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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릴 열도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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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릴 열도와 해상 경계선 변화
언어별 명칭
영어 The Kuril Islands dispute
러시아어 Проблема принадлежности
южных Курильских островов
일본어 [ruby(北方領土問題, ruby=ほっぽうりょうどもんだい)]
한국어 쿠릴 열도 분쟁[1]

1. 개요2. 역사
2.1. 행정구역
3. 협상과 분쟁
3.1. 2010년대 동향3.2. 2020년대 동향3.3. 2020 도쿄 올림픽에서3.4. 2022년 러일 평화조약 체결 협상 중단
4. 일본의 주장5. 러시아의 주장6. 일본과 러시아의 원주민 탄압7. 반환 가능성
7.1. 시코탄·하보마이 2개 섬 반환?
8. 다른 패전국들의 영토 상실과의 비교9. 국제사회의 입장
9.1. 대한민국9.2. 중국9.3. 미국9.4. 기타 국가들
10. 기타
10.1. 홋카이도와 쿠릴 열도10.2. 북쿠릴 열도와 남사할린10.3. 쿠릴 열도의 러시아군
11. 서브컬처에서의 등장12. 관련 문서1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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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 소련과 그 후신인 러시아가 지배하고 있는 쿠릴 열도(Кури́льские острова́, 일본명 치시마 열도) 가운데 남단 4개 섬에 대하여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불거진 영토 분쟁이다. 남쿠릴 열도 분쟁이라고도 하며[2], 일본에서는 흔히 북방영토 문제(北方領土問題), 또는 북방 4도 문제(北方四島問題)라고 칭한다.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4개 섬은 각각 '쿠나시르 / 구나시리(Кунашир / 国後)', '이투루프 / 에토로후(Итуруп / 択捉)', '시코탄(Шикотан / 色丹)', '하보마이(Хабомай / 歯舞)' 군도이며 이들 면적의 총합은 5,003km²에 달한다.[3] 이 가운데 하보마이 군도는 단일 섬이 아니라 여러 자잘한 섬들로 이루어져 있으나, 편의상 단일 섬으로 간주한다.

이 섬들은 일본의 홋카이도와 러시아의 캄차카반도 사이에 펼쳐져 있는 쿠릴 열도의 남부에 해당하며, 네무로 해협을 사이에 두고 쿠나시르 섬, 하보마이 군도와 마주하고 있다.

2. 역사

이 섬들의 원주민은 아이누[4]였으나 국가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역사적으론 일본 러시아가 초기에 어느 쪽의 영토로 인식했는지 애매하다. 일본은 1644년 에도 막부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 시절부터 이미 일본의 영토였다고 주장하고, 러시아는 자국 탐험가 알렉세이 알렉세예비치 포포프(Aleksey Alekseyevich Popov)가 1649년에 열도를 발견하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 양국 모두 17세기에 쿠릴 열도를 직접 지배지로 편성하지 못했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쿠릴과 사할린 지역을 두고 러일 양국 간의 기싸움이 더욱 심화된다. 일본은 일본대로 마츠마에 번 1754년 쿠나시르, 이투루프, 우루프 일대에 장소(가신의 지행지)를 설치하여 남쿠릴 지역을 간접적으로 관리하였으며,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1711년부터 카자크를 중심으로 하는 극동 탐사대가 캄차카 반도에서 홋카이도 동해안까지 탐사를 이어가며 쿠릴 열도 원주민들로부터 조세를 거두었다. 이 중 쿠나사르를 비롯한 남쿠릴의 경우 지리적인 이유로 일본의 영향력이 더욱 강했다. 1807년에는 에도 막부의 쇄국 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러시아 상인들이 사할린, 이투루프 등에 있는 일본인 거점을 습격하는 사태가 벌어지며 오호츠크 해 일대를 두고 양국 간의 경쟁이 심화되었다.

1855년 일본과 러시아는 러일화친조약(시모다 조약)에서 일본의 북방 국경을 이투루프-우루프 섬 사이로 정하고, 사할린(일본명 가라후토)은 양국의 공동 관할지(잡거지)로 삼았다. 그러나 사할린 내 러시아와의 파워 게임에서 부담을 느낀 일본 1875년 사할린에서 손을 떼는 대가로 쿠릴 열도(일본명 치시마 제도) 전체를 교환하자고 제안했으며, 이것이 성사되어 사할린-치시마 교환조약(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이 체결되고 일본은 쿠릴 열도를, 러시아는 사할린 전역을 점유하였다.

1905년 일본은 러일전쟁을 일으켜 러시아를 제압하고 미국 중재 하에 포츠머스 조약을 통하여 원래 러시아가 가졌던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까지 수중에 넣었다. 이후 일본은 2차 세계 대전 동안 나치 독일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는 소련을 건드리지 않을 테니 대신 일본이 동인도, 인도차이나 등을 침공하는 것에 간섭하지 않으며 서로의 영토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긴 소련-일본 중립 조약을 소련에 요구하여 1941년에 체결하였다.

그러나 나치 패망 이후 소련은 얄타 회담에서 대일전 참전을 대가로, 러시아가 러일전쟁 때 빼앗긴 영토권(남사할린)을 회복하고 쿠릴 열도를 다시 이양받는 것을 허가한다는 약속을 받았다. 전쟁의 대가를 미국으로부터 약속받은 소련은 만주 전략 공세 작전을 개시하여 소련-일본 전쟁을 치렀다.

이후 소련은 일본 제국의 옥음방송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식적인 항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5] 소련에 떼어주기로 미국이 약속한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전투를 개시해 1945년 8월 18일 슘슈 섬 전투를 시작으로 9월 3일에 쿠릴 열도 전역을 점령했다. 당시 이오시프 스탈린 미국에 홋카이도 반분까지 요구했으나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거부하자 미국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쿠릴 열도 점령으로 만족했고 미국도 이를 묵인했다. 일본의 패전 이후 열린 도쿄 전범 재판에서 소일 중립 조약은 “성의 없이 체결된 조약으로서 일본이 소련을 침략하기 위해 이용된 것”이라는 판결을 통해 무효화되었으며 일본은 쿠릴 열도 전체의 영유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이 담긴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 서명하였다. 정작 소련은 자국이 조약 작성에 초대되지 않았다는 점, 일본의 군국주의 재발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점, 그리고 일본의 가장 큰 피해국인 이 조약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일본이 구 영토 영유권을 포기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서명하는 것을 끝내 거부하였지만 얄타 회담 때의 약속을 토대로 쿠릴 열도는 자연스럽게 소련의 영토로 귀속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에 일본은 소련이 당시 조약을 통하여 가져간 시코탄 섬과 하보마이 군도는 쿠릴 열도에 포함이 되지 않는다며 이때부터 소련에 반환 요구를 시작하였다. 이후 1960년대에는 쿠나시르 섬과 이투루프 섬 역시 역사적으로 쿠릴 열도가 아닌 일본의 북방 영토에 포함된다며 이른바 북방 4도라 부르는 총 4개 섬의 반환을 요구하였다.[6]

1956년 소일공동선언에서 평화조약 체결 후 소련은 시코탄 섬과 하보마이 군도를 일본에 반환하기로 합의했으나, 1960년 일본이 미국과 미일안보조약을 개정하자, 거세게 반발하며 영토 반환을 거부하여 교섭은 결렬되었다. 이후 일본에서도 사회-정치의 우경화가 심화됨에 따라 섬 두 개를 받을 게 아니라 아예 북방 4도를 전부 돌려받자는 여론이 커졌고, 결국 이것이 정론이 되었다.

심지어 일본공산당 쿠릴 열도 전체를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유인 즉,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으로 사할린을 포기하는 대가로 쿠릴 열도 전체의 일본 영유가 확정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일본 공산당이 집권한다고 가정한다면, 한일관계의 급개선과[7] 러일관계의 단절이라는 양날검과 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물론 이같은 상황은 미국에는 매우 큰 호재로 작용할 것이다. 명분과는 별도로 홋카이도 자체가 교토, 도호쿠, 오키나와 등지와 더불어 일본에서 진보좌파 혁신계가 나름 선전하는 지방이고 현지 중요 지지기반 중 하나가 구 가라후토를 비롯한 북방 실향민 어민들이라 이 문제에 강경한 것으로 보인다.

2.1. 행정구역

현행 러시아 행정구역
(전체 극동 연방관구 사할린주 관할)
일본이 주장하는 행정구역
(전체 홋카이도 네무로 진흥국 관할)
하보마이 군도 남(南)쿠릴군(郡) 관할, 마을 없음 네무로시 관할
시코탄 섬 남쿠릴군(Южно-Курильский городской округ; 유즈노쿠릴스키 군) 말로쿠릴스코예(Малокурильское)·크라보자보츠코예(Крабозаводское) 마을 시코탄군(色丹郡) 시코탄 촌(色丹村)
쿠나시르 섬 남쿠릴군 남쿠릴시(Южно-Курильск; 유즈노쿠릴스크), 골로브니노(Головнино), 두보보예(Дубовое), 멘델레예보(Менделеево), 오트라다(Отрада) 마을. 마야크 롭초바(Маяк Ловцова)·부로바야 루드니(Буровая Рудный)·자스타바 도쿠차예바(Застава Докучаева) 마을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 구나시리군(国後郡) 도마리 촌(泊村), 루요베쓰 촌(留夜別村)
이투루프 섬 쿠릴군(; 쿠릴스키 ) 쿠릴시(Курильск; 쿠릴스크), 고랴치예 클류치(Горячие Ключи), 고르노예(Горное), 레이도보(Рейдово), 리바키(Рыбаки), 부레베스트니크(Буревестник), 키토보예(Китовое) 마을 에토로후군(択捉郡) 루베쓰 촌(留別村)
샤나군(紗那郡) 샤나 촌(紗那村)
시베토로군(蘂取郡) 시베토로 촌(蘂取村)
일본이 주장하는 해당 지역은 내각부 설치법 제14조 제1항 제3호로 규정하는 해당 범위를 정하는 정령을(1959년 정령 제33호를) 따라 북방지역(北方地域)이라고 부른다.

3. 협상과 분쟁

평화조약 체결이 결렬된 1960년대 이후 소련은 일본의 영토 반환 요구를 일관적으로 무시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들어 소련이 붕괴되고 신생 러시아가 수립되자 양국 사이에 반환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사실 1990년대는 신생 러시아 연방이 친서방적인 정책을 펼쳤고, 옐친 정부의 자본주의 전환 실패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던 시절이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블라디미르 푸틴이 집권한 이후로는 러시아의 경제적 사정이 다시 나아졌고, 1990년대 옐친의 친서방 정권이 결국 실패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동으로 러시아가 반서방 성향으로 차츰 기울면서 강경파들의 결사 반대와 현지 거주민/어민들의 강한 반발로 없던 일이 되었다. 사실 푸틴도 처음부터 결사 반대하던 것은 아니고 1990년대 후반 및 2001년 가진 러일 정상회담에서 2개 정도 돌려줄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가 거주민들 및 강경 극우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들으면서 강경책으로 돌아섰다. 알래스카를 러시아 땅이라고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우정당 러시아 자유민주당은 이 당시 푸틴을 매국노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시위를 벌였다. 푸틴도 이가 갈리겠지만 당시 여론이 압도적으로 이런 극우파들을 옹호하니 결국 푸틴이 물러섰는데 극우단체들도 푸틴이 순순히 물러나고 일본에 물러서던 태도를 수정하자 푸틴에 대한 비난을 멈추고 지지하였고 푸틴도 이런 극우들이랑 우호적 관계를 맺었다.

이때 일본에서 일부가 아닌 전체 반환을 요구했기에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루머는 결국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이다. 이 의사가 전해진 당시 일본 측도 거부 의사를 표현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4개 섬 전체에 대한 욕심 또한 이유겠지만 이 당시부터 이미 일본은 한국과 독도, 중국과 센카쿠 열도 등 동아시아 국가간 영토분쟁이 점화된 시기였기 때문에, '일부 반환'이라는 애매한 선례를 남기면 추후에 불리한 입장에 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본 측에서 쿠릴 열도를 자국에 유리한 선례로 남기려면 최대한 러시아 측의 실효 지배 기간을 줄이면서 일본 측이 역사적인 권리를 인정받아 전체를 반환받을 필요가 있었다. 또 푸틴 집권 후의 러시아도 소련 붕괴의 영향을 수습하여 사정이 나아지고 점차 우경화되면서 밍숭맹숭했던 태도를 버리고 네 개 중 하나도 못 돌려준다는 맞대응으로 강경하게 나왔고, 결국 4개 섬의 반환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아베 총리가 20여 차례 넘게 푸틴 대통령과 회담을 진행하는 등 오래 전부터 줄곧 크게 공을 들였음에도 북방영토 반환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서 아베 지지자들조차도 상당수가 북방영토 문제에 한해선 아베 정권의 무능한 협상력을 비판하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 아베 총리 재임기간 동안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인정하며, 반대로 과거 아베 정권이 자신들이 나서면 북방영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과장한 것을 비판하였다.

현재 러시아는 계속해서 북방영토 반환을 놓고 일본과의 경제 원조 및 현지 개발 협상에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러시아는 일본이 하길 원하는 영토 협상은 별로 하질 않고 경제 협력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협상을 벌이고 있다. 결국 러시아는 영토 반환 협상을 제대로 벌이지도 않고 일본으로부터 경제적 원조를 얻는데 성공했다. 다만 어쩔 수 없는 게 이 영토 협상은 전적으로 러시아가 협상 자리에 나와줘야 가능한 갑인 것이기에 을인 일본이 러시아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본이 러시아에 비협조적으로 나서면 역으로 협상 자체가 파토날 수 있기 때문이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이시하라 신타로는 러시아와 월드컵 경기를 앞두고 이 경기를 이김으로써 북방영토를 반환하는 토대로 삼자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경기는 일본이 이겼지만, 러시아에서는 도요타를 비롯한 일제 차량에 대한 방화 사건이 일어났고 러시아 극우파들의 기존 주장을 오히려 확고하게 만드는 역효과까지 부르고 말았다.

