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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지명/사례교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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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 三國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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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60년사례지도.png
1. 개요2. 하남윤(河南尹)
2.1. 형양군(滎陽郡)2.2. 원무군(原武郡)
3. 하내군(河內郡)
3.1. 야왕군(野王郡)3.2. 급군(汲郡)
4. 하동군(河東郡)5. 평양군(平陽郡)6. 홍농군(弘農郡)7. 위군(魏郡)8. 광평군(廣平郡)9. 양평군(陽平郡)
9.1. 돈구군(頓丘郡)
10. 같이보기

1. 개요

낙양 주변의 수도권으로, 사례교위가 관장하는 구역[部]이라 '사례교위부(司隸校尉部)'라고 한다. 사례(司隸)란, 원래는 도형(徒刑)을 받는 죄수들인 '도례(徒隸)'를 담당[司]한 관직을 의미한다. 진나라 때에는 수도인 함양이 위치한 관중(關中) 지방에는 군(郡)을 설치하지 않아, 관중의 현(縣)은 중앙의 조정에서 직접 관할했다. 군이 설치된 곳에서는 군에서 직접 도형을 집행했기에, 군이 없는 중앙 직할지에서는 중앙에 도형을 집행하는 관리를 따로 두어야 했다. 기원전 89년에 그들의 총감독관 격인 사례교위를 새로 설치했는데, 질(秩) 2천석 이하의 중앙 관리를 감찰하는 임무를 부여하여, 자사(刺史)가 파견되지 않는 장안과 낙양 주변 일대에서 자사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게 하고, 관중 지역의 치안 활동까지 맡게 했다. 기원전 4년에 사례교위를 폐지했으나 경시제가 다시 설치했다. 후한 때 하남태수가 하남윤으로 격상되면서 옛 하남도위 역할은 사례도위에게 이관되어, 후한의 사례교위는 하남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게 되었다.

사례교위는 중앙 관료들까지 감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에, 매우 큰 요직으로 통했다. 하진이 죽기 전까지 원소가 맡던 벼슬이었다. 조조가 협천자에 성공한 뒤로는 종요가 이 벼슬을 맡으면서 독관중제군(督關中諸軍)을 겸임했다. 촉한은 사례 지방을 장악한 적이 없었지만, 중앙 관료 감찰관으로는 의미가 있었는지 장비가 이 벼슬을 맡았다. 장비 사후에는 제갈량이 사례교위를 겸임했다.우리나라로 치면 이북 5도 도지사?

213년에 조조 구주를 회복한다는 구실로 사례교위를 폐지했다. 삼보와 홍농군·한안군·신평군은 옹주로 소속이 변경되었고, 하남윤은 예주 소속이 되었다. 하내군과 하동군은 관념상 기주 소속이 되었으나, 위공(魏公)의 식읍으로 주어진 곳이었기에 실질적으로 별개의 구역이 되었다. 220년에 조비가 선양을 받고 나서 낙양현을 다시 수도로 정하고 사례교위를 재설치했다.

자사부(刺史部)에 포함되지 않는 사례교위부 지방은 원래 '경사(京師)'라고 지칭했으나, 한나라 전역에 자사부가 형성됨에 따라 자사부가 그 고유 명칭인 '○주(州)'로 약칭되었듯이, 사례교위부는 '사례'로도 약칭되어 현대 한국에 비유하자면 ' 수도권'과 비슷한 뜻으로 쓰였다. 하남군·하내군·하동군은 공통적인 앞 글자인 '하(河)'를 따와 삼하(三河)로 통칭하였다. 221년에 위군을 분할해 광평군·양평군을 설치하였는데, 이 3군을 통칭하여 삼위(三魏)라고 부른다.

삼국시대 위나라에선 사례 지방의 별칭으로 '사주(司州)'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그 말엽에는 공식적인 조서에서도 쓰이는 표현이 되었다. 사마염이 280년에 삼국통일을 달성하자, 사례교위를 폐지하고 사주자사를 임명하여 사례교위부가 공식적으로 '사주'로 개편되었다.

