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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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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14세기 이전3. 15~17세기
3.1. 뉴턴 역학3.2. 광학
4. 18~19세기
4.1. 해석역학4.2. 열역학4.3. 전자기학
5. 20세기 이후
5.1. 상대성 이론5.2. 빅뱅 우주론5.3. 양자역학5.4. 고체물리학5.5. 양자전기역학
6. 21세기 이후

1. 개요

물리학 역사를 정리한 문서.

2. 14세기 이전

고대 그리스, 이집트에서는 물리학 연구가 흔했다. 기원전 5세기 엠페도클레스는 눈에는 불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눈에서 광선이 나와 볼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기원전 4세기의 플라톤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2세기에 천동설을 주창한 프톨레마이오스 또한 눈에서 물체를 보는 빛이 발사되어 물체를 볼 수 있다는 잘못된 이론을 만들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그 외의 여러가지 굴절과 반사 등을 정리한 《광학》이라는 책을 펴내어 기하광학과 물리광학에서 큰 성과를 냈다. 그리고, 그 결론들을 실험을 통해 결론을 도출한 걸로 유명하다. 단지 자신의 가설에 맞지 않았던 실험은 잘못됐다고 버렸을 뿐. 참고로 이러한 개념은 서구에서는 뉴턴 시절, 우리나라는 조선까지도 존재했다.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움직이는 물체는 아무런 힘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결국 정지하고 만다. 또, 더욱 완전한 영역인 천체들은 영구적인 원운동이 정상적이며 이러한 운동을 하는데 아무런 힘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진공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은 좀 황당할 수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 그는 그 나름대로 상당히 논리적인 해석을 한 것이다. 그 당시에는 행성이 있다는 것 자체부터 검증할 수 없는 이론일 텐데, 그 자리를 계속해서 도는 천체를 보고 달리 무슨 해석을 할 수 있었을까. 마찰력과 공기저항의 존재를 모르는 상황 속에서 현상을 추상화한다는 생각 자체가 엄청난 칭찬을 받을 만한 생각이다.

현대 물리학에서도 벌어지는 형이상학적 논쟁 중 하나도 이때 시작되었다. 그리스 때부터 그리스의 학자들은 자연 현상을 수학적 모델로 설명하기 된다. 이 수학적 모델이 사실인가, 아니면 자연을 묘사한 것에 불과한가 하는 논쟁이 일었는데[1], 수학적 모델이 사실인가라는 논쟁은 양자역학을 대상으로 하여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선 아르키메데스 헤론이 도르래, 지레 등의 역학에 대해서 연구했다. 헤론은 근대이전에 실험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물리학자이며 실험과 이론을 종합해 역학적 원리를 밝혀내려 한 헤론의 태도는 후세에 높게 평가된다. 알렉산드리아의 프톨레마이오스, 테온, 히파티아는 천문학을 연구했다.

로마 말기가 되면 기독교가 전파되고 이교도의 침입이 이어지는데, 그 결과 물리학은 점점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잊혀진다. 415년의 히파티아 사망 사건이나 529년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 의한 아카데미아의 폐쇄사건은 수학과 물리학이 몰락하게 된 사건으로 지목되곤 한다. 그 대신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2000년 동안이나 크게 훼손되지 않고 유지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2000년이나 유지된 이론은 기존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이론의 본질보다는 상당히 보수적이고 편향적인 부분이 짙어져 한동안 과학자들이 진실을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이 되기도 했다. 그 후 14세기까지 물리학은 거의 제자리걸음만 유지했다.

3. 15~17세기

15세기 유럽에서는 항해술 원근법에서의 수요로 인해 수학과 물리학이 크게 발전하였다. 원근법에 기초한 공간의 객관적 이해방식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물리학의 획기적인 변화로 이어지게 된다.

16세기 말 르네 데카르트는 아리스토텔레스식의 체계에 의구심을 가지고 오직 자신의 사고에서 난 직감만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궁극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개념인 온도, 맛, 질량 등도 직관적인 개념인 크기와 모양, 움직임, 위치로 환원하고 싶어했다. 데카르트는 연구를 통해 물체가 운동할 때 '관성'으로 인해 원 위가 아닌 직선의 경로를 따라 운동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동시에 운동량이 보존되는 양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천체의 원운동에는 어떠한 물리적인 힘이 가해진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정립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는 그 힘이 '앞으로 몰아가는' 힘이 아니라 '안쪽으로 잡아당기는' 힘인 것을 깨닫기가 쉽지 않았기에, 그를 대체하는 발상으로, 공간을 채우는 에테르라는 물질의 소용돌이에 의해 천체들이 원운동을 한다고 추측했다.