2004년과 2006년, 두 차례에 걸쳐 푸틴은 일본이 4개 섬 중 이투루프 섬과 쿠나시르 섬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할 경우, 최남단의 시코탄과 하보마이 섬을 돌려줄 의향이 있음을 밝혔으나 이미 일본에서는 4개 섬 반환이 정론으로 떠올랐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국민적인 비난을 감수하며 러시아와 타협하지 못했고 분쟁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대한민국에서는 꽁치잡이 원양어선들이 이 해역에서 조업하는 것을 두고 러시아 정부와 합의를 본 적이 있는데 일본이 왜 자기들을 마다하느냐며 분노한 적이 있다. 또 2011년 5월 22일부터 독도영토수호대책특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독도 문제와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는 이 지역을 방문하자 일본이 강하게 반발했다. 관련 기사

그리고 저 섬들에 조상의 무덤이 있는 일본인들이 성묘할 때 여권을 가지고 이 섬에 간 적도 있는데, 일본에서 이를 두고 큰 논란에 빠진 적이 있었다. 일본 땅에 가는데 웬 여권이냐며 반발하던 극우들과, '그럼 조상님들 무덤을 그대로 놔두라는 거냐?'라면서 분노하던 일본인들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졌다.[8]

일본은 러시아에 이런 사정이 있는 일본인들을 특별히 여권 없이 입국하게 해달라는 요구도 했지만, 러시아는 이를 무시했다. 결국 저 섬에 조상을 모시고 있는 일본인들은 지금까지도 성묘 때마다 여권으로 입국하는 절차를 밟아가면서 방문한다. 그래도 러시아 정부는 이러한 사정이 있는 일본인들에 한하여 비자를 면제한다.[9]

3.1. 2010년대 동향

2010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소련-러시아의 최고 권력자로서는 처음으로 쿠릴 열도를 방문해 트위터에 감상까지 남기는 등, 센카쿠 열도[10] 문제로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던 일본을 곤혹스럽게 했다. 같은 해 12월 8일에는 동해에서 미일 합동 해상 훈련을 진행하던 중에 러시아 초계기가 나타나는 등, 이 지역 문제를 놓고 러시아와 일본의 갈등은 사실상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2011년 2월 9일에 메드베데프는 한 발 더 나가 이 섬들에 최신 대함대공 미사일을 비롯하여 공격용 헬기 등 신형 무기들을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은 이러한 결정을 비난하고 있지만, 뾰족한 대응 방법이 없어 골머리를 앓았다.

2011년 7월 일본의 극우 성향 국회의원들이 난데없이 한국의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쿠릴 열도를 방문한 것을 문제 삼아 자기네들도 울릉도를 방문한다고 해서 논란을 빚었다. 결국 자민당 소속 의원들이 8월 1일 입국하려다가 김포공항에서 입국 거부를 당해 들어오지도 못하고 돌아갔다. 자세한 내용은 대한항공 A380 독도 시범비행 문서 참조.

2012년 7월에는 메드베데프가 쿠릴 열도를 재차 방문했다. 이번에도 일본 측에서는 반발했지만, 메드베데프는 홋카이도가 보이는 바위 언덕에 올라가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등 대놓고 자국의 영토라는 모습을 보였다.

2012년 8월에는 러시아 태평양 함대 소속 군함들이 쿠릴 열도 지역을 방문했다. 국방부 발표에 의하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사망한 전몰 수병 추모 항해 차원으로 쿠릴 열도와 하바롭스크 지역 등을 24일 동안 항해하는데, 이는 5년 동안 계속되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실효 지배 강화전략이라고 주장한다.

2013년 1월 모리 요시로 전 총리는 이투루프 섬을 제외한 3개 섬들의 반환을 요구하는 것을 제안했다. 기사 물론 러시아는 무시했다. 다만 2013년에 푸틴이 하보마이, 시코탄 , 쿠나시르, 이투루프의 25%를 분할하자고 제안을 하였는데 이는 2005년에 아소 다로 당시 외상도 제기한 내용이다. 푸틴, 북방 4개섬 분할 제안

2013년 4월 아베 신조 총리가 러시아를 방문하고 푸틴 대통령과 함께 쿠릴 열도 반환 협상 재개를 선언하였다. 아베 총리는 이전에 모리 전 총리를 특사로 파견하였는데 모리 전 총리는 제한적 반환론자라는 점을 생각하면 일본도 4개 섬 반환을 포기하였다고 할 수 있으며 현재 2개 섬 반환 내지는 3개 섬 반환의 조건으로 일본이 러시아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3+1 가능성도 점친다고 일본에서 설레발을 떨었다. 그러나 러시아 극우파들이 조금도 포기할 생각이 없다며 반발하기에 불가능한 상황이다. 앞서 말한 대로 모라토리엄 선언 당시 2개 돌려준다고 할 때도 현지인들이 결사반대하고 극우파들이 모스크바에서 반발 시위를 벌였으며, 당시 러시아 여론도 엄청 지지했음을 생각하면 뻔한 일이다. 돈으로도 해결이 불가능하다. 러시아에선 쿠릴 열도를 일본에 준다면 연해주 지역도 중국의 막대한 돈을 받고 돌려줄 거냐는 비아냥까지 나오기에, 푸틴이 이런 반발을 무릅쓰면서 쿠릴 열도를 돌려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결국 이에 대한 답변인지 2014년 4월, 러시아 정부는 2016년까지 쿠릴 열도 남단의 섬 두 곳, 즉 이투루프와 쿠나시르에 150개 이상의 군사 시설을 신축하거나 재정비해 '완전한 군사 도시'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위의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4개의 주요 섬들 중 가장 큰 두 섬이다. 이곳에 강력한 군사거점을 구축하려는 러시아의 전략은 센카쿠 문제로 중국을 견제해 전력 재배치를 계획하는 일본에도 상당한 압력이다.

2014년 9월 22일에는 이투루프 섬에서 신공항 준공식을 열었다.

2015년 7월, 러시아 올렉 코제먀코 사할린주 주지사 대행은 쿠릴 열도 개발사업에 일본이 참여하지 않으면 한국 등 다른 나라에 제의하겠다고 밝혔다. 총 700억 루블(1조 4105억 원) 규모라고 한다. 하지만 일본이 참여하면 러시아의 쿠릴 열도 점유권을 인정하는 셈이니 일본으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2015년 8월에는 드미트리 로고진 러시아 부총리가 쿠릴 방문에 항의하는 일본인들에게 할복하라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 # 그리고 일본의 반발에 사과 성명은 커녕 어떤 제스처도 취하지 않았다. 2016년 3월 25일에 러시아 정부는 쿠릴 열도에 태평양 함대 기지 배치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이러한 일련의 행보를 미루어 보면 러시아 정부는 쿠릴 열도를 일부조차 일본에 넘겨줄 생각이 조금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2016년에 러시아와 일본이 회담하였다. 일본은 쿠릴 열도의 2개 섬을 반환하는 조건으로 러시아와 대규모 경제협력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 # 하지만 아베 신조는 2016년 10월 3일에 있었던 연설에서 쿠릴 4개 섬 반환은 변함없다고 밝힘으로써 2개를 먼저 반환한다는 것은 부인했다. # 러시아 측도 2016년 10월 5일에 일본은 쿠릴 열도 4개 섬이 러시아 영토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

쿠릴 열도 4개 섬을 이들 섬 출신자와 가족의 성묘를 위한 방문, 학자 및 언론인들의 방문 등에 한해 무비자 방문이 허용한 것을 자유방문에 대한 검토가 이뤄질 예정이다.[11]

게다가 일본과 러시아가 쿠릴 열도 4개 섬의 공동 통치라는 보도가 나오는 실정이다. #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러시아 상원의장은 시코탄 섬, 하보마이 군도를 일본에 돌려주기로 한 1956년 일소공동선언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밝혔는데, 다른 인터뷰에서는 쿠릴 열도를 돌려줄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 그리고 러시아와 일본은 경제 협력엔 찬성했지만, 쿠릴 열도 분쟁에 대해선 이견을 좁히지 않았다. #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쿠릴 4개 섬은 러시아 주권의 영토라고 밝혔다. # 그리고 러시아 정부는 쿠릴 열도에 첨단 해안 미사일 시스템을 배치했다. #

러시아와 일본은 쿠릴 4개 섬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무비자로 방문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 하지만 러시아 측은 쉽게 타협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일본 측은 경제 협력에 만족하는 선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 게다가 푸틴은 트럼프는 만날 용의는 있어도 쿠릴 4개 섬을 돌려주는 것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

2016년 12월 15일에 야마구치 현 나가토 시에서 일러정상회담이 열리는데, 북방영토 문제를 주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12월 14일 현재, 회담 예정장소인 한 온천료칸과 그 주변에는 야마구치 현 경찰본부 소속 경비 병력들이 삼엄한 경계를 펼쳤고, 지역 주민들도 손님맞이 준비에 한창이었다. 그리고 쿠릴 열도는 큰 의제는 아니지만 쿠릴 4개 섬 공동경제활동을 하기로 했다. 이에 설문조사에서 59%가 찬성했다. #

그 후, 아베 신조 총리는 북방 영토 문제 해결을 위해 2017년 상반기쯤에 러시아 방문을 희망했다. #

2017년 들어서 4개 섬 가운데 이투루프, 쿠나시르, 시코탄 3개 섬을 잇는 940㎞ 길이 해저 광케이블을 설치하는 공사로 중국 화웨이는 사업 타당성 조사와 통신망 설계를 맡았고 일본에서 무척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일본은 러시아와 경협을 시도하면서 2017년 봄에 항공편운항을 추진했다. # 하지만 러시아는 일본과 미국을 견제하면서 쿠릴 열도에 병력을 증강했다. # 그리고 러시아는 군 시설을 확충하는 등 군요새화하고 있고, # 경제특구로 지정했다. #

2017년 7월 12일에 러일 양국은 쿠릴 열도의 일부 지역과 홋카이도를 잇는 정기항로 개설을 검토했다. #

2017년 8월 23일에 러시아는 쿠릴 열도를 경제특구로 지정하자 일본 측이 반발했다. # 그리고 러시아는 2018년 말까지 통신망 사업의 조기 완료를 추진하고자 시도하자 일본 측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 그리고 러시아는 쿠릴 열도에 지대함 미사일 배치를 추진했다. #

2018년 2월 2일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총리가 이투루프 섬의 신공항을 군이 함께 쓸 수 있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는 대규모 군 시설을 설치하겠다는 2014년 방침이 실행되는 것이고, 북방영토의 군비 증가와 러시아의 실효 지배를 강화할 수 있다고 일본 정부는 유감을 표시했다. # 그리고 러시아 측은 이투루프 섬의 민간비행장을 민간·군 공용 비행장 목록에 포함시켰다. #

여담으로 일본에는 북방영토의 이미지 캐릭터인 에리카짱이라는 마스코트까지 만들고, 트위터에서 북방영토 반환의 노력을 위한 홍보를 전개하며 현지에서 일본어 강습 등 민간 교류를 통한 프로파간다 활동을 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쿠릴 열도에 미국 기업에서 투자한 발전소 건설 계획을 발표했는데 당연히 일본에서 크게 반발하였다.

일본과 러시아의 공동으로 성게 양식과 딸기 재배 사업을 할 방침이다. # 그리고 2018년 5월 23일에 러시아는 일러정상회담을 앞두고 쿠릴 열도는 러시아 땅이고 1945년 8월 15일 이후에 소련에 귀속되었다고 밝혔다. #

2018년 8월 6일에 일본은 수호이-35를 주둔하는 데 항의했다. #

2018년 10월 10일부터 러시아 정부는 쿠릴 열도에서 사격 훈련을 실시한다고 통보하자 일본은 반발했다. # 그리고 러시아가 쿠릴 열도 4개섬 부근에서 미사일 사격 훈련을 실시하자 일본 측은 항의했다. #

2018년 11월 15일, 아베 총리는 싱가포르에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회담하면서 처음으로 4개 섬 전체 반환이 아닌 2개 섬 우선 반환을 내세웠고 푸틴 역시 2개 섬 반환에 대한 가능성을 내비쳤다. 물론 단순히 2개 섬을 돌려주는 가능성만 비치고 주지 않은 채 경제적 협력만 받아낼 수도 있다. 그리고 2018년 11월 18일에 크렘린궁 대변인은 일본과의 평화조약 체결협상에서 1956년 소·일 공동선언에 기반을 둔다는 것이 곧 자동으로 일부 러시아 영토의 일본 반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 # 그리고 러시아 측은 2개 섬을 돌려주더라도 미군 주둔이 없다는 확실한 약속이 있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

아베 정권은 미군 주둔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러시아 측은 냉전시대 말기에 미국이 당시 소련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동쪽으로 확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놓고도 이 약속을 깨뜨린 사례를 거론하며 아베 일본 총리가 미군 기지를 두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약속은 현실적인 것이 못 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러시아 극우들과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러시아령이 되면서 이들 섬 지역으로 이주, 정착한 러시아인 이주민들의 분노 어린 반발도 골칫거리이다. 2개 섬을 넘겨준다면 러시아에 대한 매국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하는 분위기이다.

러시아는 12월 13일에 앞으로 일본과의 평화협상이 진행될 경우, 주일미군문제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 그리고 러시아는 아베 총리의 방러에 맞춰 이투루프 섬과 쿠나시르 섬에 대한 병력증강과 시설을 확충했다. #

일본 정부는 러시아에 평화조약 체결시 쿠릴 열도 4개 섬에 대한 배상 청구권도 서로 포기하자고 제기할 방침이라고 2019년 1월 8일에 요미우리신문이 보도했다. # 그러자 러시아 측은 주러일본대사를 불러서 항의했고 러시아 의원 측은 쿠릴 열도 반환 금지법까지 의회에 제출했다. # 2019년 1월 14일에 세르게이 라브로프 장관은 일본이 러시아와의 평화협상 체결 상황을 진전하려면 쿠릴 열도 4개 섬에 대한 러시아의 영유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 또, 러시아는 이 섬들을 북방영토로 부르지 말라고 전했다. # 그리고 1월 16일에 세르게이 라브로프 장관은 일본의 반환 요구는 유엔 헌장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

2019년 1월 29일에 아베 총리는 일본 동의 없이 쿠릴 열도에 미군이 주둔하는 일은 없다고 발언했다. # 하지만 쿠릴 열도 주민의 90% 이상은 일본 반환에 대해 반대했다. # 또한 쿠릴 열도 남부의 주민들도 98% 이상이 일본 반환에 반대했다. #

일본과 러시아가 평화조약협상의 토대로 삼기로 한 1956년 양국 공동선언과 관련, 당시 소련 지도부가 평화협상을 서두를 필요에 쫓겨 하보마이, 시코탄 2개 섬을 일본에 돌려준다는 양보안을 준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NHK가 보도했다. #

2019년 2월 17일에 뮌헨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장관과 고노 다로 외무상은 영유권 문제를 포함한 논의를 했지만, 진전을 못 봤다고 교도 통신이 보도했다. #

러시아는 개발이 늦은 시코탄 섬을 개발하는 등 영유권을 강화하고 있다. # 크렘린은 러일 간 협상 의제는 쿠릴 섬 반환이 아니라 평화조약 체결임을 강조하고 나섰다. #

러시아에서 쿠릴 열도 남부에서 군사훈련을 하자 일본 측은 항의했다. #

미하일 갈루진 주일 러시아 대사는 투자를 받고 쿠릴 열도를 넘겨주는 방식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

일본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독도, 센카쿠 열도를 포함해서 쿠릴 열도 4개 섬까지 일본의 영토로 표기한 것을 통과시키자 한국, 중국과 함께 러시아도 반발했다. # 5월 10일에 방일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장관은 러시아와 일본간의 입장차가 크다고 밝혔다. # 게다가 일본유신회 소속 마루야마 호타카(丸山穂高)[12] 중의원 의원이 “전쟁을 하지 않으면 되돌려 받을 수 없다”는 발언으로 파문이 일어나 다시 일본에 불리한 상황만 만든 셈이다. # 결국 소속 정당으로부터 제명당했다. # 6월 6일에는 규탄결의안이 가결되었다.