2. 하남윤(河南尹)

하남윤은 정확히는 지역 이름이 아니라 관직명이다. 전한 때는 수도 지역에서 태수와 비슷한 역할을 맡는 관직으로 경조윤(京兆尹)을 두었는데, 그 예에 따라 후한 때 낙양으로 수도를 정하면서 낙양현을 관할하는 하남태수를 하남윤으로 격상시킨 것이다. 현대 한국의 서울특별시장과 비슷한 개념. 하남윤의 관할구역은 그냥 '하남'으로 부르는 것이 보편적이었기에 당시에는 이곳을 따로 '하남군'으로 부른 예는 보이지 않는다. 조조가 허도(許都)로 천도한 이후에도 하남윤을 따로 하남태수로 격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허도가 속해있는 영천군 태수를 윤으로 격상시키지 않았는데, 허도가 어디까지나 임시수도 개념이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마찬가지로 성도를 임시수도로 여기고 있던 촉한 또한 촉군태수를 윤으로 격상시키지 않았다. 원술이 칭제하면서 자신이 머물고 있던 구강군의 태수를 격상시켜 회남윤(淮南尹)으로 만든 사례가 있다.

하남 지역은 전국시대에 한선혜왕이 삼천군을 설치하여 최초로 군이 형성되었다. 진(秦)이 그대로 삼천군으로 유지했다가, 기원전 205년에 한왕(漢王)이 하남군으로 고쳤고, 기원후 39년에 하남윤으로 개편되었다. 280년에 사례교위를 폐지할 때 정식으로 다시 하남군이 되었다.
지명 삼천군(三川郡)→[-205]하남군(河南郡)→[39]하남윤→[서진]하남군
소속 한(韓)→진(秦)→[-89]사례교위부→[-4]경사→[9]보충신향→[23]사례교위부→[213]예주→[220]사례교위부→[서진]사주
치소 낙양현
형양군: 형양현
원무군: 원무현
분합 [삼국]형양도위→[242]형양군→[253]하남윤에 합병→[266]형양군: 형양현·중모현·개봉현·원릉현·경현·밀현
[삼국]원무전농교위→[264]원무군→[266]형양군에 합병: 원무현·권현·양무현
전입 [삼국]홍농군 육혼현 및 예주 영천군 양책현·양성현·윤지현, [서진]홍농군 신안현
폐지 [264?]평현, [서진]곡성현·언사현·신정현·윤지현 및 형양군 원무현
출신 낙양현: 맹광
언사현: 극정
중모현: 반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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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군: 낙양현, 권현, 신안현, 의양현, 노지현, 구지현, 평음현, 신성현, 섬현, 하남현, 형양현, 경현, 성고현, 양무현, 양현, 중모현, 공현, 곡성현, 면지현, 윤지현, 화양현(華陽縣·연혁 미상), 초현(焦縣·연혁 미상) 이외 미상
전한 하남군(22현 276,444호 1,740,279구): 낙양현, 형양현, 언사현, 경현, 평음현, 중모현, 평현, 양무현, 하남현, 구지현, 권현, 원무현, 공현, 곡성현, 고시현, 밀현, 신성현, 개봉현, 성고현, 원릉현, 양현, 신정현
하남군→보충신향 기수군(祈隊郡), 낙양현→의양현(宜陽縣), 언사현→사성현(師成縣), 평현→치평현(治平縣), 양무현→양환현(陽桓縣), 구지현→중정현(中亭縣), 원무현→원환현(原桓縣), 원릉현→좌정현(左亭縣)
후한 하남윤(21성 208,486호 1,010,827구): 낙양현, 하남현, 양현, 형양현, 권현, 원무현, 양무현, 중모현, 개봉현, 원릉현, 평음현, 곡성현, 구지현, 공현, 성고현, 경현, 밀현, 신성현, 언사현, 신정현, 평현
서진 하남군(12현 114,400호): 낙양현, 하남현, 공현, 하음현, 신안현, 성고현, 구지현, 양성현, 신성현, 육혼현, 양현, 양책현
형양군(8현 34,000호): 형양현, 경현, 밀현, 권현, 양무현, 원릉현, 중모현, 개봉현 }}}}}}}}}
영제가 184년에 낙양 주변의 함곡관·광성관·이궐관·대곡관·환원관·선문관·소평진·맹진 8곳에 도위를 두었는데, 이를 통칭해 '낙양 8관'이라 부른다.