한편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데카르트의 100% 사고실험이 아닌 실험 결과와 명백한 논리에 의거하여 뉴턴의 운동법칙의 기초가 되는 이론들을 쌓아갔다. 그 과정에서 갈릴레이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결과로 이론을 검증하는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중요한 업적을 남긴다. 과학적 방법론을 제시했다는 중요성 때문에 갈릴레이를 근대 과학의 창시자로 보는 시각이 많다. 갈릴레이는 나무판에 눈금을 매기고 청동구슬을 굴려서 구슬이 등가속운동을 함을 밝혀 내었고 '무한히 미끄러운' 평면에서는 물체가 정지하지 않고, 멈추려면 오히려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추론해냈다. 진자의 주기가 진폭에 상관없이 일정하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2], 또한 포탄의 궤적이 가로방향으로 등속운동이고 세로방향으로 등가속운동이라는 것을 알아내어 45도 각도로 포를 쏠때 가장 멀리나간다는 사실을 증명해낸다.

하지만 그에게도 시대적 한계가 존재했다. 그의 시대에 자연은 전지전능한 조물주의 음악에 발맞추어 행진하는 피조물이었으며, 직선운동도 궁극적으로는 원운동을 하게 됨으로써 질서를 갖춘다고 보았던 것이다.

3.1. 뉴턴 역학

1687년 아이작 뉴턴은 《 프린키피아》를 출간하여 뉴턴 역학을 정립하였다. 이로써 그는 물리학의 창시자로 칭송받았고, 그의 방법을 이용하면 물체의 초기조건을 알 때 그 후 물체가 어떻게 운동할 것인지를 알아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단점이 하나 있는데, 물체가 왜 그렇게 운동하는지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뉴턴 자신도 이를 인정했으며, 그는 물체가 왜 이렇게 운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단지 이렇게 계산하면 결과가 실제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보였다. 뉴턴은 철학의 한 부분이었던 물리학을 수학의 언어, 특히 자신이 발명한 강력한 미적분으로 나타내어 인간이 이를 쉽게 다룰 수 있게 하였다. F=maF=ma로 대표되는 운동방정식의 도입이 바로 그런 것인데, 기존에 대부분의 자연철학자들이 피상적으로 자연현상을 설명하였다면, 뉴턴은 그때까지 발견된 자연현상들을 방정식의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방법을 통해서 자연현상 특히, 물체의 운동 등이 기존에 비해 더욱 더 직관적으로 설명 가능하였다.

3.2. 광학

1650년경 피에르 드 페르마 페르마의 원리를 제안하였다. 1665년 로버트 훅은 박막에 의한 빛의 간섭현상을 보고한다. 박막에 의해 다양한 색상이 나타나는 현상은 원래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공기층의 두께에 따라서 간섭의 색상이 달라지는 것을 알아낸 것은 훅이 최초이다. 1690년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는 훅의 연구결과와 페르마의 원리를 응용하여 하위헌스 원리를 발표한다. 하위헌스의 원리는 파동을 체계적으로 설명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1672년 뉴턴은 빛을 입자로 보는 논문을 발표한다. 뉴턴은 프리즘의 분광을 이용해 빛의 스펙트럼의 존재를 밝혀내었으며 분광된 빛은 더 이상 분광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광된 빛을 다시 모으면 백색광이 된다는 사실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3]

하지만 로버트 훅 회절 실험 결과를 근거로 빛은 파동이라고 주장했다.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도 뉴턴의 논문에 반대하여 빛은 파동이라고 주장했다. 훅은 뉴턴과 표절시비가 있었기 때문에 둘의 감정싸움은 격화되었고 훅이 죽고 난 뒤인 1704년에야 뉴턴은 광학을 출간한다. 뉴턴은 빛이 입자라는 근거로 빛은 직진한다는 점을 들었다. 그리고 빛의 입자가 망막에 충격을 주어 빛이 감각된다며 입자설이 빛에 대한 감각을 잘 설명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4. 18~19세기

뉴턴역학이 확고히 자리잡을 무렵 물리학은 두 분야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천체역학, 유체역학, 고전역학 등 뉴턴 역학의 기반하에 정리된 분야였다. 이 분야들은 제대로된 수학화, 정량화가 이루어져 현대과학에 걸맞은 수준이었다. 18세기에는 달랑베르, 베르누이, 오일러가 유체역학을 크게 발전시켰는데 그 중에서도 오일러는 1755년에 유체역학의 근간을 이루는 오일러 방정식을 발표한다. 반면 열, 빛, 전기 그리고 자기 같은 것에 대해 연구하는 물리학이 있었는데, 이들은 19세기 중반까지 패러다임도 잡혀있지 않고 수학화는커녕 제대로 된 정량화도 안 되어 있어 과학이라 부르기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이렇게 나뉘어 있던 두 물리학은 18,19세기에 들어 큰 발전을 이루면서 전문화되고 에너지 개념을 통해 하나의 물리학으로 통합되었다.