푸틴 대통령은 6월 20일에 쿠릴 열도 4개 섬의 일본 반환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

푸틴 대통령은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하기 전에 시코탄 섬의 수산물가공공장 가동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자 일본 측은 항의했다. #

10월 31일에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본인 44명이 일본 관광청이 마련한 약 300만원짜리 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해 10월 30일부터 6일간 쿠나시르 섬과 이투루프 섬을 방문한다고 보도했다. #

3.2. 2020년대 동향

2020년 1월 러시아는 일러 평화협정 체결에 앞서 일본 정부에 쿠릴 열도 부근의 주일미군을 배제할 것을 명시한 공식 문서를 요구했다. 아베 총리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일본을 불신한 것으로 일본 외교가에서는 이에 대해 일본이 이를 문서화할 수 없다는 것을 러시아가 노렸다고 보았다. ##

일본 정부는 2020년 2월 7일에 북방영토의 날 기념행사를 열고 러시아와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쿠릴 열도 4개 섬 문제를 조기에 해결한다는 취지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

6월에 러시아가 4개 섬 인근을 포함한 오호츠크해 일대 해역에서 지질조사를 하겠다고 통보하자, 일본 정부가 "수용할 수 없다"며 항의했다. # 이에 러시아 측은 일본의 항의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 사할린 주의 발레리 리마렌코 지사는 쿠릴 열도 탐사는 러시아의 당연한 권리라고 밝혔다. # 러시아 정부가 쿠릴 열도의 4개 섬을 일본 영토로 규정한 일본 정부의 2020년 방위백서에 대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했다. #

러시아 연방 중앙은행에서 쿠릴 열도 상륙작전 기념 주화를 발행했다. #

러시아 법무부 장관이 쿠릴 열도를 방문했다. #

사할린 주 정부가 리조트 개발을 발표했다. #

러시아가 남쿠릴 4개 섬에서 지대공 미사일 방어 시스템인 S-300 훈련을 처음으로 실시했다. #

미국 국무부가 자체 문서를 통해 남쿠릴 열도 4개 섬에서 태어난 러시아인들을 일본 국적자로 간주한다고 밝히자, 러시아가 한계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

일본이 독도의 식생도를 만든 것에 이어 쿠릴 열도의 식생도도 만들 방침이라고 밝혔다. #

2021년 5월. 러시아 기밀문서에서 1970년대 일중관계가 관계모색되면서 소련이 일본에 중 2개 섬의 영유권을 넘겨주려는 방안을 모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러시아군이 이투루프 섬, 쿠나시르 섬, 사할린 섬에서 군사훈련을 진행하자 일본측이 항의했다. #

러시아군이 9월 8일에 사격훈련을 실시했다. #

2022년부터 경제특구로 지정되면서 관세 면제되고, 법인세나 부동산세 등도 최대 20년간 면제한다. #

2021년 12월 2일에 러시아 태평양 함대는 북쿠릴 열도 마투아섬에 배치된 해안 방어용 지대함 미사일 시스템 바스티온 가동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기시다 총리는 쿠릴 열도 4개섬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시작했다. #

3월 25일에 러시아군이 쿠릴 열도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

2022년 일본 외교청서는 19년 만에 남쿠릴 4개섬을 '러시아의 불법 점거 지역'이라고 표현하였다. #

4월 25일에 러시아 정부가 쿠릴 열도 개발에 나선다고 밝혔다. #

12월 6일, 러시아가 파라무시르 섬에 미사일을 배치했다. #

2023년 7월. 러시아 부총리가 쿠릴 열도를 방문했다. #

2024년 4월. 쿠릴열도 남단 4개 섬 주변에서 자국 선적 이외 선박의 항행을 허용하지 않는 조치를 내렸다. # 군사 관측소를 설치했다. #

3.3.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일본에서 자국에서 개최하는 2020년 도쿄 올림픽의 공식 홈페이지 지도에 쿠릴 열도를 일본의 영토로 표기했다. 이에 러시아는 강하게 반발했다. 2020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 사이트 독도 및 쿠릴열도 표기 논란 참조.

3.4. 2022년 러일 평화조약 체결 협상 중단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기시다 내각에서 대러 제재를 선언하면서 러일 양국 간의 갈등이 불거졌다.

이후 일본의 대러시아 제재에 대해 러시아 2022년 3월 21일에 일본에게 사전 연락 없이 러일 평화조약 체결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러시아는 "일본 정부 결정에 대한 대응 조치 성명"를 통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일본의 일방적이고 비우호적인 대러 제재를 고려해 일련의 조치를 취한다"고 하며 "러시아에 명백히 비우호적 태도를 보이고 러시아의 이익에 해를 끼치려는 국가와는 양국가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불가능함을 고려한 것"이라고 하며 평화조약 체결 협상을 중단하는 이유를 밝혔다.

러시아의 평화조약 체결 협상 중단에 대해 일본은 모스크바 주재 일본대사관을 통해 평화조약 체결 협상은 양국 간 맺은 국제적 약속인 일소 공동선언에서 그 계속에 합의하고 정상 간 제반 합의에 의거해 진지하게 진행해왔던 것이며 러시아 측이 러일 평화조약 체결 협상을 일방적으로 계속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건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러일 평화조약 체결 협상의 중단으로 인해 남쿠릴 열도와 일본 사이의 무비자 방문에 관한 1991년 협정, 남쿠릴 열도 거주 일본인들의 고향 방문 절차 간소화에 관한 1999년 협정에 의거한 일본인들의 무비자 여행 중단과 함께 아베 신조 정권 당시 진행된 남쿠릴 열도 내 공동 경제활동에 대한 러일 간 대화도 중단되었다.

러시아는 쿠릴열도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한다는 전제하에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

4. 일본의 주장

일본은 북방 4개 섬이 앞서 설명한 얄타 회담과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언급된 쿠릴 열도에 포함되지 않는, 홋카이도의 부속 도서라고 주장한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이 4개 섬은 이미 에도 시대부터 일본의 고유 영토였으며 근대 제국주의와 무관하다. 에도 막부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 대인 1644년에 막부가 제작한 정보국회도(正保国絵図)에 구나시리와 에토로후 등이 등장함으로써 일본의 영향권에 포함되었고[13], 이후에도 1754년 마츠마에 번의 구나시리 장소 건설[14], 1789년 쿠나시르 메나시 전투 진압 등을 계기로 자연스레 일본의 영토에 접어들었다. 또한 11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나리 대인 1799년 에도 막부가 동에조치를 막부 직할령으로 전환함에 따라 법적으로 일본에 완전히 귀속되었다. 특히 1811년 발생한 골로브닌 사건은 에도 막부의 이 지역에 대한 실효지배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리고 외교적으로도 이 4개 섬에 대한 일본의 관할권은 부정된 적이 없었다. 에도 막부와 러시아가 국교를 수립한 시모다 조약(1855)에서도 에토로후 이남의 4개 섬은 일본령으로 인정받았고 1875년과 1905년의 국경 변화 과정에서도 이 4개 섬은 줄곧 일본령으로 남았다. 즉, 러시아를 포함한 국제사회는 2차 대전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이 4개 섬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 일본 측 논리의 핵심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혼슈,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의 4개 본도(本島)와 그 이외 작은 섬들을 일본의 영토로 인정한다는 골자의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명시한 "이외 작은 섬"은 북방 4개 섬 역시 포함하며 '일본이 폭력과 사욕으로 손에 넣은 모든 영토로부터 추방한다'는 1943년 카이로 선언 내용은 에도 시대부터 일본 고유의 영토였던 북방영토에 적용되지 않는다.

즉, 북방 도서는 연합국이 일본령에서 제외할 것을 공언한 19~20세기 침략전쟁의 산물이 아니라 아직 전근대였던 17~18세기에 일본이 평화적으로 귀속한 고유 영토이며 이는 19세기 일본의 국제외교 데뷔 이후에도 자연스레 인정받은 주권이기에 러시아에 귀속될 이유가 없다.

5. 러시아의 주장

포츠담 선언 중 일본영토 전문 (Potsdam Declaration)
The terms of the Cairo Declaration shall be carried out and Japanese sovereignty shall be limited to the islands of Honshu, Hokkaido, Kyushu, Shikoku and such minor islands as we determine.
카이로 선언의 요구 조건들이 이행될 것이며 일본의 주권은 혼슈,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 그리고 우리가 결정하는 부속 도서로 제한될 것이다.
Yalta Conference Agreement (얄타 회담 합의안)
AGREEMENT REGARDING JAPAN (일본에 대한 합의안)
The leaders of the three great powers - the Soviet Unio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Great Britain - have agreed that in two or three months after Germany has surrendered and the war in Europe is terminated, the Soviet Union shall enter into war against Japan on the side of the Allies on condition that: .
소련, 미국, 영국 다음 세 강대국의 지도자들은 독일이 항복하고 유럽의 전쟁이 종전된 후 2개월에서 3개월 이내에 소련이 연합국의 동맹으로서 아래의 조건으로 일본과 전쟁에 들어갈 것을 합의한다.
(2) The former rights of Russia violated by the treacherous attack of Japan in 1904 shall be restored.
(2) 1904년 일본의 무모한 침공으로 인해 수탈된 러시아의 과거 주권을 회복할 것.
(3) The Kurile Islands shall be handed over to the Soviet Union.
(3) 쿠릴 열도를 소련에 이양할 것.[15]
Treaty of San Francisco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CHAPTER Ⅱ, TERRITORY (챕터 II, 영토)
Article 2 (2조)
(c) Japan renounces all right, title and claim to the Kurile Islands, and to that portion of Sakhalin and the islands adjacent to it over which Japan acquired sovereignty as a consequence of the Treaty of Portsmouth of September 5, 1905.
(c) 일본은 쿠릴 열도에 대한 그리고 일본이 1905년 9월 5일의 포츠머스 조약에 의해 주권을 획득한 사할린의 일부와 그것에 인접한 도서에 대한 일체의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16]

러시아 정부의 주장에 따르면 소련은 1945년 2월 얄타 회담을 통하여 대일전 참전 조건으로 사할린 남부와 쿠릴 열도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받았다.[17] 즉, 북방 4개 섬을 포함한 쿠릴 열도와 남사할린의 영토 편입은 소련의 극동 참전에 대해 연합국이 보장한 정당한 보상이다.

또한 일본은 전쟁에서 패배한 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을 체결함에 따라 쿠릴 열도 전체에 대한 일체의 권리를 포기했기에 남쿠릴 열도에 대해 예외적인 스탠스를 취한 바 있다. 연합국 최고사령관 각서 677호에서 남쿠릴 열도는 물론 하보마이와 시코탄을 일본의 시정권 범위에서 제외한 것 역시 쿠릴 열도의 범위에 대한 암묵적인 기준이다. 일본은 SCAPIN 제677호가 최종적인 조치가 아니라고 반문하지만 시정권 이외 지역의 영유권 향방에 대한 결정권은 연합국에 있으며 소련 역시 합법적으로 대일전에 참전한 승전국으로서 남쿠릴 지역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이 1855년 시모다 조약을 근거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도 모순이다. 애초에 시모다 조약 자체는 러일 간 국교 수립 이후 애매한 국경 기준에 대한 잠정적인 합의였을 뿐 이후 1875년, 1905년, 1945년 3차례나 뒤집힌 바 있다. 게다가 1855년의 시모다 조약과 1875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 러일전쟁을 일으키며 러시아령으로 공인한 남사할린을 침탈한 시점에서 이미 물거품이 되었다. 따라서 시모다 조약은 효력을 잃은 옛 합의에 불과하다.[18]

일본이 '북방영토'라는 표현을 만든 이유 또한 쿠릴 열도에서 이 섬들을 제외하고, 이 섬들이 조약에서 말하는 쿠릴 열도가 아니라 자국의 고유한 영토라는 논거를 주장하기 위함이다. 결국 쿠릴 열도에 대한 일본의 반환 주장 논거들을 살펴보면 국제법적인 근거보다는 국제정치적 상황이 초래한 정치 논리에 가깝다.

실제로 195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은 시코탄 섬과 하보마이 군도에 대해서만 '홋카이도의 일부로, 쿠릴 열도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영유권을 주장했고 소련 역시 이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하여 이 두 섬에 대한 반환 협상을 모색했다. 그러나 미일동맹 강화를 계기로 소련이 하보마이, 시코탄 반환 논의를 영구 보류하자 1960년대부터 쿠나시르와 이투루프 섬까지 반환 대상에 넣었고, 이 시점부터 쿠릴 열도(일본명: 치시마 열도, 千島列島) 대신 '북방영토'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2년 오키나와 반환 이후에야 전 국민 운동으로 번졌으며[19], 1981년 2월 7일에 북방 영토의 날이라는 기념일을 제정하여 오늘날에 이른다. 즉, 패전 이후에도 일본은 남쿠릴 열도에 대해 줄곧 일관적인 스탠스를 취하지 않았고 국제 정세에 따라 주장을 변경했다.