2.1. 형양군(滎陽郡)

조조가 213년 이전에 하남윤에 형양도위(滎陽都尉)를 설치하여 형양현·중모현·개봉현·원릉현·경현·밀현·원무현·권현·양무현을 관할하게 했다. 242년에 정식으로 형양군으로 승격했으나, 253년 무렵에 폐지되어 다시 하남윤에 합쳐졌다. 서진 때인 266년에 다시 형양군으로 승격했다.

2.2. 원무군(原武郡)

둔전 시행 때 전농교위가 관할하던 구역으로 260년 시점에선 원무전농교위부(原武典農校尉部)가 정식 명칭이나, 당대에도 사실상 원무군으로 통칭했던 것으로 보인다. 242년에 형양군에 소속되었으나, 253년 무렵 하남윤으로 복귀했다. 264년에 둔전제가 폐지되면서 정식으로 원무군으로 승격했으나, 서진 때인 266년에 폐지되어 형양군에 합병되었다.

3. 하내군(河內郡)

소속 진(秦)→[-89]사례교위부→[-4]경사→[9]보충신향→[23]사례교위부→[213]기주 위국(魏國)→[220]사례교위부→[서진]사주
치소 회현→[265]야왕현→[서진]회현
조가군(급군): 조가현→[226?]급현
야왕군: 야왕현
분합 [223]기주 조가군→[226]하내군에 병합→[삼국]급군전농중랑장부→[266]급군: 급현·획가현·수무현·공현 및 기주 위군 조가현·임려현
[삼국]야왕전농중랑장부→[264]야왕군→[265]하내군에 병합: 야왕현·심수현
전입 [226]조가군 조가현·임려현
전출 [213]조가현·임려현·탕음현→위군
폐지 [삼국]파현, [서진]무덕현
출신 지현: 서상
온현: 사마방· 사마의 등 하내 사마씨
현 미상: 한호
봉작 조조-위공(213~216)→왕(216~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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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내군: 회현, 온현, 지현, 무덕현, 수무현, 야왕현, 공현, 산양현, 조가현, 급현, 하양현, 탕음현, 융려현, 안양현, 주현, 내황현, 번양현, 형구현, 곡양현(曲陽縣·연혁 미상) 이외 미상
전한 하내군(18현 241,246호 1,067,097구): 회현, 급현, 무덕현, 파현, 산양현, 하양현, 주현, 공현, 평고현, 조가현, 수무현, 온현, 야왕현, 획가현, 지현, 심수현, 융려현, 탕음현
하내군→보충신향 후수군(後隊郡), 회현→하내현(河內縣), 하양현→하정현(河亭縣), 조가현→아가현(雅歌縣), 야왕현→평야현(平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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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하내군(9현 52,000호): 야왕현, 주현, 회현, 평고현, 하양현, 심수현, 지현, 산양국, 온현
급군(6현 37,000호): 급현, 조가현, 공현, 임려현, 획가현, 수무현 }}}}}}}}}

3.1. 야왕군(野王郡)

둔전 시행 때 전농중랑장이 관할하던 구역으로 260년 시점에선 야왕전농중랑장부(野王典農中郞將部)가 정식 명칭이나, 당대에도 사실상 야왕군으로 통칭했던 것으로 보인다. 264년에 둔전제가 폐지되면서 정식으로 야왕군으로 승격했으나, 서진 때인 265년에 폐지되어 하내군에 합병되었다.

3.2. 급군(汲郡)

223년 무렵에 기주 위군 조가현·임려현과 하내군 급현·획가현·수무현·공현을 분할해 조가군(朝歌郡)을 설치하고 기주에 소속하게 했으나, 226년 무렵 폐지되어 하내군에 합병되었다. 당시 조가군에 소속되었던 현들은 하내군 소속의 급군전농중랑장부(汲郡典農中郞將部)로 재편된 것으로 보이는데, 정식으로 군으로 분리된 것이 아님에도 이미 급군으로 쓰이고 있음이 확인된다. 둔전제가 폐지된 264년에 군(郡)으로 전환되지 못한 것을 보면 264년 이전에 전농관이 폐지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이나, 266년에 급군(汲郡)이 정식으로 분할되었다.

