이즈모 일대에는 이래저래 한국과 관련되었을 법한 지명이 상당히 많다. 구글 지도에 검색하면 다 나오고 한국인들이 가기 쉬운 서부 일본 지역이라 이즈모 쪽으로 여행을 간다면 찾아가보기도 어렵지 않다. 이 근방 해안은 한반도 도래인과 관련이 깊은 지역으로 추정한다.

신•불융합(신토와 불교의 융합)이 된 뒤에는 우두천왕(牛頭天王)으로도 통했다. 사이메이 덴노 2년(656) 고구려에서 온 사신 이리시오미(伊利之使主)가 왜국에 방문했을 때, 우두산의 스사노오에게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9] 이에 대한 해석으로 스사노오가 우두천왕으로 신•불융합된 것은 한반도계 도래인이 일본에 도착하고 나서라는 추정이 있다.

이러한 신화와 신사들 덕분에 스사노오는 원래 신라인들이 섬기던 신이었고, 신라 출신의 도래인들에 의해 일본으로 유입됐다고 보는 설도 있다. 한반도 도래인들의 신이 맞다 쳐도 일본으로 이주한 뒤에 형성된 신앙일 수도 있다. 사실 상술했다시피 애초에 이즈모에서도 오오쿠니누시 신앙에 밀리던 마이너한 신앙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민중들에게 널리 모셔지던 신이 아니라 기기신화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위상이 뻥튀기된 신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이나리 신앙처럼 스사노오 신앙을 믿던 도래인들의 위상과 함께 덩달아 격이 상승했거나.[10]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등장하는 천일창과 관련짓는 사람도 있으나 공통점이라곤 신라에서 넘어왔다는 점 밖에 없기에 큰 지지를 받는 설은 아니다. 역사스페셜에서는 심지어 '연오랑 세오녀 일본의 신(神)이 되었나?' 편에서 연오랑과 세오녀가 스사노오의 모티브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링크 하지만 학계에선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썰이다.

뇌우의 신이라는 것과 폭력적인 성격, 뱀과 관련된 괴물을 퇴치했다는 점에서 북유럽 신화의 남신 토르와 연관짓는 사람들이 있다. 스사노오라는 신 자체는 야마토 조정의 중앙집권 이전에는 단순히 땅을 돌아다니는 소박한 신으로 나오지만 이 특징마저 토르가 갖고 있는 특징이다.[11] 심지어 주적인 요르문간드 야마타노오로치는 둘 다 거대한 뱀이면서도 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12] 그러나 스사노오가 갈등의 발단이면서도 그 갈등을 자기가 수습한다는 점에서 로키를 더 닮았고, 토르는 요르문간드를 무찌르고 나서 얼마 못 가 사망해버렸지만 스사노오는 야마타노오로치가 사망한 이후에까지도 생존했다.

사실 이 연관성은 원류가 같은 원시 인도유럽 신화 뇌신인 페르쿠노스로 겹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일단 스사노오가 신•불습합으로 합쳐진 신인 우두천왕은 불교의 제석천=인도신화의 인드라를 원류로 하는데, 이 인드라는 원시 인도유럽 신화의 신왕인 디에우스 프테르 혹은 페르쿠노스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페르쿠노스는 슬라브 신화의 페룬으로 흘러갔다고 확실시되는데, 이 페룬과 북유럽 신화의 토르는 비슷한 신격으로서 같은 원류를 갖는다고 추정된다. 같은 원류를 갖는 다른 신들로는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 가나안의 바알, 켈트의 타라니스, 메소포타미아의 아다드 등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뇌신인 동시에 농경신이자 전쟁신으로서, 주신 격 혹은 그에 준하는 신위를 가졌고, 숫양, 소, 염소 등 농경에 깊은 연관이 있는 우제류 동물을 상징으로 삼는다.[13]