세세히 따져도 북방영토를 타 쿠릴 열도와 따로 취급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나마 시코탄과 하보마이는 쿠릴 열도의 일직선상에서 벗어나 있고 화산섬이 아니기에 타 쿠릴 열도와 지형 특성이 이질적인 홋카이도의 부속 도서, 정확히는 네무로 반도의 연장선에 더 가까운 모습이지만 정작 분쟁의 핵심 지역인 쿠나시르나 이투루프는 육안으로 보아도 쿠릴 열도의 일부이다. 역사적 인식을 따져도 19세기에 작성된 다수의 서양발 지도에서 쿠나시르와 이투루프를 쿠릴 열도의 일부로 표기했으며, # # # #[20] 일본 메이지 신정부조차 19세기 치시마 열도(쿠릴 열도)의 이름에서 차용한 치시마국(千島国) 편제에 하보마이를 제외한 북방 영토 3개 섬을 북쿠릴 열도와 같이 포함했다. 따라서 북방 4도, 특히 쿠나시르와 이투루프를 쿠릴 열도 범주에서 제외해 북방영토라는 특수한 개념으로 따로 다루어야 할 당위성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21] 이러한 이유로 1950년대 무렵까지만 하더라도 소련이 하보마이와 시코탄에 대한 반환 의사를 밝힌 것이고 일본의 니시무라 구마오 외무성 조약국장이 쿠릴 열도의 범위에 쿠나시르와 이투루프 섬이 포함되었다고 발언했다.[22] 이렇듯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당시 일본 정부는 쿠릴 열도와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하면서 이 두 섬을 쿠릴 열도의 일부로 인정했고 또한 일본은 일소 공동선언에서 하보마이, 시코탄과 달리 이투루프와 쿠나시르는 향후의 반환 대상에서 빠졌음에도 이에 반발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도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주장에도 오류가 있는데 이투루프 섬의 경우 본래 러시아의 진출이 빨랐다. 그나마 홋카이도와 가까운 시코탄, 하보마이, 쿠나시르의 경우 줄곧 일본의 영향권이었던지라 전근대에 러시아가 점유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지만[23], 이투루프에 대해서는 러시아도 확실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일례로 이투루프 섬의 중심지인 쿠릴스크[24]의 경우 18세기 중후반 러시아인들의 정착촌에서 기원하고 당시 이투루프의 아이누들도 다수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했다. 그리고 18세기 후반 막부의 명령을 받은 일본인들이 이투루프에 진출해 이투루프에 거주하던 3명의 러시아인들을 축출하고 이 섬을 일방적으로 자국령으로 선포했다. 이후 러시아도 이투루프의 영유를 두고 막부와 다투었으나 1855년 시모다 조약 체결 과정에서 일본이 러시아에 호혜적인 통상 조약을 체결해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이투루프의 영유권을 일본에 완전히 넘겼다. 즉, 이투루프에 한해서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주장에 어폐가 있다.

무엇보다 일본의 ‘고유 영토론’은 법적 근거가 없는 감정적 호소에 불과하다. 일본은 쿠릴 열도를 비롯한 각종 영토 분쟁에서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수사를 빼놓지 않는데 이는 작위적인 작명일 뿐 국제법적으로 통용되는 용어가 아니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고유 영토’[25]란 외세가 차지한 적 없고 줄곧 일본령이었던 영토를 의미하는데 그 역사적 신빙성은 차치하고라도 역사적으로 일본령이었으니 앞으로도 일본령이어야 한다는 국제법적 당위성은 없다.[26]

6. 일본과 러시아의 원주민 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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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릴 아이누

사실 제일 먼저 쿠릴 열도에 정착하여 삶의 터전을 가꾸어 나간 민족은 러시아인도, 일본인도 아니고 아이누족이었다.[27] 그러나 이들은 러시아인들과 일본인들에게 일방적인 탄압을 당하며 정체성을 상실했다.

아이누에 대한 탄압의 역사는 아무래도 아이누와 접촉한 역사가 유구한 일본이 더 길다. 아이누는 과거에 쿠릴 열도와 사할린 남부에서 홋카이도를 거쳐 혼슈의 도호쿠 북부까지 분포하고 있었는데 도호쿠 아이누(에미시)는 8~11세기, 홋카이도 아이누(에조)는 14~18세기, 쿠릴과 남사할린의 아이누는 18~20세기를 거치며 일본에 정치적으로 복속되었다. 쇼군의 정식 명칭인 정이대장군은 아이누족( 에미시) 같은 이민족을 토벌하는 장군이었을 정도로 일본의 전근대사는 아이누를 토벌하며 북상하는 역사로 점철되었다.

에도 막부의 경우 홋카이도 아이누인들의 반란을 두 번이나 진압했으며 1868년 메이지 유신과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 이후에는 더욱 적극적인 말살 정책이 실시되어 아이누들을 강제로 일본 이름으로 개명시키고 이들의 전통 언어, 문화, 종교를 엄격히 금하며 강제로 일본어로 말하고 일본 문화와 종교를 따르게 하였다.

다만 혼슈 북부, 홋카이도, 쿠릴 열도, 사할린의 아이누가 사실상 별개의 집단이었다는 문제가 있는데 사실 전근대 일본의 탄압 대상은 도호쿠의 에미시와 홋카이도의 아이누였지 쿠릴 열도와 사할린의 아이누는 아니었으며 쿠릴 열도의 아이누[28]는 17세기 무렵 일본인들과 첫 접촉했고 18세기 이후부터 일본의 압제를 받았다. 그러므로 해당 문서의 쟁점인 남쿠릴 열도의 아이누에 한정할 시 역사적 접촉 기간은 일본이나 러시아나 별반 다르지 않다.

한편 일본은 쿠릴 열도의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존재를 2008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2019년에는 일본의 원주민에 편입했다. # 이는 기존의 단일 민족 프로파간다를 부정하는 입장으로 아이누족을 영토 분쟁에 이용하는 것이라는 의심을 받는다.

한편 러시아 역시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8세기 쿠릴에 진출한 러시아 탐험대는 아이누 원주민들을 착취하거나 학살했다. 제정 러시아 말기부터는 아이누인들을 아예 일본인으로 보고 러시아식 이름을 강요하고 아이누라는 정체성을 금지했으며, 소련 때에는 언론 통제와 억압이 상존하였으며 강제 이주와 혼혈 정책도 시행하였다.[29] 민족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민족 인사들은 가택 연금되거나 수감되거나 심지어 살해되는 등 탄압을 받았고 이러한 것과 무관하게 살아가던 이들은 개척지 개발이란 명분으로 강제 이주당했다.[30] 또한 2차 대전 직후 소련은 아이누를 일본인으로 분류하여 쿠릴과 남사할린에서 추방한 바 이로 인해 러시아가 현지 아이누들을 일본 본토로 추방하면서 어느 정도 명분을 일본에 제공한 측면도 있다.

7. 반환 가능성

쿠나시르와 이투루프의 경우 반환 가능성은 전혀 없으며, 그나마 협상의 여지가 있었던 하보마이와 시코탄 역시 반환 가능성이 매우 낮다.

러시아로서 남쿠릴 열도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많다. 먼저 영토 자체가 국가 주권에서 중요한 요소인 것도 있지만 또한 부동항의 안정적인 대양 진출 경로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현재 국토 동쪽의 블라디보스토크와 서쪽의 무르만스크라는 두 부동항을 보유한다.[31] 러시아의 극동 지역, 특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양인 태평양으로 나가려면 모두 5가지 루트가 있는데 남쪽으로는 대한해협, 간몬해협, 그리고 북쪽으로는 쓰가루해협, 라페루즈 해협 타타르 해협이다. 이 중 대한해협과 간몬해협, 쓰가루해협은 미국의 동맹인 적성국( 대한민국, 일본)의 영해를 피해서 가기가 매우 어려운 길목이며 타타르 해협은 폭이 너무 좁고 수심도 얕아서 대형 선박이 지나가기 어려운데다 직선거리가 길어진다. 마지막 옵션은 라페루즈 해협을 통해 오호츠크 해로 나가는 것인데, 이 오호츠크 해를 뚜껑처럼 덮고 있는 곳이 바로 쿠릴 열도이다.[32] 특히 러시아가 확고히 영유하는 북쿠릴 열도에 비해 일본과 분쟁 중인 남쿠릴 열도 일대가 상대적으로 온화하기 때문에 결빙이 적고 항해에 유리하며 더욱 다양한 항해 경로를 제공한다. 즉, 러시아로선 남쿠릴 열도를 확보하면 다른 나라의 영해 근처나 좁은 해협을 거칠 필요 없이 안정적으로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있다.

또한 무르만스크가 아닌 쿠릴 열도를 통해 태평양으로 나가면 서방 국가들 사이에 위치한 북대서양을 거치지 않고 멕시코, 니카라과, 에콰도르 등 중남미 국가들과 교류할 수 있다. 아무리 러시아가 영토가 넓다 해도 이 조그만 섬들의 전략적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

그리고 쿠릴 열도 인근에는 자원이 풍부하다는 경제적 이점도 존재한다. 실제 금과 같은 광물 자원이 많이 매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교차점으로서 어장이 발달하여 질 좋은 해산물이 생산된다. 러시아로서도 포기하기 어려운 자원의 보고이다.

쿠릴 열도는 군사적으로도 중요한데, 일본은 미국의 핵심 동맹국으로 주일미군이 다수 주둔하는 국가인 만큼 러시아 근처에 미군 전력이 더욱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다. 지금도 러시아 근해에서 미군 잠수함 등이 줄곧 작전을 펼치고 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며 러시아는 미군 기지가 러시아의 코앞에 배치되는 것을 아주 크게 우려한다.[33] 미군이 전진배치를 하지 않는다는 협상을 맺으면 해결될 것 같지만, 일단 안 한다고 해놓고 일본으로 반환이 된 이후 미국과 일본이 합의를 통해 나중에 미군이 배치되면 러시아도 이를 제재할 수 없다. 이미 러시아는 1990년대에 동유럽 나토 동진을 경험한 바 있기에 서방을 신뢰하지 않는다.[34]

현지 주민들의 처우 문제 또한 존재한다. 소련은 남쿠릴 열도를 차지한 이후 이 지역에 많은 러시아인들을 이주시켰고 현재는 약 2만여 명의 러시아인들이 거주 중이다. 반면 남쿠릴 열도에서 추방당한 일본인들은 대다수 자연사하였고 현재 일본인들 중 남쿠릴 열도에 연고가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형국이다. 따라서 80년 가까이 이 지역에 거주하는 현지인들은 러시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데 민주국가인 일본이 이들을 추방할 수도, 일본인으로 귀화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일본이 이 지역을 수복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이다.[35]

과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04년과 2006년 두 차례에 걸쳐 시코탄과 하보마이 군도에 대해 일본이 다른 2개 섬을 포기할 경우 일본에 반환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시코탄과 하보마이 군도는 분쟁 지역 면적의 단 6%에 불과한 작은 섬들이며 현실적으로 일본이 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섬들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반서방 노선이 뚜렷하지 않던 2000년대 초중반 당시와 신냉전이 격화된 2020년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이 두 섬조차 돌려줄 가능성이 매우 낮다.

한편 과거 일본에서 러시아와 공동관리를 제의하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실효 지배국인 러시아가 이를 거부했다. 애초에 영토 분쟁 지역이라 해도 실효 지배와 영토 주장 국가가 갈리듯이 한 영토를 두 국가가 분할도 아니라 공동관리를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실제 역사에서도 양국은 1855년부터 1875년까지 사할린을 그렇게 관리했다가 실패한 바 있다.

무엇보다 러시아로서 남쿠릴을 포기할 수 없는 가장 결정적인 근거는 소련이 비슷한 논지로 병합한 땅이 유럽에 많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직후 소련은 독일,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핀란드 등으로부터 승전국이라는 명목 하에 많은 영토를 빼앗아 합병한 바 있고 최근에도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를 강탈한 바 있는데, 만약 남쿠릴을 일본에 돌려주게 되면 같은 논지로 러시아에 땅을 뺏긴 많은 유럽 국가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 불보듯 뻔하다. 따라서 남쿠릴 반환이라는 선례는 자칫 2차 대전 이후 귀속한 모든 영토에 대한 법적 문제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러시아로서도 경계할 사안이다.[36][37]

2020년 7월, 러시아의 헌법이 개정되었는데 이 중엔 '영토를 쪼개서 양도하는 행위는 인정하지 않으며 국경의 재획정은 예외로 한다.'고 규정한 내용도 있다. 일본 입장에선 쿠릴 열도를 '국경의 재획정 문제'로 걸고 넘어질 수 있겠지만, 러시아로선 이를 '영토의 양도 문제'로 인식할 테니 반환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日 언론, 쿠릴열도 영토 협상 악영향 우려'

2020년에 러시아에 대한 반감을 가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더욱 심해지는 서구의 경제 제재에 대한 돌파구로 푸틴 대통령이 유럽 시장에 판매하는 도요타 자동차와 플레이스테이션5 공장을 러시아에 세우는 등 일본과 경제협력을 대가로 쿠릴 열도 반환을 협상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등장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연합의 동맹국인 일본이 서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푸틴 대통령 역시 본인 이미지에 큰 타격이 있기에 실현 가능성은 높지는 않다.

쿠릴 열도 반환 문제 때문에 우크라이나 위기 진행 중에 일본이 미국과 같이 강력한 제재를 실시하지 못한다. # 다만 제재만 심하게 동참하지 않았을 뿐 여러모로 러시아에 적대적인 행보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에서는 중의원 제1의원회관에서 일본 참의원(상원) 및 중의원(하원) 의원 약 500명이 자리를 꽉 채운 채로 연설을 진행했고, 그 연설이 끝나자마자 모든 의원이 기립박수를 치는 것으로 우크라이나를 향한 지지를 표현하였다. # 또한 일본 자위대는 75년 만에 일본에서 보낸 첫 군수물자 수출을 우크라이나와 유럽에 계획하고 있고, 심지어 대규모 군사장비 선적을 준비하는 마지막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물론 이런 행보가 가능한 것은 오래된 적대감도 있지만, 사면이 바다인 섬 나라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러시아와의 관계가 아무리 악화되더라도 해군으로 바다만 잘 틀어막으면 본토에서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의 자위대는 남중국해 방면에서 중국을 방어하는 오키나와 일대 병력과 오호츠크 해 방면에서 러시아를 방어하는 홋카이도 일대 병력을 최주력으로 배치되어 있다.

현실적으로 3차 대전이 발발해 전후 국경이 재조정되거나 러시아 연방이 해체되지 않는 이상 러시아 정부가 자발적으로 쿠릴 열도를 일본에 반환할 일은 없으며 하술하듯 국제 정세가 드라마틱하게 바뀌었을 때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존재하는 시코탄, 하보마이와 달리 쿠릴 열도 분쟁의 핵심인 쿠나시르, 이투루프의 경우에는 가능성이 없다. 이미 두 섬에서 일본인들은 패전 후 추방된 후 약 2만 명 가까운 러시아인들이 그 자리를 채웠으며 전략적으로도 시코탄, 하보마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중요하다.