4. 하동군(河東郡)

둔전이 시행된 시기에는 전농중랑장(典農中郞將)이 임명되었다.
지명 하동군→[222]하동국(河東國)→[224]하동군
소속 진(秦)→[-89]사례교위부→[-4]경사→[9]보충신향→[23]사례교위부→[213]기주 위국(魏國)→[220]사례교위부→[263]진국(晉國)→[265]사례교위부→[서진]사주
치소 안읍현
분합 [247]평양군: 평양현·양현·임분현·피지현·강읍현·영안현·양릉현·북굴현·포자현·호섭현
설치 [삼국]호섭현
전출 [서진]확택현·단지현→평양군
출신 해현: 관우
문희현: 관구검 일족
양현: 서황
봉작 조조: 위공(213~216)→왕(216~220)
조림: 하동왕(222~224)
사마소: 진공(263~)→왕(264~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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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군: 안읍현, 포판현, 분음현, 피지현, 임분현, 강현, 체현, 좌읍현, 평양현, 신양릉현, 호택현, 원현, 양현, 포자현, 북굴현, 의지현, 토군현, 풍현(風縣·연혁 미상), 지주현(底柱縣·연혁 미상)[7] 이외 미상
전한 하동군(24현 236,896호 962,912구): 안읍현, 대양현, 의지현, 해현, 포판현, 하북현, 좌읍현, 분음현, 문희현, 확택현, 단지현, 임분현, 원현, 피지현, 장수현, 평양현, 양릉현, 체현, 양현, 북굴현, 포자현, 강현, 호섭현, 기국
하동군→보충신향 조수군(兆隊郡)[8], 안읍현→하동현(河東縣), 대양현→근전현(勤田縣), 포판현→포성현(蒲城縣), 좌읍현→조정현(兆亭縣), 피지현→연평현(延平縣), 평양현→향평현(香平縣), 양릉현→간창현(幹昌縣), 체현→황성현(黃城縣), 양현→연정현(年亭縣), 북굴현→짐북현(朕北縣)
후한 하동군(20성 93,543호 570,803구): 안읍현, 양현, 평양국, 임분현, 분음현, 포판현, 대양현, 해현, 피지현, 문희읍, 강읍, 영안현, 하북현, 의지현, 동원현, 양릉현, 북굴현, 포자현, 확택국, 단지현
서진 하동군(9현 42,500호): 안읍현, 문희현, 동원현[9], 분양현, 대양현, 의지현, 해현, 포판현, 하북현 }}}}}}}}}

5. 평양군(平陽郡)

247년에 하동군에서 분할되었다.
소속 [247]사례교위부 평양군→[263]진국(晉國)→[265]사례교위부→[서진]사주
치소 평양현
전입 [213]하동군 평양현·양현·임분현·피지현·강읍현·영안현·양릉현·북굴현·포자현·호섭현, [서진]하동군 확택현·단지현
봉작 사마소: 진공(263~)→왕(264~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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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평양군(12현 42,000호): 평양현, 양현, 단지현, 영안현, 포자현, 호섭현, 양릉현, 강읍현, 확택현, 임분현, 북굴현, 피지현 }}}}}}}}}

6. 홍농군(弘農郡)