4.1. 해석역학

1697년 야코프 베르누이가 최단강하곡선을 변분법으로 구해낸 것이 해석역학의 간접적 기원이다. 1715년 요한 베르누이는 가상일의 원리를 고안하였고 1725년 피에르 바리뇽은 저서에서 가상일을 정역학에 사용하는 방법을 기술한다. 가상일의 원리란 구속력은 가상변위에 대해 하는 일이 0이라는 원리이며 라그랑주 역학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1743년 달랑베르는 가상일의 원리를 확장시켜 동역학에 응용한다.

라그랑주는 1788년《해석역학》을 내면서 변분법을 활용해 고전역학을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킨 라그랑주 역학을 발표한다. 이를 통해 고전역학을 추상화 하여 운동에서 핵심적인 불변량과 변화량을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1834-35년 윌리엄 로원 해밀턴은 광학과 라그랑주 역학의 유사성에 주목하여 이들을 하나의 원리로 엮어낸 해밀턴 역학을 발표하고 고전역학을 새로운 방향으로 정리한다. 해밀턴의 이론을 통해 위치와 운동량이 가지는 대칭성이 새롭게 주목받았고 이 대칭성은 양자역학으로도 이어지게 된다.

해석역학에서 등장한 일반화 좌표계의 개념은 뉴턴의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이 필수적이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 에른스트 마흐는 절대공간과 절대시간 개념의 대안으로 오직 상대운동만이 존재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4.2. 열역학

뉴턴의 운동방정식은 곧 자연을 탐구하는 모든 학문과 심지어 계몽사조에까지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곧 많은 철학 분야에서 뉴턴주의를 지향, 뉴턴의 방법론을 시도해보기 시작했으며, 심지어는 화학 역시 뉴턴의 계량적 사조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 뒤로 열역학이라는, 뚜렷히 고전 역학과 다른 신묘한 분야가 개발되기 시작했고, '칼로릭 이론'이라는 틀린 이론을 통해 시행착오를 겪은 뒤 카르노의 원리 등을 시작으로 열에서도 제대로 된 물리학적 고찰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1850년대에 열역학 제1법칙 열역학 제2법칙을 통해 정량적인 열역학 개념이 완성되었다. 이로써 천체역학, 고전역학, 광학이라는 분야와 함께 열역학이라는 또 하나의 물리학 분야가 탄생했다.

열역학의 탄생은 없어지지 않는 에너지의 개념을 명확하게 했고 이는 물리학의 핵심이 되었다. 더욱이 1867년 제1대 켈빈 남작 윌리엄 톰슨과 피터 테이트는 '자연철학의 이론'이라는 책을 써서 모든 물리학을 에너지의 관점으로 다시 쓰는 작업을 했다.

4.3. 전자기학

전자기학은 입자가 아닌 장에 기반한다는 커다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전자기학에서의 힘을 매개하는 장이라는 개념은 처음엔 보이지 않는 유체라는 개념으로 시작하였다. 1733년 샤를 뒤페는 대전현상을 연구하여 수지(레진)적 전기와 유리적 전기라는 두가지 전기적 유체가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1747년 벤저민 프랭클린은 수지적 전기와 유리적 전기는 대전열에서의 상대적인 차이에 따라 나타난다는 것을 밝히고 유리적 전기에 양(+)전기, 수지적 전기에 음(-)전기라는 이름을 붙인다. 프랭클린은 전기적 유체는 한가지며 전기적 유체의 많고 적음에 따라 전기적 현상이 전달된다고 보았다.

1785년 쿨롱은 단순한 개념에 불과하던 전기적 유체를 최초로 수학적 구색을 갖춘 이론으로 만들었다. 쿨롱의 이론은 뉴턴의 중력이론을 이용하여 전기에 대한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립했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전기를 유체를 통해서 이해하려 했다는 한계가 있었고 이론에 걸맞은 계산 기법은 빈약한 상태였다.

