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6.25 전쟁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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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6.25 전쟁 시기 북한군과 중공군, 남로당 좌익 세력들은 우익 세력, 정치인, 군인, 경찰, 공무원, 지주, 교사, 자본가, 기독교인[1], 지역 토호 혹은 그들의 가족 및 민간인들을 학살하였다.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 적대세력 사건"이라고 지칭한다. 여기서 '적대세력'이라 함은 비단 북한군 외에도 중공군, 남로당, 빨치산, 지방 좌익, 민병대 등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이 적대한 공산권 세력 전반을 아우른다. 가령 퇴각하던 북한군이 약 500명의 희생자들을 집단 살해했던 전주형무소 2차 학살 사건의 경우, 진화위에서 지칭하는 공식 명칭은 전주형무소 적대세력사건이다.
2. 피학살자 수 추산
-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20,000 ~ 30,000명[5]
- 정전협정 후 전범재판을 준비하는 데 참여했던 미국인들 : 29,915명[6]
3. 학살 건수 추산
- 약 1,100건(브루스 커밍스)[8]
4. 목록
- 303고지 학살 사건
- 6.25 전쟁 당시 소련군의 폭격
- 6.25 전쟁기 부역혐의 학살
- 좌익 치안대의 학살
5. 관련 문서
[1]
북한군과 좌익세력은 인천상륙작전 이후 퇴각하면서 집중적으로 기독교인을 학살했다.
#
[2]
<대한민국 통계연감> 1952년 판에서는 122,799명, 1955년 판에서는 128,000명으로 나와 있다.
[3]
사회학자이자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
[4]
김동춘,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사계절, 2013, 334쪽.
[5]
미국과 한국의 조사를 토대로 계산한다면, 북한군과 남한의 공산주의 협력자들이 학살한 사람의 수는 대략 20,000 ~ 30,000명 사이라고 하지만, 그런 수치의 방법은 의문이라고 보았다.
[6]
이 수치에는 1950년 여름 한국에서 인민군과 좌익에 의해 자행된 몇몇 잔학 행위가 포함되었다고 한다.
브루스 커밍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현실문화, 2017, 261 ~ 262쪽. 물론 이와 더불어 브루스 커밍스는 6.25 전쟁 당시 좌익에 의한 학살은 경찰과 우익 청년단체들을 노린 학살이었음을 강조하지만, 북한군과 좌익이 100,000명이 아니라 30,000명을 죽였다 해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7]
중공군의 학살만 포함했을 시
[8]
브루스 커밍스는, 2010년에 낸 저서『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에서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좌익에 의한 학살은 1,100건이었던 반면, 우익이 저지른 학살은 그 보다 더 많았고, 학살 비율로 따졌을때, 좌익의 학살 비율이 우익들의 학살 비율에 1/6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9]
한국 전쟁 시기 지주와 기독교인이 많았던 전남 지역에 좌익의 학살이 집중됐는데 그 중에서도 영광군에서 최대 피해가 났다.
#
[10]
좌우익의 대립으로 인한 상호 학살. 빨치산과 좌익이 학살을 하고 보복으로 군경이 좌익 시민들을 학살했다.
[11]
좌우익의 대립으로 인한 상호 학살. 빨치산의 준동과 저항이 극심했으며 기독교인과 우익시민들이 학살 당하자(
이 기사에 따르면 1954명이라고 한다.) 11사단을 중심으로 좌익 시민들을 보복 학살했다.
[12]
좌우익의 대립으로 인한 상호 학살이었다.
[13]
중공군에게 학살당한 포로들은 2만 9815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
[14]
6.25 전쟁 시기에만 최대 120,000명에 달한다.
# 또한 전쟁 이후에도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