고사기 내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과는 별개로 일본서기와 고사기로 이뤄지는 '기기신화'의 정합성을 깨뜨리는 부분이 다수 등장하기도 하다. 고사기 일본서기에는 스사노오의 탄생, 추방과 관련된 굉장히 큰 기록 차이가 있다. 고사기에 묘사된 바, 스사노오는 구더기(이카즈치)가 들끓는 이자나미로부터 도망친 이자나기가 목욕(하라에)을 할 때 태어났다.[14] 하지만 이후 스사노오는 자신에게 맡겨진 해신의 책무를 거부하며 어머니의 나라로 가고 싶다는 뜻을 보인다.[15] 스사노오는 이자나기가 이자나미와 대판 싸우고 결별한 뒤 태어난, 즉 이자나기/이자나미 부부신 사이에서 태어난 신이 아닌데 왜 어머니를 찾는가? 물론 명계에서 이자나기와 이자나미 사이에 뭔가가 있었다면 틀린 게 아니겠지만, 이에 대한 좀 더 설득력 있는 해답은 일본서기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서기 정본에는 이 신들의 탄생설화에 관해 자세히 언급하지 않고 천지와 함께 낳았다고만 언급한다.[16] 다만 두 부모 신이 삼귀자에게 하늘과 땅의 통치를 맡겼다는 대목은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특히 이자나기, 이자나미는 스사노오에게 황천(네노쿠니)의 통치를 맡기며 '절대 세상으로 나오지 말라'고 명령한다.[17] 그 외에 다른 일본서기 일서에는 스사노오에게 천하의 통치를 명하는 부분마저 존재한다.[18] 따라서 일본서기의 기록을 신뢰하여,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같이 낳은 신이 스사노오라면 고사기의 기록이 딱히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기신화에는 위와 같이 묘사가 갈리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고사기에서는 이자나미와 이자나기가 대판 싸우고 결별하지만, 일본서기에서는 원만하게 합의이혼을 했다는 등 완전히 내용이 뒤집히는 부분도 있다. 재미있는 점은 연대순이 뒤집혀 있다는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고사기는 일본서기보다 먼저 편찬되었다 전해짐에도 불구하고, 일본서기에서 중구난방하게 기록된 일서의 내용을 적당히 짜깁기해 일관성 있게 요약한 듯 보이는 부분이 다수 보인다. 물론 고사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일본서기가 필요한 내용만 칼질해 기록하였다고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여전히 미심쩍은 점이 많다.