피에르시몽 라플라스는 1799-1825년 《천체역학(mécanique céleste)》을 출간하면서 퍼텐셜 개념을 이용해 뉴턴의 중력이론을 다시쓰고 구면 조화 함수를 도입하는 등 장을 이용한 다양한 계산 기법들을 정리하였다. 라플라스는 장을 공간에 대한 함수로 해석하는 고전장이론의 기초를 만들어내었다. 수학에 기반했던 라플라스의 물리학은 엄밀하진 않았지만 매우 혁신적이었고 이후 물리학에 여러 영향을 끼쳤다. 라플라스의 천체역학을 기점으로 뉴턴역학이 명확한 수학적 원리를 통해 정립되었고 물리학 자연철학과 구분되는 방식으로 자리잡았다고 보기도 한다.

1811년 라플라스의 제자 푸아송은 라플라스의 퍼텐셜 이론을 쿨롱의 이론에 적용하여 정전기학을 계산이 가능한 실용적인 모습으로 정립한다. 이후 푸아송의 방법은 정전기학을 다루는 표준적인 방식으로 자리잡는다.

1800년 볼타의 전지는 정전기학에서 벗어난 전류의 개념을 탄생시켰고 이를 이용한 물질의 성질에 대한 수많은 실험과 탐구가 이어졌다. 1821년 외르스테드가 전기에 의한 자기장을 발견한 것을 비롯하여 전기와 자기에 대한 수많은 새로운 현상들이 알려지게 되었다.

쿨롱과 푸아송에 의해 전기에 대한 이론은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지만 자기에 대한 이론은 변화에 관한 이론이라서 훨씬 복잡했다. 자기에 대한 이론의 틀을 세운게 패러데이이다. 1832년 마이클 패러데이는 자기력선을 도입하고 공간상에서 힘을 전달하는 장이자 파동에 대한 이론인 고전장이론을 만들어 내었다. 패러데이의 이론에서 장은 공간상에 존재하며 전자기현상은 장을 통해서 전달된다. 패러데이는 전자기력의 정체가 초자연적인 원거리 작용(action at a distance)이 아닌 국소적인 방식으로 전달되는 공간의 파동이라 해석한 것이다.

1865년 맥스웰 전자기학을 확립했고 맥스웰은 자신이 통합해낸 전자기학 방정식으로부터 빈 공간에서의 전자기 유도에 의한 결과물이 파동이고, 빛의 본질이 전자기파라는 것을 밝혀낸다. 반면 빌헬름 베버는 즉각적인 원격작용에 기초한 전자기력 이론을 주장했다. 베버와 맥스웰의 이론은 대립했고 결국 하인리히 루돌프 헤르츠의 전자기파 실험을 통해 맥스웰의 이론이 옳다는 것이 증명된다. 물리학계는 이제 만물의 진리에 도달하였다고 생각하였다.

맥스웰의 전자기학은 장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었고 고전역학과 같은 기계적인 원리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이를 불편하게 여긴 맥스웰은 몇 년 동안 장의 개념을 대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렇듯 공간과 장의 정체에 대한 여러 의문이 있었지만 유용성에 힘입어 장의 개념은 19세기 말에는 거의 완전히 자리잡게 된다.

광학에 있어서 1801년 토마스 영은 이중 슬릿 실험을 통해 빛이 파동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그 이후 또다른 파동설의 근거인 아라고 반점이 실험을 통해 확인되면서 빛의 파동설은 정설로 자리잡는다. 1821년 오귀스탱 프레넬은 편광 현상을 근거로 빛이 횡파라는 것을 알아낸다. 1820년대 오귀스탱 프레넬과 요제프 폰 프라운호퍼는 회절에 대해 여러가지 성질들을 정량적으로 밝혀낸다.

윌리엄 허셜에 의해 가시광선 영역 밖의 빛인 자외선 적외선 등도 발견되었다. 프리즘을 통해서 백색광을 여러 색으로 분리 시키는 실험에서, 붉은색과 보라색영역 바깥쪽에서도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실험결과로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빛도 있음을 밝혀내었고, 붉은색 바깥쪽의 빛을 적외선, 보라색 바깥쪽의 빛을 자외선이라고 명명하였다. 또한 여러 실험과 기존에 파동에 관한 정보들을 통합하여서, 붉은색의 빛은 긴 파장과 작은 에너지(진동수)를 가지고, 보라색계열의 빛은 짧은 파장과 큰 에너지(진동수)를 가지는 것을 밝혀내었다. 특히, X선은 발견 이래로 의료계에서 활발하게 사용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더 이상 딱히 할 게 없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연상 가능한 경우에 대하여 지금까지 발전되어 온 법칙들을 쓰면 설명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다만, 행성의 정확한 운동 이를테면 수성의 근일점 이동 등과 흑체복사 등에서 아주 사소한 문제가 발견되었지만 이것도 곧 해결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5. 20세기 이후