그 외에도 일본이나 러시아에서는 각국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다르게 쿠릴 열도 분쟁을 종식하자는 소수 의견도 있는데 일본의 경우 대표적으로 입헌민주당의 정치인 이시가키 노리코의 경우는 쿠릴 열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고 현재 일본 영토들의 영유권을 지키자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사상가 알렉산드르 두긴의 경우 쿠릴 열도 양도와 미일 동맹 파기를 맞교환하자고 주장하였다.

7.1. 시코탄·하보마이 2개 섬 반환?

일본과 소련 양국은 계속해서 평화 조약의 체결 교섭을 진행하여 조약 체결 후 소련은 일본에 하보마이 군도시코탄 섬을 양도한다.
(일본어) 日ソ両国は引き続き平和条約の締結交渉を行い、条約締結後にソ連は日本へ歯舞群島色丹島を引き渡す(譲渡)。
(러시아어) Союз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 соглашался на передачу Японии островов Хабомаи и острова Сикотан[38] с тем условием, что фактическая передача этих островов Японии будет произведена после заключения Мирного Договора между Союзом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 и Японией.
1956년 12월 12일 일본국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공동 선언 @

러시아 내에서 일본에 대한 반환이 그나마 진지하게 제기되는 지역은 시코탄 섬과 하보마이 군도이다.[39] 러시아도 일본의 쿠릴 4개 섬의 일괄 반환론에 대해선 강경한 반대 입장이지만 하보마이 군도와 시코탄 섬의 반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협상의 여지를 열어두었는데 이는 구 소련도 양국 간의 평화조약이 체결되면 시코탄과 하보마이 두 섬을 반환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40][41]

당시 일본에서도 홋카이도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하보마이와 시코탄을 점거했다고 소련을 비판했지, 일소 평화조약에 이투루프와 쿠나시르의 반환이 없음에도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는데 본래의 주장이 두 섬의 반환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의 공식 입장 또한 하보마이와 시코탄은 얄타 회담에서 소련에 양도하기로 합의한 쿠릴 열도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본 총리들도 자국의 외교, 특히 논의 대상인 쿠릴 열도 반환에서 일본이 주장했던 외교 논리들이 무엇인지 모를 리도 없을뿐더러 일본 정부도 러시아의 영토 반환을 설득할 수 있는 현실적인 외교 절충선이 하보마이, 시코탄의 2개 섬 반환까지임을 명확하게 인지한다. 따라서 아베 내각 이후의 입장은 4개 섬 일괄 반환이 비현실적이며 우선 2개의 섬을 우선 반환받고 나머지 섬은 이후 협상을 통해 차차 돌려받겠다는 것이다. 이는 내심 일본도 시코탄과 하보마이 반환을 끝으로 러시아와의 지리멸렬한 영토 분쟁을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다.

기존 일본에서 만연했던 4개 섬, 소위 북방영토 반환으로 쿠릴 열도 내의 이투루프, 쿠나시르의 북방 2개 섬도 함께 돌려받는다는 것은 시코탄, 하보마이 반환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왜냐하면 전술했듯 시코탄과 하보마이 반환은 푸틴 혼자만의 주장이 아니었기에 푸틴으로서도 부담감이 상대적으로 적다. 도중에 결렬되어서 그렇지, 푸틴이 집권하기 이전 소련 공산당에서도 일본과의 외교 협상에서 시코탄과 하보마이를 일본에 반환하기 위해 협상을 진행했다. 현실적으로도 시코탄과 하보마이는 쿠릴 열도 섬들 중에서 가장 작고 인구도 적어서[42], 반환하더라도 러시아 국민들의 불만을 달래기 용이하다. 일본도 현실성이 결여된 4개 섬의 일괄 반환보다 소련-러시아도 과거 가능성을 열어두었고, 지리적으로도 타 쿠릴 열도와 이질적인 두 섬의 반환 주장이 실리적이다.

문제는 이 작은 2개 섬들의 반환조차도 빠르게 해결되지 않고 분쟁이 지속되면서 양국에서 '일부만 포기할 수 없다'는 여론이 대두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같은 경우 이 문제의 전개 자체가 자기들이 다른 곳에서 분쟁을 벌이고 있는 독도, 센카쿠 열도 같은 다른 영토 분쟁 정책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어서, 타협하기 힘든 이데올로기적 상징이 되어버렸다. 2016년 러시아의 여론 조사에서는 "4개 섬 중 이투루프와 쿠나시르 등 2개의 큰 섬은 러시아가 계속 갖고 시코탄과 하보마이 등 작은 2개 섬은 일본에 돌려주는 타협안이 어떠하냐"는 조사에 75%가 반대하고 13%가 지지했다. @ 이미 1990년대 후반 모라토리엄 선언 이후 경제적으로 어렵던 시절에도 러시아의 쿠릴 열도 2개 섬 반환에 대하여 극우 뿐 아니라 대다수의 현지인들이 반대했고 지금도 별 차이가 없다. 이는 영토 문제가 국가의 근본적인 주권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소련이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던 시기보다 2개 섬 반환도 더 요원해졌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소련이 해체되면서 총 면적의 무려 1/4이 떨어져나가[43] 러시아인들은 영토를 잃었다는 상실감이 대단히 커졌고 영토 할양에 더욱 더 민감해졌기 때문이다.

일본으로서도 2개 섬 반환으로 마무리짓는 것은 아주 골치 아프다. 소위 북방영토의 핵심인 이투루프와 쿠나시르는 일본 편입시 본토 4개 섬 이후 면적 5, 6위를 각각 차지할 정도로 넓은 섬들이다. 이투루프의 면적은 제주도의 1.5배 이상이고, 쿠나시르는 제주도보다 약간 작으며 오키나와 본섬보다 크다. 괜히 4개 섬 일괄 반환 주장이 힘을 얻은 것이 아니며 일본 국내에서는 정부가 나머지 2개 섬을 포기하는 것이냐며 상당한 비판 여론이 형성되었다. 일본도 러시아로부터 일단 시코탄과 하보마이를 돌려받는다는 전제로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그 대가로 일본 정부가 러시아의 쿠나시르와 이투루프 영유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이 두 섬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철회해야 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이를 크게 우려한다.

러시아는 쿠릴 열도에 군사 요새를 이미 건설했거나 건설을 계획중이며 추가로 계속해서 보강 중이며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이투루프, 쿠나시르에서 군사 훈련을 실시한다. 러시아와 푸틴도 일본에 이 두 섬은 넘겨주지 않겠다는 의지는 확고하다. 2022년 이전에도 러시아 내의 여론은 일본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는데 러시아에서도 영토 반환에 대해 시위가 일어났을 당시 이 반대 시위에 야당 인사들은 물론 여당 인사들까지 일부 참여했다.

비교적 일본에 유화적인 푸틴이 쿠릴 열도에 대해서 자신의 정책을 강하게 밀어 붙이지 못하는 편인데, 이는 러시아의 여론, 심지어 푸틴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쿠릴 열도 반환 문제만큼은 푸틴의 편이 되어주질 않기 때문이다. 푸틴의 하수인으로 부역한다고 비판받는 여당조차도 쿠릴 열도 반환에 대해서는 무작정 푸틴의 편이 되어주질 않는다. 러시아 극우 중 우익만 해도 알래스카를 되돌려받아야 한다는 말까지 하는 이들도 있는데 영토를 넘겨준다는 것은 푸틴으로서도 어려운 상황이다.[44]

러시아 내 반푸틴 세력 중에서는 "푸틴은 이웃 외국들에 너무 유약하다, 옛 차르나 소련은 자국의 일부였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는 말할 것도 없고 폴란드, 발트 3국 따위가 독자 행동하게 놔두지 않았다."며 오히려 극우적 관점에서 반정부적 자세를 가진 이들도 꽤 있다. 실질적인 역할은 거수기라 해도 어쨌든 그 악명 높은 러시아 자유민주당도 이런 사람들이 기반이니 독립 정당으로 존속하는 것이다. 결국 위에 서술한 대로 푸틴은 2019년 6월 20일, 4개 섬 모두 러시아 땅이라면서 2개를 돌려준다는 소리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일축했다.

1973년에 행해진 당시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와 소련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서기장의 정상 회담을 앞두고 소련 정부는 일소 공동 선언에 기초로 한 하보마이 군도와 시코탄 섬의 양도를 일본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쿠나시르와 이투루프 섬에 일본 어선의 기항 등을 인정한다는 제안도 검토하고 있었던 것이 소련의 외교 기밀 문서에서 밝혀졌다. #
쿠릴 열도 문제란 쿠릴 열도 남부 4개 섬에 대한 양국 간 영토 분쟁으로, 이들 4개 섬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고 있다. 위치는 태평양 북서부 캄차카 반도와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사이 약 1300㎞에 걸쳐 있다.

그러나 일본은 영유권을 주장하며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일본 측은 쿠나시르 섬과 이투루프 섬 영유권은 포기하고 면적이 적은 시코탄 섬과 하보마이 군도만을 돌려받겠다는 입장이다.
(동아일보)스가-푸틴 첫 정상회담…“쿠릴 열도 분쟁 끝내고 싶다” 中 (2020년)

상술했듯 일본 정부는 사실상 쿠나시르와 이투루프 영유권을 포기하고 하보마이와 시코탄만 돌려받겠다는 입장을 견지한 듯하다. 다만 완전히 포기했는지는 알 수 없는게 러시아가 두 개 섬도 돌려주지 않겠다는 식의 강경한 입장을 고수할 경우 일본도 다시 네 개 섬 반환 요구쪽으로 노선을 틀지도 모르기 때문이고, 이것이 과거에 해결할 수도 있었던 분쟁이 지금까지 끌고있는 주요한 원인이다. 이 경우 차선책으로 시코탄 섬은 러시아에 넘겨주고 하보마이 군도만 되찾는걸로 물밑협상을 진행할 수도 있다. 이런 연유로 쿠나시르, 이투루프 섬과 달리 시코탄과 하보마이에는 향후 일본 양도에 대한 잠재적 가능성을 감안하여 등대지킴이와 국경경비대만 주둔한다.

2022년 들어 일본이 러시아 경제제재에 동참하며 양국간 관계가 악화되고 자연히 협상도 완전 중단되었다. 예측 가능한 미래에는 재개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8. 다른 패전국들의 영토 상실과의 비교

일부 국제 전문가들은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 폴란드, 러시아, 리투아니아에 넘어간 동프로이센, 슐레지엔, 포메른 등 구 동방 영토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한 독일처럼, 일본도 독도와 쿠릴 열도 4개 섬의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고 전향적인 태도로 선회해 그 반대급부를 취하는 게 더 낫지 않겠냐고 주장한다. 어차피 러시아의 실효 지배가 오래되었고 일본이 독일, 이탈리아와 손잡고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추축국이었음을 감안하면, 일본이 영유권 주장은 국제사회의 공감을 사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쿠릴 열도나 독도와 같이 극히 작은 섬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효과도 없고, 획득하더라도 국력 향상에 별 영향도 없을 뿐더러, 주변국의 반감만 살 뿐이라 국제사회 내 일본의 운신의 폭을 제한할 뿐이다.

일본과 독일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상황을 비교할 때 전쟁을 일으킨 과거사에 대한 반성 태도 및 전범 청산 문제가 주로 논의되지 과거 영토에 대한 일본과 독일의 태도 차이를 비교하는 경우는 적다. 하지만 최근에는 독도와 쿠릴 열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과거사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일본 정부를 옛 영토를 완전히 포기하고 주변국과의 분쟁을 제거하며 역내 협력을 도모하는 독일 정부와 비교하며 비판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특히 독일이 과거 영토를 영구히 포기한 결단은 일본보다 훨씬 어려웠는데 근대 팽창 과정에서 점령했던 오지에 불과한 독도, 쿠릴 열도와 달리 독일이 상실한 동방 영토는 중세 동방식민운동 이래 독일인이 생활한 역사가 깊은 오랜 강역인 동시에 1,000만 명이 넘는 독일인들이 거주하던 고향으로 그 무게감이 달랐기 때문이다. 일례로 동프로이센의 주도였던 쾨니히스베르크(현 러시아 칼리닌그라드)는 1255년 튜튼 기사단의 첫 정착을 도시의 기원으로 하며 구 프로이센 공국의 고도(古都)이자 인류의 지성 임마누엘 칸트 철학의 요람이었던 만큼 당대 독일인들에게 상징적인 도시였다.[45] 또한 슐레지엔은 광업과 공업 등 산업이 발달하여 전전 독일의 주요 경제 지역이었고, 주도 브레슬라우(현 폴란드 브로츠와프)는 전전 독일 내에서 10위 안에 드는 대도시였다. 그리고 포메른의 주도 슈테틴(현 폴란드 슈체친)은 1181년 신성 로마 제국에 편입된 이래 800년 가까이 독일계 인구가 거주하던 도시였으며[46] 전통적으로도 수도 베를린 외항이었다. 이렇듯 독일이 상실한 동방 영토는 12~13세기에 독일화가 진행되었고 중세 이래 독일사의 주요 무대가 된 역사가 깊은 지역이었다.

반면, 일본이 소위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는 쿠릴 열도 남부의 경우 17세기 중반에야 일본인들이 그 존재를 인지했고, 18세기에 들어서 에토로후(이투루프), 구나시리(쿠나시르)에 일본인들이 정착했으며, 전전 인구 규모 역시 고작 17,000명에 불과했다.[47] 물론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독일-폴란드 영토 논란에서 볼 수 있듯 구 동방 영토가 엘베 강 서부와 같이 역사적으로 독일계의 배타적인 영역이었던 것은 아니고 특히 상부 슐레지엔의 경우 더더욱 그렇지만 쿠릴 열도와 역사성을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일본이 쿠릴 열도를 상실한 원인인 2차 대전 자체가 본래 추축국이 다른 국가의 영토를 빼앗기 위한 침략 전쟁이었다. 결국 명시적인 규칙은 없었더라도 추축국이 전쟁을 일으킨 시점에서 그들은 패전 시 그들의 영토를 상실하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타국의 영토를 빼앗기 위해 벌인 전쟁에서 패한 결과 자국 영토의 일부를 빼앗긴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로 비쳐질 수 밖에 없다. 이는 쿠릴 열도가 비교적 근래인 18~19세기에 확보한 영토가 아니라 오랫동안 일본의 영토였을지라도 마찬가지이다. 실제 독일이 범게르만 지역인 주데텐란트, 오스트리아, 동유럽의 독일계 커뮤니티 뿐만 아니라 중세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이 영유했던 구 동부령을 그렇게 잃었다.