둔전이 시행된 시기에는 이 지역에 낙양전농중랑장(洛陽典農中郞將)이 임명되었다.
지명 [-113]홍농군→[189]홍농국(弘農國)→[190]홍농군
소속 [-89]사례교위부→[-4]경사→[9]보충신향→[23]사례교위부→[213]옹주→[220]사례교위부→[263]진국(晉國)→[265]사례교위부→[서진]사주
치소 홍농현
낙양전농중랑장: 의양현 양시읍
전출 [266]노지현→상락군, [삼국]육혼현→하남윤, [서진]신안현→하남군
출신 화음현: 양표· 양수 부자
봉작 유변: 홍농왕(189~199)
사마소: 진공(263~)→왕(264~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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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홍농군(11현 118,091호 475,950구): 홍농현, 노지현, 섬현, 의양현, 면지현, 단수현, 신안현, 상현, 석현, 육혼현, 상락현
홍농군→보충신향 우수군(右隊郡), 노지현→창부현(昌富縣), 섬현→황미현(黃眉縣), 면지현→섬정현(陝亭縣), 석현→군정현(君亭縣)
후한 홍농군(9성 46,815호 909,113구): 홍농현, 섬현, 면지현, 신안현, 의양현, 육혼현, 노지현, 호현, 화음현
서진 홍농군(6현 14,000호): 홍농현, 호현, 섬현, 의양현, 면지현, 화음현 }}}}}}}}}

7. 위군(魏郡)

둔전이 시행된 시기에는 전농중랑장(典農中郞將)이 임명되었다. 조비가 선양을 받은 이후, 220년에 사례교위를 재설치하면서 사례교위부에 소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221년에 위군을 분할해 새로 광평군·양평군이 설치되자 위군과 함께 '삼위(三魏)'로 통칭하였다.
소속 [한]기주자사부→[213]기주 위국(魏國)→[220?]사례교위부→[서진]사주
치소 업현
분합 [213]서부도위→[221]광평군: 곡량현·평은현·섭현·무안현·임현·남화현·광평현·척장현·곡주현·열인현·광년현·한단현·역양현·양국현·비향현
[213]동부도위→[221]양평군: 관도현·원성현·청연현·동무양현·발간현·낙평현·양평현
설치 [249?]안양현, [264]장락현
전입 [213]하내군 조가현·임려현·탕음현 및 거록군 임현·남화현·광평현·척장현·곡주현·열인현·광년현 및 조군 한단현·역양현·양국현 및 연주 동군 동무양현·발간현·낙평현·양평현·돈구현
전출 [223]조가현·임려현→조가군
폐지 [삼국]양기현
봉작 조조: 위공(213~216)→왕(216~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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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위군(18현 212,849호 909,655구): 업현, 관도현, 척구현, 사현, 내황현, 청연현, 위현, 번양현, 원성현, 양기현, 여양현, 즉비국, 무시현, 감회국, 음안현, 평은국, 감구국, 무안현
위군위성군(魏城郡), 척구현→이구현(利丘縣), 위현→위성정현(魏城亭縣), 여양현→여증현(黎蒸縣), 즉비국→즉시현(卽是縣), 평은국→연평현(延平縣), 무안현→환안현(桓安縣)
후한 위군(15성 129,310호 695,606구): 업현, 번양현, 내황현, 위현, 원성현, 여양현, 음안읍, 관도현, 청연현, 평은현, 사국, 척구현, 무안현, 곡량국, 양기현
서진 위군(8현 40,700호): 업현, 장락현, 위현, 척구현, 안양현, 탕음현, 내황현, 여양현 }}}}}}}}}

8. 광평군(廣平郡)

원래 기원전 144년에 설치된 군인데, 후한 때인 31년에 폐지되었다. 60년에 광평왕이 책봉되면서 다시 설치되었다가, 82년에 광평왕이 전봉(轉封)되면서 환원되었다. 221년에 위군서부도위부(魏郡西部都尉部)가 군으로 승격될 때 옛 지명에서 따와 광평군이 되었다.
지명 [-144]광평군→[전한]광평국(廣平國), [213]서부도위부(西部都尉部)→[221]광평군→[222]광평국→[223]광평군
소속 [전한]기주자사부→[31]거록군에 합병, [60]기주자사부→[82]거록군에 합병, [213]기주 위국(魏國) 위군→[221]사례교위부 광평군→[서진]사주
치소 [전한]광평현, [213]곡량현→[서진]광평현
전입 [213]위군 곡량현·평은현·섭현·무안현·임현·남화현·광평현·척장현·곡주현·열인현·광년현·한단현·역양현·양국현·비향현
설치 [221]비향현(한단현·열인현 분할), [222]임수현(무안현 분할)
폐지 [서진]곡주현
봉작 조엄(曹儼): 광평왕(22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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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광평국(16성 27,984호 198,558구): 광평현, 장현, 조평현, 남화현, 열인현, 척장현, 임현, 곡주현, 남곡현, 곡량국, 광향현, 평리현, 평향현, 양대국, 광년현, 성향현
광평국부창군(富昌郡)
서진 광평군(15현 35,200호): 광평현, 한단현, 역양현, 무안현, 섭현, 양국현, 남화현, 임현, 곡량현, 열인현, 비향현, 임수현, 광년현, 척장현, 평은현 }}}}}}}}}

