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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홀 Billy Ha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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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윌리엄 얼 홀 William Earl Hall |
출생 | 1969년 6월 17일 ([age(1969-06-17)]세) |
미국 캔자스주 위치타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위치타 주립대학교 |
신체 | 175cm, 81kg |
포지션 | 내야수, 외야수 |
투타 | 우투양타 |
프로 입단 | 1991년 드래프트 17라운드 (전체 445번, SD) |
소속팀[1] | 삼성 라이온즈 (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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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동한 외국인 선수.2. 선수 경력
2.1. 삼성 라이온즈
2.1.1. 1999 시즌
1999 시즌 기록 | |||||||||||||||||||
경기 | 타석 | 타수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볼넷 | 삼진 | 병살타 | 도루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WAR | wRC+ | |
116 | 458 | 414 | 101 | 12 | 3 | 4 | 73 | 23 | 34 | 68 | 5 | 47 | 0.244 | 0.303 | 0.316 | 0.619 | 0.73 | 61.7 |
빌리 홀은 1991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지명되어 입단했는데 더블A까지는 나름대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트리플A 승격 후 부진하면서 결국 메이저리그 입성에는 실패했고 마이너리그에서만 활동했다. 그러던 중 KBO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트라이아웃에 참가하게 되었다.
1999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당시 삼성은 1라운드에서 찰스 스미스를 이미 뽑아둔 상황에서 서정환 감독이 원래 기존에 뽑으려고 했던 선수를 포기하고 백업 키스톤이 필요했던 팀 사정상 유격수를 볼 수 있는 선수를 2라운드에서 원하면서 원래 뽑을 수 있던 선수 대신 유격수 경험이 있고 트라이아웃에서 빠른 발을 보여준 빌리 홀을 지명한다. 참고로 홀을 지명하면서 서정환 감독이 2라운드에서 기존에 뽑으려다가 포기했던 선수가 바로 제이 데이비스다.[3][4]
주전 유격수를 맡아달라고 뽑은 홀이었지만,[5] 원래 홀은 마이너리그에서 주로 2루수로 활약했고 유격수는 그야말로 가끔 볼 정도였다. 게다가 수비도 주전으로 쓰기에는 영 안 좋아서 결국 홀을 중견수로 돌렸다. 홀은 마이너리그에서 중견수를 본 경험이 있기도 했는데 원래 자기 포지션이 아니다 보니 외야수비도 불안했다.[6] 결국 홀의 지명은 정규시즌 시작 전부터 실패였던 셈이었다. 시범경기 때 6할대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희망의 불씨를 피우는 듯했지만 정규시즌 타율은 0.244로 타격도 부진했다. [7] 여기에 홀은 포스트시즌에서도 부진하면서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 실패의 원흉이 되고 말았다.
홀의 수비나 타격은 그야말로 흑역사로 손꼽히기에 손색 없었지만, 그래도 유일한 장점인 빠른 발을 앞세워 47개의 도루를 기록하면서 정수근에 이어 도루 2위를 차지했다. 비록 도루 1위를 하지는 못했지만 홀의 도루 기록은 2014년 김상수가 53도루를 달성하기 전까지 역대 삼성 선수 중 한 시즌 최다 도루 기록이었다.[8] 그리고 현재까지도 외국인 한 시즌 최다 도루기록으로 남아있다. 그의 활약?으로 1999년 삼성은 1991년 해태 타이거즈에 이어 두번째로 팀 140-140을 기록했다.
시즌 후 삼성은 빠른 발 빼고는 장점이 없는 홀과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그의 빈 자리를 다음 시즌에 대신하게 되는 선수가 바로 훌리오 프랑코.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 홀은 독립리그 팀에 입단해 다시 내야수로서 활동하면서, 미국으로 돌아간 직후인 2000년에는 무려 104개의 도루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2002년을 제외하면 매년 4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했다. 이러한 기록 때문인지 2003년부터 2년간 플로리다 말린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서 활동하기도 했지만 메이저리그 입성에는 실패했다. 다시 독립리그로 돌아온 2005년에는 62개의 도루를 기록했고 그 해 은퇴했다.
3.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9]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OPS |
1999 | 삼성 | 116 | .244 | 101 | 12 | 3 | 4 | 23 | 73 |
47 (2위)[10] |
34 | 2 | 68 | .303 | .316 | .620 |
KBO 통산 (1시즌) |
116 | .244 | 101 | 12 | 3 | 4 | 23 | 73 | 47 | 34 | 2 | 68 | .303 | .316 | .620 |
4. 기타
마구마구에서 1999 시즌 기록이 반영된 스페셜카드가 있다. 선수명은 원래라면 그의 본명이 쓰였는데 2023년 7월 26일에 성명권 문제로 인하여 ‘휴고’로 개명 당했다.5. 관련 문서
[1]
메이저리그 활동 기록이 없다. 여담이지만 이 선수가 마이너에서 승격을 다투던 2002년
밀워키 브루어스에 이름이 같은 유틸리티 야수 빌 홀이 데뷔했다. 체격도 비슷한 흑인 선수라 두 선수를 혼동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빌 홀은 2006년 깜짝 35홈런을 터뜨리기도 했다.
[2]
쉽게 말하자면 wRC+는 높을수록 좋고, 100이 정확히 리그 평균으로 평가되니 빌리 홀은 평균보다 한참 아래였다고 보면 편하다.
[3]
1999년에 삼성이
제이 데이비스를 지명했다면 프로야구 판도는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지극히 결과론일 뿐이다. 당시 삼성은 센터 내야수가
정경배,
김태균, 그나마 써먹을 수 있던 백업 내야수로는 은퇴를 코앞에 두었던
류중일 정도밖에 없었던 데다가
김재걸이 군 복무를 하고 있었던 상황인지라 서정환 감독의 이러한 결정은 당시로써는 현명한 선택이긴 했다. 문제는 이러한 뎁스의 부재를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지명되었던 홀이 예상외로 수비를 너무 못했다는 것. 빠른 발의 이점을 살려 중견수로 전환시켰지만 외야 수비조차도 너무 못해서 나중에는 주로 대주자 등으로 나갔다.
[4]
제이 데이비스 항목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당시 데이비스는 트라이아웃 당시에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거의 몇 안되는 장점이라고는 다른 트라이아웃 참가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 정도였던 수준이었다. 이 데이비스를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이
서정환 감독이였고, 실제로 지명 직전까지 갔다가 팀의 내야 뎁스 사정으로 포기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제이 데이비스는 거의 최하위 지명 순번에 자리하고 있던
한화 이글스가 독한 선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한번 긁어나 보자 하고 2라운드 지명이 되었고, 그 결과는...
[5]
당시 삼성의 주전 유격수는
김태균. 타격은 그나마 한 방 쳐줄수 있는 장타력을 갖고 있었으나 컨택이 약한 편이었고, 유격수 치고 수비력이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6]
그래서인지 그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팬들로부터 '블랙홀'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흑인이라서 자칫
인종차별적 인상을 줄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인터넷 매체가 그렇게 발달해 있던 시기도 아닌데다가 성적이 별로라서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7]
시범경기의 기세를 이어가 시즌 초반엔 제법 활약을 해주었다. 하지만 곧 밑천이 드러나며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고 때마침 스미스가 살아나면서 홀은 그야말로 묻히게 된다.
[8]
김상수 이전의 삼성 소속 국내 선수가 기록했던 한 시즌 최다도루 기록은 1996년
김재걸의 40도루.
[9]
KBO에서의 성적만 기입
[10]
2014년
김상수가 53도루를 기록하기 전까지 삼성 타자 중 한 시즌 최다 도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