쿠릴 열도 분쟁은 난징 대학살, 위안부 문제 등 구 일제의 전쟁범죄와 더불어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방해하는 문제인데 이는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을 문제 삼아 일본의 상임이사국 가입에 대해 강경하게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러시아가 상임이사국에서 물러나지 않는 한 일본은 쿠릴 열도 반환과 상임이사국 진출 가능성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48]

이는 현재 러시아가 일본과 같은 제2차 세계 대전 추축국 출신인 독일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다. 현재 독일은 패전 후 러시아, 폴란드 등 주변국에 넘어간 구 동방 영토의 영유권 주장도 포기한 상태이다.[49] 하지만 러일 양국은 당장 영토 문제가 걸린 관계이기에 항상 긴장이 흐른다. 이러한 이유로 G4의 상임이사국 진출 여부가 주요 안건으로 올라올 때마다 러시아는 독일에 대해서는 표면적으로 문제삼진 않으나 일본에 대해서는 중국과 연합해 노골적으로 반대한다. 2차 대전 당시 소련의 주적이었던 독일과 달리 일본은 딱히 러시아인들의 원한을 살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이러한 지경이니 일본의 영유권 주장이 얼마나 대러관계를 악화시키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심지어 추축국 중 연합국과 교전한 기간이 가장 짧고 전쟁범죄도 비교적 적은 이탈리아조차 2차 대전 이후 영토 상실을 감수했다. 이탈리아는 아프리카와 에게 해의 식민지 상실은 물론이고 동북부 이스트리아 반도 일대와 달마티아 차라(현 크로아티아 자다르), 폴라(현 크로아티아 풀라)를 유고슬라비아에 넘겼으며 국경 지역의 몇몇 마을들도 주민투표에 따라 프랑스에 할양했다. 이 지역들 역시 이탈리아에 결코 덜 중요한 지역이 아니었는데 특히 이스트리아와 달마티아 일대는 고대 로마와 중세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은 바 있다.[50] 하지만 이탈리아 역시 독일과 마찬가지로 빼앗긴 영토에 대해 반환을 요구하지 않는다.

또 여기에 더해 독일과 일본의 대러 입장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는 있다. 폴란드 침공 독소전쟁을 일으켜 600만 명의 폴란드인들과 2,600만 명의 소련인들을 살해하고 동유럽 인구의 약 15~20%를 증발시킨 독일과 달리 일본은 사할린과 쿠릴 분쟁을 시작으로 삼국간섭, 러일전쟁, 시베리아 출병, 할힌골 전투 등 러시아와 갈등의 역사는 많았지만, 러시아인에 대한 대량학살을 벌인 바가 없다. 즉, 영토 할양의 대상인 폴란드와 러시아에 마음의 빚이 있는 독일과 달리 일본은 러시아에 대해 마음의 빚이 전혀 없다. 오히려 독소불가침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독일과 달리 일본은 소일불가침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당한 입장이다. 물론 일제의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인 대한민국을 상대로도 영토 분쟁을 벌이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2차 대전에 대한 일본의 부채 의식 또한 독일과 상이한 것은 분명하며 그렇기에 이러한 주장조차도 다분히 핑계성으로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해당 분쟁에 한정하면 분명 독일과 일본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51]

또한 상술했듯 독일도 어디까지나 동서 통일이라는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기한 것이지 통일 이전 서독 정부는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지 않았다.[52] 반면, 미국에 일방으로 점령되며 분단을 면한 일본은 분단된 독일과 달리 소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역사적 영유 기간과 별개로 해당 국가들의 역사적 연고권 양상 역시 어느 정도 다르다. 동방 영토가 독일령이었던 역사가 남쿠릴 열도가 일본령이었던 역사보다는 길지만 동방 영토의 경우 독일 뿐만 아니라 폴란드, 보헤미아(체코) 등 슬라브계 주변국들도 역사적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일례로 독폴 국경 끝자락인 슈체친(독일명 슈테틴)은 12세기부터 독일령이었으나 그 이전에는 폴란드 피아스트 왕조의 영토였고 실롱스크(독일명 슐레지엔)는 16세기까지 폴란드와 보헤미아가 번갈아 지배했으며 독일의 전신인 프로이센 왕국은 1740년에야 오스트리아로부터 이 지역을 차지했다.[53] 또한 구 동프로이센 주 지역은 17세기까지 법적으로 폴란드의 봉신국이었으며 그단스크(독일명 단치히)는 근대인 18세기 말 폴란드 멸망 시점까지 폴란드령이었다. 이런 연유로 폴란드에서도 새로 차지한 구 독일령을 '수복령(Recovered Territories)'이라고 지칭한다. 하지만 남쿠릴 열도의 경우 1945년 이전 역사에 대해 러시아의 역사적 지분이 거의 없고 선주민인 아이누는 슬라브와 달리 정치체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가 단위로 이 지역을 온전히 점유한 나라는 일본 뿐이었다.[54][55]일본이 남쿠릴을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리하면 일본은 역사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죄책감이 전혀 없고, 정치적으로 러시아에 굽힐 이유도 없으며, 해당 지역에 대한 영유 기간은 짧아도 역사적 클레임은 확고한 편이다. 게다가 국제사회의 주도 세력인 미국과 유럽연합이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고 한때는 중국도 일본을 적극 지지했으니 명분마저 어느 정도 확보한 상황이다. 또한 러시아 역시 크림반도 병합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사돈 남말할 처지가 되지 못한 점 역시 일본에게 유리한 점도 있다. 따라서 일본 정부로서도 영유권 주장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아무튼 이렇게 긴 분쟁의 세월 동안 쿠릴 열도는 실질적으로 러시아의 영토로 굳어졌고, 그 땅에 사는 주민들의 절대다수가 러시아, 우크라이나 계통의 슬라브인이며 그들은 당연히 모국인 러시아 잔류를 희망한다.[56]

한편, 본래 선주민이었던 아이누들은 대부분 일본군을 따라 히키아게샤가 되었고, 잔류하려는 자들도 대부분 소련에 의해 추방되었으며 현재는 일본인들과의 통혼으로 혈통이 희미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아이누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도 홋카이도 본토 아이누의 정체성에 동화되었다. 따라서 본래 이 문제에서 누구보다 중요해야 할 이들은 안타깝게도 전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9. 국제사회의 입장

9.1. 대한민국

1980년대까지는 남쿠릴 4개 섬을 일본 영토로 표시한 지도들이 많았다. 당시의 소련은 미수교국에 북한을 지원하는 적성국이었고 반공을 토대로 외교를 하던 시절이라 독도 문제로 대립하면서도 이 문제에 한해서는 일본의 편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소련이 무너져 러시아가 들어서자 이젠 쿠릴 열도 분쟁에 대한 현재 한국 언론이 쓰던 명칭도 쿠릴 열도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우선 쿠릴 열도가 현시점 소련-러시아의 실질적인 지배를 70년 이상 받았고, 냉전기와 달리 1990년 한소 수교 이후 한러관계가 개선되었으며, 또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반발과 영토 분쟁 중인 지역의 경우 현재 실효 지배하고 있는 나라를 지지하는 것이 독도 문제에도 유리하다는 계산 때문이다. 게다가 국제적으로 실효 지배국인 러시아식 명칭인 쿠릴 열도라는 표기가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기에 꼭 독도 문제가 아니더라도 국제 표기를 따라간다는 명분도 있다.[57] 이로 인해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 여론은 독도 문제로 인해 쿠릴열도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58].

2011년 한국의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쿠릴 열도의 영토 분쟁 지역인 쿠나시르 섬을 방문해 일본에서 강하게 반발했는데 당시 주한 일본대사였던 무토 마사토시가 외교부를 항의 방문하였고 자민당 의원들 중 일부가 이를 설명하였던 외무성 간부에게 물을 부었을 정도였다. 출처[59]

단, 대한민국 정부는 민주당 의원들의 개인적인 행동이지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며 한국과 상관없는 타국의 분쟁에 대해서는 철저히 중립을 고수한다.

9.2. 중국

의외로 일제의 최대 피해국이자 센카쿠 열도 분쟁의 당사자인 중국은 과거 일본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1950년대까지는 중국도 사회주의 형제국인 소련의 입장을 지지했으나 소련과 국경 분쟁을 겪은 직후인 1969년 마오쩌둥이 공식적으로 쿠릴 열도를 러시아에 불법 점령된 일본 영토라고 주장했고, 1970년대에도 소련에 쿠릴 열도를 영구 점령하려는 욕구를 비난하고 반대로 일본이 영토를 되찾기 위한 정당한 행동을 한다고 발언했다. 마오쩌둥 사후인 1989년에도 국무부 총리 리펑은 일본을 방문해 북방영토가 일본 영토임을 재확인하는 등 1960~80년대 내내 일본의 주장을 지지했다.(출처: Russia’s Territorial Disputes with China and Japan, Andrey Sidorov) 당시 중국과 소련은 중소 국경 분쟁을 겪으며 적대적인 관계였던 반면 일본은 1972년 대중 수교 이후 중국에 경제적인 지원을 제공했고 1989년 천안문 사태에 대한 서방의 제재에도 소극적으로 일관하는 등 중국과 꽤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일본의 우경화와 친서방 정책으로 대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현재는 따로 일본의 주장을 지지하는 의견을 내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4개 섬이 러시아의 영토라고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지도 않았다. 2010년대 중국은 남쿠릴 분쟁에 대해 양자간 분쟁으로, 우호 협상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내며 분쟁에서 발을 뺐다. 뿐만 아니라 중국인민해방군이 발행한 세계 지도에서 남쿠릴은 "러시아에 점령됨"이라고 메모되었고 일부 일본식 지명을 사용한다.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가 신냉전이 가속화된 2010년대 이후 우호적으로 변했지만 이전 수십 년간 이어온 주장을 철회하는 것은 국가간 신뢰성과 외교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중국도 굳이 러시아를 지지하지 않으며, 러시아 역시 중국에 지지를 요청하지는 않는다.(출처: Why Russia and China Won’t Join Forces Over Disputed Islands, Defense one 기사) 즉,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중국은 이미 1960년대~80년대까지 일본을 지지했고 현재는 따로 일본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발언을 철회하지도 않았으니 2023년 이전까지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여전히 중립 내지 일본에 대한 소극적인 지지였다.

군대 주둔도 문제지만 이 지역은 러시아 내에서도 상당히 낙후된 편이라 인프라 구축 및 생활기반 조성을 위한 여러 개발 계획들이 진행 중인데 중국의 기업들이 엄청나게 들어와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일본 기업들 역시 원래는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계획에 참여하려 했지만,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재가 발효되자 이에서 물러났고 이 공백을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기업들이 차지했다. 게다가 중국의 입장에서도 미국과의 경제/군사적 대결이 시작된 후 미일 군사 동맹으로 인해 태평양 진출이 좌절되는 상황에서 쿠릴 열도는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한 숨구멍이다.

그리고 신냉전이 심화되고 러시아와 밀착 속도를 높이자 60년 만에 처음으로 '중립'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이는 반세기 동안 이어진 일본 지지 주장을 공식 철회하는 성명이었다. 다만 중국 정부도 중립 입장으로 선회했을 뿐 러시아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지는 않았다.

9.3. 미국

해당 분쟁에서 미국은 일본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사실 현재 일본의 4개 섬 일괄 반환은 전후 미국이 관철한 주장이다. 본래 미국은 2차 대전 직후부터 최소 2개 섬은 일본 땅이라고 주장했으나 나머지 2개 섬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입장이었다. 일례로 1949년 미국 국무부에서 내부적으로 작성한 각서를 보면 하보마이 군도와 시코탄 섬은 지리적, 역사적, 정치적으로 쿠릴 열도에 속하지 않는다고 믿을만한 탄탄한 근거(sound basis)이 있다고 언급했으나 같은 문서에서 쿠나시르와 이투루프는 쿠릴 열도에 속한다고 언급하였다. 이렇듯 미국은 194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하보마이, 시코탄 2개 섬만 일본에 돌려주는 선에서 일본과 소련 양국이 모두 만족할 것으로 보았다. # #

하지만 이후 냉전이 가열됨에 따라 미국은 대일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기존의 입장에서 선회했는데, 1956년 체결된 일소공동선언 당시 일본이 하보마이, 시코탄 반환으로 만족하려 하자 미국은 오키나와 반환 문제를 들이대며 일본이 4개 섬을 모두 반환받는 입장으로 선회하도록 압박해 소련과의 독단적인 평화협정 체결을 방해했다.[60] 따라서 현재의 쿠릴 열도 분쟁에는 미국 역시 일정 책임이 있다. 러시아 주장 근거 중 하나였던 얄타 회담의 문구 또한 일본-소련간 정식 평화조약이 성립될 때까지 소련 군대가 임시 주둔한다는 의미였을 뿐, 쿠릴 열도의 영유권을 영구히 러시아에 귀속시키는 문구가 아니었다는 것이 현재 미국의 입장이다. #

2014년에 미국 정부는 다시 한번 일본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는 입장 표명을 했으며 # # 미국 국무부도 자체 문서에서 남쿠릴 4개 섬의 주민은 일본 국적으로 분류하며 같은 해 12월 미국에서 자국 영주권을 발급하는 복권식 이민 프로그램인 '다양성 이민비자'(Diversity Visa·일명 그린카드 로또) 안내문에서 "하보마이, 시코탄, 쿠나시르, 이투루프 등(남쿠릴 열도 4개 섬)에서 태어난 사람은 일본인에 해당한다"고 명시하여 논란이 되었고 이에 러시아측에서 반발했다. 순식간에 러시아계 일본인으로 국적 변경되었고 이로 인해 일본에 거주하는 러시아인의 수는 무려 27,000명으로 늘어난 상태이다.

2022년 2월. 램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는 일본 영토 지지 영상을 올렸다. # 핵심 내용은 미국은 1950년대부터 북방영토(남쿠릴 열도)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며 러시아는 북방영토에서 우크라이나에 이르는 여러 나라의 영토를 침략하고 있다는 것이다. 2월 12일에는 미국 잠수함이 이투루프와 우루프 경계 해역에 출현하자 러시아 함대가 쫓아냈다고 주장하였으나 미국은 공해에 나타난 거라고 반박하였다. #

9.4. 기타 국가들

유럽 연합도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며, 2005년 7월 7일 유럽 의회에서 남쿠릴 열도가 러시아에 의해 "점령된"(Occupied) 상태임을 명시한 극동 안건을 채택함과 동시에 남쿠릴 열도를 일본에 반환할 것을 러시아에 요청했다.

