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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20:47:59

사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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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만왕(武陵蠻王)
沙摩柯
사마가
(沙)
마가(摩柯)
생몰연도 ?년 ~ 221년

1. 개요

중국 삼국시대의 인물로 촉한에 호응한 무릉만의 왕이다.

2. 정사 삼국지

〈오주전〉과 〈마량전〉과 〈선주전〉에 따르면 유비가 군대를 인솔하여 손권 동오를 정벌하게 되면서 무산, 자귀에 이르자, 마량을 사자로 파견해 무릉으로 들어가 오계(五溪) 지역의 이민족들을 불러들이게 했다. 무릉만을 회유하고 관인과 부신을 주었으며 작위와 상을 약속하니 이민족들의 우두머리들이 모두 다 인수를 받고, 모두 연이어 향응(호응)했다.

〈육손전〉에 따르면 이릉대전에서 육손은 각 군대를 인솔하여 동시에 함께 공격해 장남, 풍습 및 호왕(胡王) 사마가 등의 머리를 베었으며 40여 곳의 진영을 격파시켰다.

3. 삼국지연의

피가 쏠린 듯한 새빨간 얼굴에 푸른 눈동자를 번득이며 철질려골타(鐵蒺藜骨朶)[1]라는 무기와 활을 잘 다루는 장수로 나온다.

정사와 마찬가지로 무릉만의 왕으로서 마량의 권유에 따라 5만 병사를 이끌고 유비와 함께 이릉대전에 참전한다. 전장에서는 손권이 "조조에게 장료가 있다면 내게는 감녕이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오나라 최고의 맹장으로 알려진 감녕을 맞닥뜨려 화살로 사살하는 활약을 하기도 한다. 물론 이 때 감녕은 병중이라 실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했다. 이후 유비가 육손의 기만술에 넘어가 화공에 당해 패주할 때 난전 중에서 주태와의 일기토에 패해 죽는다. 유비의 부하가 아닌 번장으로서 촉한의 장수였던 두로, 유녕 동오에 투항한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다만 감녕 사살은 연의에서의 창작으로 감녕은 실제로는 이릉대전이 일어나기 한참 전인 215년(또는 219년) 사망했다.

4.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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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의 둔기 무기인 추에 쇠 가시를 박아서 만든 무기다. 중세의 모닝스타와 비슷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