4. 이 이름을 사용한 것


[1] 스사노오와 신라의 차차웅과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가 있다. 오로치를 베었을 때 쓴 검의 이름이 사서검(蛇鋤劍: 오로치노 카라사히노 츠루기)인 등 신라와 연관성이 많다. [2] 직접 아내를 맞이하여 낳은 건 아니고, 타카마가하라로 가서 아마테라스와 대면했을 때 두 신의 내기 과정에서 태어난 신들 중 하나가 황실계 남자의 조상. 때문에 모양새가 좀 이상해지지만아마테라스와 스사노오의 아들이 현재 황실계 남자의 조상이라고 보면 된다. [3] 이 폭풍에는 바람과 번개가 둘 다 해당한다. 그래서 뇌신, 파도의 신 등은 전부 스사노오를 가리키는 말이다. [4] 일본서기》 본문에 따른 서술이다. 아마테라스가 베틀에 앉아 옷감을 짜고 있을 때, 지붕을 뚫고 가죽을 벗긴 말을 던졌다. 아마테라스가 이에 놀라 베틀에 몸이 다쳤다고 한다. 그런데 《 고사기》에서는 아마테라스가 아니라 직녀(織女)가 북(옷감을 짜는 도구)에 음부(陰部)를 찔려 죽었다고 했다. 그리고 《 일본서기》도 일서에는 아마테라스가 아니라 와카히루메노미코토(稚日女尊)라는 신이 베틀 북에 상처를 입고 죽었다고 나온다. [5] “모리”는 순우리말 뫼 또는 마을에 대응된다. [6] 이 신도 스사노오의 후손이다. 의견은 갈리지만. [7] 《고사기》와 《일본서기》 등에서 오오쿠니누시가 스사노오의 자손으로 나오기 때문에 결국 스사노오 신화의 계보가 되기는 한다. [8] 굴직현(屈直縣)=기량현(祈梁縣) 굴지(屈支)=기양(祈陽) 굴 주(呪) 옛말 빌다는 뜻의 굴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한다. [9] 八坂郷鎮座大神之記 [10] 한편 최근 들어 이런 내용을 두고 알렉산더 보빈이 주장한 반도 일본어설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 자세한 건 문서 참조. [11] 토르가 주로 퇴치하는 대상은 요툰으로, 그리스 신화의 티탄(타이탄)과 비슷한 거인이면서도 북유럽의 추운 날씨를 상징하는 신들이다. 이 추운 날씨가 풀릴 때 쯤에 농사가 잘 풀리면서도 낙뢰가 토지의 비옥함을 더해주는 역할이기에 토르의 신격은 농경신이라고도 볼 수 있다. [12] 야마타노오로치는 산제물을 요구하던 악신이고, 요르문간드는 요툰족인 로키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와 형과 함께 라그나로크를 일으키는 존재가 되었다. [13] 사실 스사노오와 토르의 신격은 세부적인 면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자연환경이 큰 몫을 하였다. 북유럽은 환경이 춥고 척박하지만 그래도 지진이 잘 안일어나고 생태계가 안정적이어서 날씨가 따듯해지기 까지만 버티면은 나름 살만하다. 허나 일본은 사계절이 뚜렷한데다 섬나라라서 일교차도 크고 하필이면은 판 경계들이 맞닿은 위치에 있어서 지진이 수시로 일어나는 과장해서 말해 헬게이트급 지역이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 자연을 상징하는 신들은 전통적인 신 개념이 아닌 힘이 아주 강한 귀신으로 표현될때가 많다. 그래서 토르의 신격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보호해주는 모습이지만 스사노오는 사람을 해치거나 협박하는 모습의 재앙신에 가까울정도의 모습을 보인다. [14] 고사기 원문: 於是洗左御目時、所成神名、天照大御神。次洗右御目時、所成神名、月讀命。次洗御鼻時、所成神名、建速須佐之男命。 해석: (이자나기가) 왼쪽 눈을 씻을 때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가 나왔다. 오른쪽 눈을 씻을 때 츠쿠요미가 나왔다. 코를 씻을 때 스사노오가 나왔다. [15] 고사기 원문: 爾答白、僕者慾罷妣國根之堅州國。 해석: (스사노오가 말했다.)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나라(妣國)에 가고 싶을 뿐이다. [16] 일본서기 권1 제5단 원문: 次生海。次生川。次生山。次生木祖句句乃馳。次生草祖草野姬。亦名野槌。旣而伊奘諾尊·伊奘冉尊、共議曰、吾已生大八洲國及山川草木。何不生天下之主者歟。於是、共生日神。號大日孁貴。【大日孁貴、此云於保比屢咩能武智。孁音力丁反。一書云、天照大神。一書云、天照大日孁尊。】 해석: 다음으로 바다를 낳고, 다음으로 강을 낳고, 다음으로 산을 낳았다. 다음으로 나무의 조상 쿠쿠노치(句句乃馳)를 낳았다. 다음으로 풀의 조상 카야노히메(草野姬)를 낳았다. 다른 이름은 노츠치(野槌)다. 그 뒤 이자나기노미코토와 이자나미노미코토는 의논했다. "우리는 대팔주국을 낳고 산천초목을 낳았다. 왜 천하를 통치할 자가 태어나지 않았는가?" 그래서 두 신은 태양의 신을 낳았고, 그 이름은 오오히루메노무치(大日孁貴)라 한다. (大日孁貴는 오오히루메노무치라 읽는다-만요가나 표기 설명. 이 신을 어느 책에서는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 어느 책에서는 아마테라스오오히루메노미코토라 한다.) [17] 일본서기 제1권 5단 원문: 故其父母二神、勅素戔嗚尊、汝甚無道。不可以君臨宇宙。固當遠適之於根國矣、遂逐之。 해석: 따라서 두 부모 신이 잔악무도한 스사노오에게 명령했다. 너는 우주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저 머나먼 근국(네노쿠니, 저승)으로 썩 물러가거라. [18] 일본서기 권1 제5단 일서 제6 원문: 素戔嗚尊者、可以治天下也。 해석: 스사노오노미코토는 천하를 통치하라. - 여기서는 츠쿠요미가 대신 바다(우나바라)를 통치한다. [19] 루비로 '스사노오'라고 읽는다. [20] 태고의 달인3DS3에서 동이의 동료로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