2018년 3월에 들어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지지하며, 이 시점을 계기로 우크라이나어로도 'Проблема Північних територій'(북방 영토 문제)라는 표현이 주류가 되었다. 사실 이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팽창을 막는 서방세계의 방파제 역할을 수행하는 중이고, 같은 친서방 국가인 일본과는 마찬가지로 대러 분쟁이 있기 때문에 접근한 것이지 그다지 강한 공조는 아니다. 오히려 일본 입장에서 섣불리 우크라이나와 강한 공조를 할 경우 협상에서 불리해질 가능성이 매우 커지므로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편 2022년 10월 6일,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가 쿠릴 열도 분쟁에서 쿠릴 열도 4개섬이 일본에 속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

즉, 국내에서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일본을 지지하는 국가들은 생각 외로 많다. 미국과 EU, 중국에서는 쿠릴 열도 남부가 러시아에 의해 불법적으로 점거된 상태임을 명시하는 문서들이 존재하고 실제로 러시아에 일본의 영토를 반환할 것을 요청한 사례가 있으며 현재에도 미국과 EU는 해당 분쟁에서 일본을 강하게 지지한다. 특히 동유럽 국가들이 그러한데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처럼 자국 영토의 일부를 러시아에게 뜯낀 사례들이 있고 또한 소련이 반환을 약속했지만 미국과 안보조약을 체결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취소한 전적이 있으며 가상적국 러시아가 아닌 서방국인 일본에 호의적이기 때문이다.[61] 오히려 일본이 분쟁 지역 공동 통치 제안을 하거나, 스가 내각 이후 쿠나시르, 이투루프의 2개섬 영유권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하는 등 전향적이면서도 실리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아베 전 총리 암살, 스가 내각의 사퇴 이후 기시다 내각부터 입장을 바꾸기 시작하면서 다시금 북방 4개 섬 일괄 반환이라는 공식 입장으로 회귀했다.

10. 기타

10.1. 홋카이도와 쿠릴 열도

지리적인 이유로 쿠릴 열도에 대한 관심이 가장 많은 일본의 지자체는 홋카이도이다. 홋카이도 전역에서 북방영토 반환을 요구하는 정치적 구호를 쉽게 볼 수 있다.

네무로 시청은 중심가 사거리에 표어 타워를 세워 놓고 거기다가 "돌려줘! 북방영토(返せ! 北方領土)"라고 써 놓았다.[62] 또한 길바닥 아스팔트에는 쿠릴 열도 네 섬을 지도로 그려서 영토 주장을 홍보한다. 그리고 홍보관에서는 "우리들의 북방영토"라는 서적을 무료로 배포하며[63], 심지어 투어버스를 타고 네무로에 있는 일본 최동단 노삿푸 곶을 방문하면, 네무로시가 발행한 북방영토를 봤다는 조그마한 증명서까지 준다.

삿포로 시청 1층 뒤쪽에도 "신뢰와 평화를 쌓는 4도 반환"이라는 큼지막한 플래카드가 붙어 있으며, 삿포로 눈 축제의 가장 큰 행사장인 오도리 공원의 한켠에도 북방영토 홍보 표지판이 있다.

일본의 최북단인 왓카나이시의 소야 곶에 있는 일본 최북단 기념비에도 ‘일본국민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일본영토의 가장 북쪽‘이라며 쿠릴 열도까지 일본 영토로 끼워넣은 문구를 적어 놓았다. 일본의 최북단 도시인만큼 북방 영토의 날이 되면 일본 최북단 기차역인 왓카나이역에도 예외없이 쿠릴 열도 홍보관이 생긴다.

10.2. 북쿠릴 열도와 남사할린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당시 소련이 조약 체결을 거부했기에 사할린과 북쿠릴 열도의 귀속 문제 역시 법적으로 보류된 상황이다. 이후 소일 양국 사이에서 남쿠릴 열도 분쟁이 발생하며 영토 관련 협의가 모두 중단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은 남쿠릴 열도는 물론, 남사할린과 북쿠릴 열도 역시 러시아의 영토가 아닌 무주지로 간주한다. 때문에 일본에서 발간되는 지도에서는 우루프 이북의 쿠릴 열도와 북위 50도 이하의 남사할린 지역이 그 어느 나라의 영토로도 표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를 토대로 북방 4개 섬의 반환만 주장하는 일본 정부의 입장과는 별개로, 일부 일본의 시민 단체들은 북방 영토뿐만 아니라 쿠릴 열도 전역과 남사할린도 돌려달라고 주장한다. 일본공산당 역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근거로 쿠릴 열도 전역의 복귀를 주장한다. 다만 이는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

10.3. 쿠릴 열도의 러시아군

제68군단 소속 제18기관총포병사단이 주둔하며 해안 경계는 여단급 해군 보병대(해병대)가 맡고 해안경비대( FSB소속)도 별도로 주둔한다.

11. 서브컬처에서의 등장

논란이 될 만한 문제는 아예 피하는 성향에 따라 진지하게 이 문제를 논하는 작품이 아니고서는 잘 등장하지 않는다. 만약 쿠릴 열도 문제가 등장한다면 아무래도 일본 측 주장만 나온다. 일단 일본 작품에서 해당 문제가 등장하면 보통은 고향 잃은 실향민들을 주축으로 한 감성적인 흐름이다. 다만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는 일본 영토가 표시될 때에는 남쿠릴열도 4개 섬도 같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64]

11.1. 가공전기

일본의 가공전기에서는 의외로 잘 등장하지 않는다. 소련과의 문제이기 때문에 주로 태평양 전쟁을 무대로 하는 가공전기에서는 등장하기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현대를 무대로 하는 가공전기에서는 러시아와의 분쟁 원인으로 많이 사용된다. 물론 이 경우는 일본이 충분히 강력해진 경우가 많다.

반대로 2차 대전에서 패해 일본이 분단된 이후를 무대로 하는 작품에서는 대개 일본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편입되어 있다. 이런 배경이라면 보통 한국 전쟁을 모티브로 하는 내전이 발발하기 때문에 쿠릴 열도는 신경쓸 문제가 아니다.

일본이 타임슬립하거나 이세계 이동하는 경우에는 독도와 함께 끌려가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가끔 대마도를 빼먹는다. 이러면 상술된 러시아군이 눌러앉는데, 이것만도 단기적으로 신경쓰이는 상대지만 덤으로 부근에서 러시아 핵잠수함이 대기 중이었다거나 하여 일본 내부에서도 독립된 정치세력이 될 힘을 가진 주일미군과 대립하는 경우도 있다.

11.2. 대사각하의 요리사

쿠릴 열도를 되찾으려는 일본의 입장을 언급하며 시코탄과 하보마이 2개 섬 반환이 아닌 4개 섬의 일괄 반환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

11.3. 우국의 라스푸틴

아예 쿠릴 열도 문제를 전면 밑바닥에 깔고 있는 작품. 이토 준지 그림.

일본 외무성의 논캐리어 직원인 주인공은 쿠릴 열도 문제에 목숨을 걸고 있는 정치인(실존인물. 이름은 바꾸었다)과 만나 그의 사상에 감화되어 소련-러시아로부터 쿠릴 열도를 반환받기 위해 열정을 다하게 된다. 그로부터 (요승으로서의 측면이 아니라) 소련과 러시아에 대한 일본 외교계답지 않은 폭넓은 정보망과 지식을 칭찬하는 의미로 '라스푸틴'이라는 별명까지 받는다. 이 별명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외무성을 뒤에서 지배하는 비선실세로 취급당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 내부의 정치 싸움에 휘말려들어 뇌물 수뢰 의혹으로 체포되고, 이후 엔자이로 유명한 검찰의 기획 체포와 시청율밖에 모르는 기레기의 편파적인 보도에 맞서 합법적 스파이나 다름없는 외교관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치열하게 맞서 싸우며 진실을 지켜낸다.

재판 결과 집행유예 1년 6개월을 받는다. 작중 설명으로는 재판 측에서 '체면상 무죄는 줄 수 없지만 네가 맞는 것 같다. 이쯤에서 끝내자.'라는 뜻이라고. 그리고 그 즉시 항소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결과를 보면 주인공만 풀려났을 뿐 쿠릴 열도 반환을 위해 수십 년간 노력한 것은 물거품으로 돌아갔고, 러시아를 무대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겠다고 꿈을 꾸던 유능한 상사맨이나 꿈 많은 동기 외교관 등은 체포와 심문을 거쳐 사회적으로 몰락했으며, 주인공을 심문하며 감정적 교류를 나누던, 유일하게 긍정적인 면이 묘사된 검사는 사실상 패배의 책임을 지고 지방으로 좌천한다. 반면 말기 암 환자라 절대안정해야 하는 옛 지인을 강제로 끌어오기도 하고, 가족을 반 인질로 삼아 언론플레이를 하는 등, 주인공의 상사를 악랄하게 심문하던 검사는 승진했다.

상술한 것처럼 아군은 지나치게 단점 없는 성인군자들이고 일본 정치계의 짧은 시야나 내부 투쟁, 공부 잘하는 수재들만 있을 뿐 '진정한 엘리트주의'를 위한 엘리트가 없는 일본, 국익 따위보다 소속 기관 및 자신의 이익만 탐하는 관료들 등을 실로 상세하고 악의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에 역으로 아스트랄한 점이 있다. 자서전을 원본으로 만화화한 작품의 한계이다.

