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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09 05:52:16

반동탁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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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로 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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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董卓聯合

1. 개요2. 연의의 18로 제후(十八路諸侯)3. 실제 연합군 목록4. 행적

1. 개요

후한 190년 역적 동탁을 토벌하고 한실을 지킨다는 것을 명분으로 하여 일어선 제후들의 연합이다. 일반적으로 '반동탁 연합'이란 명칭을 가장 많이 쓰며, 함곡관의 동쪽 지방인 관동에서 일어나 관동군(關東軍)이라고 부르기도 한다.[1]

18로 제후는 삼국지연의에서 나온 단어로 정사에서는 나오지 않는다.[2] 굳이 18명인 것은 나관중이 소열제에게서 소열제의 직계 조상인 한고제를 연상시키는 전략의 일환으로서 초한쟁패기에 존재했던 18왕과 동수(同數)를 부여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18로 제후라고는 하지만 이 18명 중에서 진짜 제후는 오정후 손견 하나뿐이다. 나머지 17명은 한나라의 관리이지 제후는 아니다.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대부분의 제후들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전국구 유명인사들의 총집합이었다.

구성원 대부분이 이 18로 제후 시절 타이틀을 죽는 순간까지 가지고 가기 때문인지, 조승상, 유황숙처럼 이 당시의 직위가 이름과 함께 세트메뉴처럼 잘 외워지는 편이다.

2. 연의의 18로 제후(十八路諸侯)

가정본에서는 제후들마다 거창한 수식어가 달렸으나, 모종강본에서는 전부 삭제했다.

3. 실제 연합군 목록

정사에서도 반동탁 연합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연의의 명단과는 좀 차이가 있다. 또 전군이 연합해서 싸운 것도 아니고 정작 직접적으로 싸웠다는 기록이 있는 건 왕광, 포신, 손견, 조조 4명뿐이다. 그래서 연의와 달리 실제 대다수 군벌들은 하진의 중앙군을 그대로 흡수한 동탁군과의 싸움을 두려워해 서로 눈치만 보았고 원소는 한복이 군량 공급을 끊어버리는 바람에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 없었다.

또한 동탁뿐만 아니라 동탁이 멋대로 옹립한 황제인 헌제를 인정하느냐에 대해서도 입장이 갈렸다. 대표적으로 원소가 부정파, 원술이 긍정파였다.

〈실제 정사에서 참전한 군벌〉
〈실제 정사에서는 참여하지 않은 군벌〉

4. 행적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동탁 토벌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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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일본제국군 관동군과 혼동의 여지가 있으므로 잘 쓰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관동군 하면 보통 이 쪽을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고. [2] 다만 정사에서도 연합군을 후방에서 지지한 공융과 도겸, 연의에서는 잘렸지만 실제로는 참전한 유표와 아예 산조 방면 대표였던 장홍, 그리고 독자적 군대는 아니지만 어쨌든 (각각 조조와 원술군 소속으로) 참전한 유비와 손견까지 합치면 딱 18명이긴 하다. [3] 다만 후한서 원소열전에는 이 중에서 조조만 참전했다는 기록이 없다. 아마도 조조는 '기타 쩌리' 라인에 포함되어 있었던 듯. 자사나 태수도 아니고 잡호장군인 분무장군 대행에 다른 사람들은 각각 수만씩 이끌고 오는데 몇천의 의병만 데려왔으니 당연할지도. [4] 한국으로 치자면 전라도를 호남으로, 경상도를 영남으로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별칭 빨라봐야 송나라 때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