9. 양평군(陽平郡)

221년 위군동부도위부(魏郡東部都尉部)가 승격하면서 설치되었다.
지명 [213]동부도위부(東部都尉部)→[221]양평군
소속 [213]기주 위국(魏國) 위군→[221]사례교위부→[서진]사주
치소 관도현→[서진]원성현
돈구군: 돈구현
분합 [266]돈구군: 돈구현·위국 및 위군 번양현·음안현
전입 [213]위군 관도현·원성현·청연현·동무양현·발간현·낙평현·양평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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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양평군(7현 51,000호): 원성현, 관도현, 청연현, 발간현, 동무양현, 양평현, 낙평현
돈구군(4현 6,300호): 돈구현, 번양현, 음안현, 위국 }}}}}}}}}

9.1. 돈구군(頓丘郡)

266년에 양평군 돈구현·위국과 위군 번양현·음안현을 분할해 설치했다.

10. 같이보기

파일:실제 지도 후한 13주.png

[1] 사례교위는 본래 중앙관이기 때문에 수도에서 근무했다. 조조가 종요를 사례교위로 임명한 뒤로 사례교위가 폐지될 때까지 계속 장안현에 주둔시켰다. [2] 왕망이 태수를 대윤(大尹)으로 고쳤는데, 옛 삼보 지역은 6개의 위군(尉郡)으로 나눠 각각 대부(大夫)를 임명했고 이를 경조대윤(京兆大尹)이 관할하게 했다. 하남대윤(河南大尹)은 보충신경(保忠信卿)으로 고치고 그 관할구역을 보충신향(保忠信鄕)이라고 불렀는데, 삼하와 홍농군·영천군·남양군을 6개의 수군(隊郡)으로 개편하여 각각 대부를 임명해 보충신경의 관할을 받게 했다. 모두 신나라가 망하면서 환원되었다. [3] 경조윤·좌빙익·우부풍·홍농군·한흥군(한안군)·신평군→옹주, 하남윤→예주, 하내군·하동군→기주 위국(魏國) [4] 예주 하남윤, 기주 하내군·하동군, 옹주 홍농군. 경조군·빙익군·부풍군·신평군은 옹주에 남았고, 기존 한흥군은 폐지되어 부풍군에 합병되었다. [5] 후한 때까지 사례교위부는 원래 경조윤·우부풍·좌빙익·홍농군·하남군·하내군·하동군 총 7곳이었다. 이중 경조윤·우부풍·좌빙익은 원래 삼보(三輔)로 통칭하는 관직인데, 삼보는 이들의 관할구역을 가리키는 지명으로도 쓰였다. 『진서』 지리지에는 당시 삼보가 사례교위부에 소속되고 위군 등은 서진 때 사주(司州)로 이속했다고 쓰여있으나, 실제론 이때 삼보는 옹주에 소속되었다. 또한 위 왕조의 핵심 지역을 서진이 특별히 수도권 개념으로 통하는 사주로 편성할 이유는 없으며, 위나라 때 기주목의 치소가 위군 업현에서 이전했다. 따라서 해당 기록은 오류로 판단되며, 사례교위가 복구될 때 삼보 대신에 위군이 소속된 것으로 보인다. [6] 흔히 '호로관'으로 읽히고 있지만, 사실 잘못된 독음이다. [7] 정황상 대양현의 전신으로 보이나 명확하지 않다. [8] 『한서』 지리지에는 조양군(兆陽郡)으로 오기(誤記)되었다. [9] 『진서』 지리지에는 전한 이전 이름인 원현으로 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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