12.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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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제적 표기, The Kuril Islands dispute [2] 사실 이쪽이 더 정확한 명칭인데 북쿠릴 열도는 분쟁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3] 오키나와현 면적의 2배 이상이며 아이치현, 치바현의 면적과 거의 비슷하다. 일본의 분쟁 지역 중 압도적으로 넓은데, 불과 0.19km²의 독도나 7km²의 센카쿠 열도와 비교를 불허한다. 영해 역시 영토 면적과 해안선 길이에 비례하므로 남쿠릴 열도의 영해가 훨씬 넓다. 따라서 인간의 자연적인 거주가 불가능한 독도, 센가쿠와 달리 많은 정주민이 존재한다. 결정적으로 독도와 센카쿠 열도는 국제해양법에서 정의하는 섬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배타적경제수역을 설정할 수 없다. 물론 일본은 독도보다도 훨씬 작은 오키노토리시마를 콘크리트로 보강하고 그 주변 해역의 배타적경제수역까지 주장하고 있다. 각설하고 독도와 센카쿠 열도는 이러한 이유로 실익이 없지야 않지만 그보다 국가간 자존심 대결 성격이 강한 두 지역과 달리 남쿠릴 영토 분쟁에서는 국익의 충돌 및 히키아게샤 관련 담론이 더욱 두드러진다. [4] 쿠릴 아이누는 쿠릴 열도 중 우루프 섬 이북에 살았다. 해당 분쟁의 중심인 쿠나시르와 이투루프에 살던 아이누는 홋카이도 아이누와 동계이다. [5] 공식적인 일본의 항복은 9월 2일 미주리함에서 이루어졌다. [6] 사실 일본은 소련과 교섭을 통해 하보마이와 시코탄섬으로 종지부를 찍으려고 했지만 미국의 아이젠하워 정권이 개입하며 쿠나시르와 이투루프를 포기할 시 오키나와를 비롯한 류큐열도를 미국령으로 병합하겠다고 압박하면서 바꾸게 된다. 미국 역시 얄타협정에서 쿠릴열도에 대한 기존입장을 번복하기 시작한다. [7] 이쪽도 엄연히 따지면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독도와 위안부 문제 등에서 일본 극우사관을 부정하므로 실시간으로 어그로를 끄는 현 일본 자민당보다 대화 상대로서 훨씬 낫다. [8] 일본도 한국과 형식은 다르나 조상의 무덤 관리와 성묘를 매우 중시하는 국가다. 한국은 유교적, 일본은 불교적 색채가 더 강하다는 차이 뿐이지 고인의 시체 수습과 염, 성묘 문화는 동아시아 보편적으로 강조되는 문화이다. 한국에서도 불교 전통이 유교와 혼합되어 사십구재와 같은 풍습이 생겼다. [9] 참고로 누구나 러시아가 무비자인 한국인과 달리 러시아와 일본은 상호 방문시 비자가 필요하다. [10] 중국어로는 댜오위다오 혹은 댜오위타이, 후자는 대만에서 불리는 명칭이다. [11] 다만 기사에선 곧바로 일러 간 협력이 이뤄진다는 듯이 썼지만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겨우 며칠 전까지 서로 영토 분쟁으로 갈등하다가 무비자 방문 허용으로 경제협력이 이루어지면 일본 극우들부터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12] 2015년에 도쿄 내 술집에서 다른 손님과 말다툼 끝에 상대의 손을 물어 논란을 일으킨 전력이 있다. [13] 이 지도에 북방영토 도서인 구나시리와 에토로후가 묘사되었다. 다만 이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 당시 일본의 본토이던 혼슈, 규슈, 시코쿠 등의 묘사는 정확하나 일본의 힘이 쉽게 닿지 못한 홋카이도와 쿠릴 열도의 묘사는 상당히 허술하다. 이 지도는 오히려 당시 일본의 북방 지역에 대한 통제력이 미약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14] 이미 17세기 중반부터 앗케시 장소(현 앗케시정)를 통해 북방 도서군에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러시아에 대한 방비책으로 쿠릴 열도 일대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1754년 구나시리 섬에 장소를 직접 설치하였다. [15] 처음에 미국도 동의하는 듯하다가 나중에 이를 부정하였다. [16] 다만 러시아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서명하지 않아서 논란이 되었다. [17] 다만 미국은 쿠릴 열도는 북방 4개 섬을 포함하지 않으며 쿠릴 열도에 대한 합의 역시 소련의 관할지에 대한 내용일 뿐 소련에 대한 영토 할양이 골자가 아니었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군정통치한 류큐열도 일대를 일본에게 반환한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입장은 뒤에서 후술. [18] 다만 러시아 역시 1993년 체결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2014년 크림반도 병합과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위반하면서 사돈 남 말할 처지가 못 된다. [19] 오키나와 반환 이전에는 홋카이도를 제외한 지자체에서 북방영토 반환 운동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참고로 쿠릴 열도와 반환 이전의 오키나와는 그 입지가 상당히 비슷한데 각각 일본 열도의 양끝에서 북동부와 남서부를 향해 길게 뻗은 호상 열도이기 때문이다. [20] 물론 그렇지 않은 지도도 소수나마 존재한다. 유사하게 류큐 열도 북부에 속하는 오쓰미 제도도 규슈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다. # [21] 다만 이에 대한 반론도 있는데 류큐의 오스미 제도의 경우 기후나 지형, 생물상을 고려하면 류큐 열도보다는 규슈의 부속도서에 포함될 수 있으며 이를 적용한다면 쿠나시르와 이투루프 역시 쿠릴 열도보다는 홋카이도의 부속도서로 분류될 소지도 가지고 있다. [22] 물론 현재 러시아 정부는 미일안보조약의 개정 등의 이유로 구소련의 입장을 철회한지 오래이며 일본 정부 역시 공식적으로 구마오의 발언을 부정하고 그것은 개인의 사견일 뿐이라고 반론한다. 다만 니시무라는 쿠나시르와 이투루프가 남쿠릴에 속한다고 하였지만 북쿠릴과는 다른 지역이라고 언급하였다. [23] 이 3개 섬에는 러시아인들이 정착촌을 형성하지 못했고 러시아 탐험대가 가끔 들려 모피세 정도를 거두는 것이 고작이었던 반면 일본은 1754년에 쿠나시르 섬에 구나시리 장소를 건설해 실효지배를 확립했다. 물론 러시아는 1855년 이전까지 이 3개 섬을 포함한 쿠릴 열도 전역에 대해 명목상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24] 일본명 샤나촌(紗那村). [25] 고유 영토라는 명칭도 부적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 팽창하면서 빼앗다가도 축소되면 빼앗기는 것이 영토이다. 굳이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한다면 오야시마에 해당되는 규슈, 시코쿠, 혼슈와 그 부속도서 일대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 [26] 하지만 러시아 역시 2014년 크림 병합과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말할 입장이 되지 못하게 되었는데 러시아의 크림반도 역시 일본의 북방영토와 역사적 실효지배, 그리고 국제법적 비교하면 형평성 논란이 되기 때문이다. [27] 상술했듯 분쟁 지역인 남쿠릴 열도의 선주민은 쿠릴 아이누가 아니라 홋카이도 아이누이다. 쿠릴 아이누의 경우 우루프 이북에 거주했으며 이투루프 이남의 아이누는 홋카이도 아이누와 동계였다. [28] 상술했듯 현 쿠릴 열도 분쟁 지역인 이투루프 이남의 아이누는 홋카이도 아이누와 동계이므로 이들은 쿠릴 아이누가 아니다. 물론 이들은 분류상 홋카이도 아이누와 동계였을 뿐 동일한 집단이 아니었으므로 홋카이도 본토의 아이누보다 일본인과의 접촉이 훨씬 늦었다. [29] 다만 이는 아이누족만 당한 것이 아닌 소련 치하에서 존재하던 곳에서 대부분 나타나던 공통적인 문제점이다. 고려인들도 언론통제와 억압, 강제 이주를 경험하였으며 소비에트 연방 소속이던 무수한 민족들도 싸그리 다 겪었다. [30] 이는 주류인 러시아인들도 마찬가지로 당했는데 똑같이 언론통제와 억압은 물론 개척을 위한 명분으로 소련 정부에 의해 강제 이주를 가야만 했다. [31] 블라디보스토크는 완전한 부동항이 아니다. 한편 서쪽에 칼리닌그라드 항구도 있지만 러시아 본토에서 이격되어 있어 접근성이 조금 떨어진다. 본토 기준으로 동과 서에 대강 부동항에 가까운 두 관문 항구가 있다는 정도로 볼 수 있다. [32] 마찬가지로 무르만스크에서도 역시 노르웨이 북쪽 바다에서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 사이의 노르웨이해를 지나,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 사이를 거쳐야 대서양으로 나올 수 있다. [33] 푸틴도 이 문제를 2017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막한 국제경제포럼에서 언급했다. [34]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러시아의 입장일 뿐, 나토의 동진과 관련해서 무조건적으로 러시아가 피해국이라 보긴 어려운 실정이다. [35] 다만 2020년대에 미국이 남 쿠릴열도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을 일본인으로 인정함으로써 어느 정도 문제가 되지 않을 듯하다. [36] 다만 남 쿠릴열도 문제와 유럽국가들의 영토문제는 좀 다른게 유럽 국가들 영토의 경우 여러 민족이나 국가들이 빼앗다가 뺏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남쿠릴열도의 경우 18세기부터 유일하게 통치한 나라가 일본이다. [37] 현재 쿠릴열도 분쟁에서 일본을 지지하는 유럽국가들 중 서유럽을 제외한 대부분이 러시아에게 당한 동유럽국가들인 것도 그 때문이다. [38] 한글 표기야 '하보마이', '시코탄'으로 동일하지만 러시아에서의 표기인 'Хабомай', 'Шикотан' 대신 가나의 키릴 문자 표기법에 기반한 것으로 보이는 'Хабомаи', 'Сикотан'으로 쓴 게 주목된다. [39] 언론에서는 편의적으로 쿠릴 4개 섬으로 묶여서 통칭하지만, 사실 하보마이는 10여 개의 작은 섬들로 구성된 군도이다. [40] 과거 소련이 평화조약을 체결한 뒤 북방영토 4개 섬 중 시코탄, 하보마이를 일본에 양도한다." 하는 내용을 실제로 명기하였다. 이 때문에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이같은 내용의 일소공동선언이 러일 양국의 영토 문제 해결의 베이스라는 입장을 유지했지만, 이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2개 섬 반환과 4개 섬의 일괄 반환 의견이 대립하다가 점차 4개 섬의 일괄 반환이 힘을 얻었다. 문제는 이게 입으로 돌려받겠다고 주장하는 것이야 쉽지만 실제로 영토를 러시아로부터 일괄적으로 반환받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지금까지 시간만 질질 끌어온 것이다. 일본이 4개 일괄 반환을 주장하면 섬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는 일본의 이런 주장을 무시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41] 참고로 러시아 측에서는 반환 대신 양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반환이란 표현을 사용하면 현재 러시아의 점거 상태에 대한 법적 의문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하보마이와 시코탄은 어디까지나 러시아의 선의에 의한 양도 대상일 뿐, 일본에 의무적으로 반환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구 소련 시절부터 이어지는 러시아의 관점이다. [42] 하보마이 군도는 아예 무인도이다. 다만 이는 러시아가 점령한 이후의 일이며 일본령 시절에는 약 4,000여 명의 일본인들이 하보마이에 살고 있었으며 시코탄과 에토로후보다 인구가 더 많았다. [43] 대략 530만 ㎢로 한반도의 23.7배에 달한다. [44] 물론 러시아 극우들에게 고토 수복의 상징으로 꼽히는 알래스카는 애초에 제정 시절 알래스카 조약을 맺어 미국에 정당하게 팔았기 때문에 러시아도 반환을 요구할 명분이 전혀 없다. [45] 가끔씩 동프로이센을 독일을 통일한 프로이센의 기원으로 오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독일을 통일 프로이센 왕국은 오늘날 독일의 수도 베를린이 있는 브란덴부르크주 일대를 영토로 두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이 전신이다. 프로이센은 신성 로마 제국 구성원인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을 칭하기 위하기 위한 우회조항에 불과했고 베를린 포츠담 등 브란덴부르크에 비할 바는 못되었다. [46] 다만, 1185-1227년까지는 덴마크에 점령 당했으며, 스웨덴의 지배를 받은 바 있으나 이때에도 주민들은 대다수 독일계였다. [47] 에토로후의 경우 딱 한번 일본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는데 이 곳이 바로 진주만 공습을 감행한 해군 함대의 출항기지였다. [48] 다만 쿠릴 열도의 영유권 주장을 일본이 포기한다 하더라도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이 유력해지는건 아닌게 센카쿠 열도를 비롯한 또 다른 상임이사국 중국과의 영토 분쟁은 물론 일본의 과거사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며 지정학적인 이유로 일본의 상임이사국화를 반대하는 국가들도 많기 때문이다. 다만 센카쿠 제도의 경우 중국이 뒷북을 친 경우이므로 과거사와는 좀 다르다. 일본보다 과거사에 전향적인 독일은 물론 아예 과거사 문제가 없는 인도조차도 여러 주변국가들의 반대로 상임이사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형편이다. 단, 인도는 중국, 파키스탄과 카슈미르 및 아루나찰 프라데시 분쟁이 있다. [49] 물론 독일이 패전 직후 바로 고토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한 것은 당연히 아니다. 동독의 경우 그 태생이 소련의 위성국인지라 건국 직후 바로 오데르-나이세 선에 합의한 반면 서독은 1960년대까지 동방 영토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이어나갔고 빌리 브란트 이후에도 영토 문제를 대놓고 제기하진 않았지만 정부 차원에서는 통일 시점까지 현 독폴 국경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구 연합국의 허락을 받아야 했기에 서독 정부와 그를 승계한 통일 독일 정부는 상실한 고토에 대한 모든 영유권 주장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50] 참고로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 대전 과정에서 프랑스에게 빼앗은 사보이아 니차도 도로 빼앗겼는데 특히 사보이아는 이탈리아 왕국의 왕실 사보이아 왕가의 고향으로서 의미가 남다른 지역이었다. 다만 사보이아와 니차 모두 이탈리아 통일을 위해 1860년 토리노 조약으로 프랑스 제2제국에게 넘겨준 영토였고 2차 대전으로 재탈환한 것을 도로 빼앗긴 것이기 때문에 이 예시에 적합하진 않다. 이스트리아와 달마티아의 경우에도 1차 대전 이전 오스트리아의 영토였던 것을 승전 보상으로 빼앗은 것이기 때문에 2차 대전 패전 이후에는 그곳을 사수할 명분이 약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사보이아는 이탈리아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고토이며 이스트리아의 경우에도 고중세부터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발칸 국가들이 번갈아 차지하던 영토인지라 18~19세기 이후에야 진출한 쿠릴에 비해 법적 연고권은 떨어지지만 역사적 연고권만큼은 확실하다. [51] 실제 일부 일본인들이 일제가 침략한 타국에 대해서는 일본이 가해자라고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러시아에 한해서만큼은 소련에 기습적으로 침공당한 피해자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 전후 일본인들의 피해자 인식 형성에 공습과 원폭 못지 않게 영향을 미친 사건이 소련의 불가침 조약 파기와 기습 침공이었다. [52] 단, 서독이 통일 이전까지 오데르-나이세 선 이동의 고토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과 별개로 빌리 브란트 총리의 폴란드 방문과 사과 이후 작금의 일본이 다케시마의 날, 북방 영토의 날을 만들었듯 주변국을 상대로 영토 관련 선시비를 걸며 굳이 외교분쟁을 만들지 않았으며 반대로 일본은 명백한 피해자 입장인 한국에 대해서도 독도와 관련해 추태를 부리는 중이다. [53] 참고로 슐레지엔은 16~18세기 동안 합스부르크의 영토였는데 이들이 독일계라 하더라도 오스트리아가 독립국인 현실에서 이 시기를 독일의 역사적 지분으로 보기 어렵다. [54] 상술했듯 그나마 이투루프는 18세기 중반에 러시아인이 먼저 개척했으나 18세기 후반에 들어온 일본인들이 러시아인들을 축출한 역사가 있기에 러시아도 역사적 지분이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일부 러시아인의 비공식적인 진출이었을 뿐, 중앙정부 차원에서 선점한 적이 없고 오히려 1855년 수교 과정에서 러시아 중앙정부가 일본령으로 인정한 전적이 있으므로 강한 클레임을 가지지는 못한다. 오히려 알래스카나 하와이, 캘리포니아에 식민지를 건설한 것이 연고권이 더 강하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쿠나시르 이남 3개 섬은 상술했듯 줄곧 일본의 영향권이었다. 일례로 쿠니시르의 경우 일본사의 사건인 쿠나시르 메나시 전투(1789)의 배경이며 19세기 초 에도 막부가 편찬한 대일본연해여지전도(大日本沿海輿地全図)도 쿠나시르 섬을 일본령으로 묘사하였다. 또한 1811년에는 러시아인 탐험가 바실리 골로브닌(1776~1831)이 쿠나시르 섬에 입항했다가 쇄국 정책을 내세운 막부에 붙잡혀 2년 동안 억류당한 골로브닌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역시 19세기 초에 쿠나시르가 일본의 통제 하에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55] 그리고 자연적으로 보면 쿠릴열도와 류큐열도를 비교한다면 하보마이, 시코탄, 쿠나시르는 오스미 제도와 비교되며 이투루프는 토카라 열도와 비교되며 우루프 이북에서 슘슈섬 일대는 아마미오 이남과 오키나와 일대랑 비교가 될 수 있다. 또한 큐슈의 부속도서로 분류가 될 수 있는 오스미제도의 경우 일본원숭이의 아종인 야쿠원숭이가 사는 것처럼 쿠나시르 이남의 경우 청대장이라는 일본 고유종 뱀이 서식한다는 점도 홋카이도의 부속도서로 인식이 될 수 있다. [56] 다만 본래 남쿠릴 열도의 원주민들은 일본인에 동화되었고 이들은 2차 대전 이후 이주한 슬라브 주민들이다. [57] 중국식 명칭인 댜오위다오 대신 실효 지배국인 일본식 명칭 센카쿠 열도 표기가 많은 것도 이와 유사하다. [58] 다만 쿠릴열도 분쟁은 독도와 다른 점은 실효지배와 역사적 연고가 따로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59] 참고로 방문한 일행 중 하나가 나중에 주일 한국대사로 부임하게 된 강창일 의원으로 후에 주일대사로 임명되면서 기존 입장 중 일부 내용을 번복하였다. 출처 [60] 입장이 바뀐 이유는 일본과 소련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기에 이를 최대한 지연시키려는 주장도 있다. [61] 반면 독도 문제의 경우 일본의 대립 국가인 한국이 일본과 마찬가지로 친미, 친서방 국가이기 때문에 미국이나 EU는 어떤 입장 표명도 하지 않으며 중립을 지키고 있다. [62] 과거 우리나라에서 전국체전 같은 걸 하면 (경)제XX회 전국체육대회 개최(축) 같은 거 세워놓은 것과 비슷하다. [63] 단순히 홍보 브로슈어라기보다는 두께가 웬만한 교재 수준의 자료집에 가깝다. [64] 워낙 크기가 작아 강조하지 않는 이상 보일 리가 없는 독도나 센가쿠 열도와 달리 북방영토는 제주도 면적의 3배, 보소반도에 위치한 치바현 일대와 맞먹는 육중한 지역이다. 따라서 일본 영토 표기에서 북방영토는 거의 항상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