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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13:38:32

삼봉집

1. 개요2. 삼봉 정도전의 문집 三峯集
2.1. 역사2.2. 내용2.3. 대한민국의 보물 제1702호2.4.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2호2.5. 구성
3. 승려 지탁(知濯)의 문집 三峰集

1. 개요

삼봉집.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문집으로 총 두 종류가 존재한다.

2. 삼봉 정도전의 문집 三峯集

조선 개국공신인 삼봉 정도전이 평생에 걸쳐 쓴 글을 모아 편찬한 문집. 총 14권 7책.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세조 11년, 1465년에 만들어진 중간본이 대한민국의 보물 제170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정조 15년, 1791년에 대구광역시에서 만들어진 목판이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다.

2.1. 역사

정도전의 문집 간행은 그가 살아 있을 때인 1397년에 이루어졌지만 훗날 저자가 1차 왕자의 난에 휩쓸려 처형되면서 문집의 판본들이 모두 흩어져 없어져 버렸다. 그후 한동안 정도전에 대한 모든 것은 금기시되었고 그의 작품들 또한 완전히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다 정도전의 문집이 다시 복구된 것은 조선의 7대왕 세조 때였다. 이때 경상도관찰사로 재직하던 정도전의 증손 정문형(鄭文炯, 1427 ~ 1501)이 세조 11년, 1465년에 왕의 허락하에 뿔뿔히 흩어져있던 문집 파편들을 찾아 복구하고, 세조의 신하인 신숙주(申叔舟, 1417 ~ 1475)가 서문을 붙여 7권으로 편집하여 안동부(安東府)에서 중간본(重刊本)을 간행하면서 정도전의 작품들이 드디어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이후 성종 18년, 1487년에 강릉에서 또다시 간행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정조 15년, 1791년에 정조의 왕명으로 구본(舊本)에 누락된 진법(陣法)과 시문을 수록하고, 정도전에 대한 기록을 보완하고 편차를 다시 분류하여 대구(大邱)에서 목판(木版) 14권 7책으로 만든 것이 지금의 삼봉집이다. 조선의 역적으로 취급되어 당대 그의 문학 작품들은 거의 기록말살형 급의 처분을 받았었지만 세조 때 복구, 성종과 정조 때 간행이 이루어지는 등 세 왕의 시기때 지속적으로 복각된 덕분에 정도전이란 거물과 그가 살았던 한 시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조선이라는 국가의 건국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2.2. 내용

제1권과 제2권은 시(詩), 오언고시(五言古詩), 칠언고시(七言古詩), 육언절구(六言絶句), 칠언절구(七言絶句), 율시(律詩), 부(賦), 사(詞), 악장(樂章) 등 시문이 담겨 있고, 제3권과 제4권은 소(疏), 전(箋), 서(書), 계(啓), 서(序), 기(記), 설(說), 제발(題跋), 전(傳), 행장(行狀), 묘표(墓表), 제문(祭文), 책제(策題), 명(銘), 찬(贊), 잡문 등 문장 형식의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제5권, 제6권은 경제문감이란 태조 4년, 1395년에 정도전이 지은 책이 수록되어 있고, 제7권과 제8권은 태조 3년, 1394년에 만든 개인 사찬 법전인 조선경국전이 수록되어 있다.[1] 그리고 9권과 10권은 유교의 입장에서 불교를 비판하는 불씨잡변(佛氏雜辨), 심기리편(心氣理篇), 심문천답(心問天答)이 들어있고, 11권과 12권에는 1397년 저술한 경제문감별집이 수록되었다.

13권에는 병법서인 진법(陣法)과 고려사, 동국여지승람 등에 실려 있는 정도전의 유문(遺文)들을 모은 습유(拾遺)가 수록되었고, 마지막 14권에는 정도전의 일생 경력에 관계되는 자료를 널리 모은 사실(事實)과, 정도전에 대한 후세인들의 평을 모은 제현서술(諸賢敍述)이 실려 있다.

2.3. 대한민국의 보물 제1702호


계명대학교 소장본. 여말선초의 학자이며 문신인 삼봉 정도전(1337-1398)의 시문집으로 세조11년(1465)에 중간(重刊)된 안동판(安東版)과 성종18년(1487)에 삼간(三刊)된 강릉판(江陵版)의 합본으로 유일본이다.

정도전의 문집 초간본은 저자가 생존하였던 태조6년(1397)에 아들 정진(鄭津:1361-1427)이 간행하였는데, 권근(權近)이 저자가 평소 정리해두었던 시고(詩稿)를 가려 뽑고 성석린(1338-1423)이 비점을 찍었다. 이 책에는 권근의 서문이 있다.

그 후 저자가 왕자의 난에 관련되어 처형되면서 문집의 판본들이 흩어져 없어졌으므로, 증손 정문형(鄭文炯:1427-1501)이 경상도관찰사로 재직시인 세조11년(1465)에 초간본에 『 경제문감(經濟文鑑)』·『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불씨잡변(佛氏雜辨)』등을 합편하고, 신숙주(申叔舟:1417-1475)의 서문을 붙이고 7권으로 편집하여 안동부(安東府)에서 목판(木版)으로 간행한 것이 중간본(重刊本)이다.

또한 정문형이 강원도관찰사로 있던 성종18년(1487)에 지방에 흩어져 있었던 제영(題詠) 등 120장을 수집하고 『경제문감별집(經濟文鑑別集)』등을 추가하여 제8권으로 편집하여 강릉(江陵)에서 목판으로 추각(追刻)하여 안동에 옮겨 장판(藏板)한 것이 3간본이다.

2.4.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2호


봉화정씨문헌공파대종회 소장본. 정조 15년(1791) 임금의 명에 따라 모두 14권 7책 분량으로 총 228판 목판으로 발행하였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은 5∼6권에는 중앙집권체제를 강조한『경제문감』과 7∼8권에는 조선시대 법전인『경국대전』의 모체가 된『조선경국전』그리고 9-10권에는『불씨잡변』,『심기리현』, 11∼12권에는 고려 역대왕의 치적을 실은『경제문감별집』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목판은 글자 새김이 정교하여 인쇄문화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 건국이념이기도 한 정도전의 정치, 경제, 철학 사상이 망라된 것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욱 높이 평가된다.

2.5. 구성

3. 승려 지탁(知濯)의 문집 三峰集

조선 후기의 승려 지탁(知濯)이 사망한 후 그의 문손(門孫)인 혜소(慧昭)가 고종 6년, 1869년에 보광사(普光寺)에서 편찬한 지탁의 문집. 동국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저자가 전국의 명승지와 사찰을 다니면서 느낀 바를 기록한 기행문과 시들이 수록된 행각록(行脚錄), 백두산의 자연과 역사적 유물을 기술한 백두산기(白頭山記), 설봉산 석왕사(釋王寺)와 호남 송광사 등에 관하여 서술한 천불산록(千佛山錄)이 있으며, 그외 7언 및 5언으로 된 율시와 절구 300여 수가 수록되어 있다.

또한 금강산유점사설선당중건기(金剛山楡岾寺說禪堂重建記), 유점사법당불량록서(楡岾寺法堂佛量錄序), 신계사유마암신건기(神溪寺維摩庵新建記), 마하연중건기(摩訶衍重建記) 등 금강산의 여러 사찰의 역사와 살림살이, 수행 등을 살필 수 있는 14편의 산문과 기타 여러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1800년대 승려들의 문화와 생활양식, 높은 지식 수준, 당대 사찰의 사회상에 대해 상세히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삼봉집(三峰集) 항목을 참조.

[1] 흔히 조선경국전이 조선 최초의 법전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전혀 아니다. 조선경국전은 정도전 개인이 만든 사찬 법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정식으로 법전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정식으로 사용된 공식적인 조선 최초의 법전은 조준이 만든 《경제육전(經濟六典)》이다. [2]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 5화에서 귀양가는 정도전이 이 시의 일부를 읊는다. [3] 흔히 정도전의 절명시로 알려진 시가 이거다. 하지만 실제 절명시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