5.1. 상대성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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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빅뱅 우주론

1917년 아인슈타인은 정적 우주론을 제안한다. 일반 상대성 이론을 우주에 적용하면 우주의 척도 인자(scale factor)의 도함수, 즉 우주팽창 속도는 일반적으로 0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는데, 이 말은 즉 우주가 정상 상태가 아니고 크기가 커지거나 작아지는 상태라는 뜻이 된다. 아인슈타인은 이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우주상수란 개념을 추가하고, 우주가 정상 상태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는 곧 반박되었는데, 1929년 허블은 외부은하들이 존재하며 이들의 스펙트럼이 적색편이를 보인다는 것을 발견한다. 허블은 은하들이 멀어지고 있으며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밝혀내며 빅뱅 우주론의 신호탄을 쏘았다. 아인슈타인 또한 결국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였다.

1948년 조지 가모프가 빅뱅 우주론과 그에 따른 우주배경복사가 존재함을 주장한다. 1965년 우주배경복사가 실제로 관측되어 빅뱅 우주론이 실험적으로 입증된다.

우주론을 뒷받침하는 수학적 이론에도 여러가지 발전이 있었다. 1922년 알렉산드르 프리드만과 1927년 조르주 르메트르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풀어내었다. 1935년 로버트슨과 1936년 워커는 균일하고 등방적이라는 가정을 가지고 엄밀한 방법으로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정확한 해를 구한다. 이들이 구한 해를 프리드만-르메트르-로버트슨-워커 계량이라 부른다. 1970년에는 스티븐 호킹 로저 펜로즈가 특이점 정리를 응용하여 빅뱅이 존재했음을 수학적으로 밝혀낸다.

우주는 지금 이 순간에도 팽창하고 있는데, 이 팽창하는 속도를 역으로 계산해보면 대략적인 우주의 나이를 알 수가 있게 된다. 이 방법으로 밝혀낸 우주의 나이는 약 138억 년이다.

5.3. 양자역학

1855년경 가이슬러는 가이슬러관을 발명하고 플뤼커와 함께 음극선을 발견한다. 1897년 조지프 존 톰슨이 음극선의 정체가 전자라는 입자의 흐름이라는 것을 입증해낸다. 이는 파동이 아닌 양자화된 입자가 자연에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낸 첫 사례이다. 톰슨은 원자가 전자를 포함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내부구조를 가진 원자모형을 제시했다. 톰슨의 원자모형은 미시세계에 대한 연구를 촉발시켰다.

1860년 구스타프 키르히호프 흑체란 단어를 창시하고 흑체가 복사하는 빛의 파장 분포가 온도에만 의존한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고전물리학적 관점 즉, 빛은 파동이라는 관점에 따르면 파장이 짧아질수록 빛의 세기가 무한대로 치솟아야 한다. 이건 애초에 결론 자체가 비현실적인데다, 실제 실험값은 파장이 길 때는 잘 맞지만, 짧을 때는 오히려 더 0에 근접해간다. 1900년 막스 플랑크는 이 현상을 에너지의 양자화라는 개념의 도입으로 설명해냈다. 에너지가 양자화 되어 있다고 가정한 후에 통계를 이용하여 그래프를 그려보니 실험결과와 일치했다. 근데 뭐? 에너지가 연속적이지 않다고? 플랑크 자신도 그 결과를 인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190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광전효과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며 빛이 입자라는 사실을 입증해냈다. 그 뒤에 이어지는 수많은 물리학자들의 밤샘연구를 딛고 결국 빛은 파동성과 입자성을 동시에 지닌다는 사실로서 인정이 된다.

1911년 러더포드는 원자핵이 존재함을 밝혀낸다. 1914년 보어는 러더포드의 원자모형과 '전자의 각운동량이 양자화되어있다(또는 정상파조건을 만족해 에너지손실이 없다)'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수소원자의 선스펙트럼을 정확하게 설명해낸다. 유도 과정을 보면 이해할 수가 없고 말이 되지 않는다.

1924년 루이 드 브로이 '그러면 입자도 파동이겠네?'하고 입자의 파동성을 제안한다. 전자를 빛과 같이 발사하는 실험을 해보니 전자도 빛과 마찬가지로 회절무늬가 생긴다. 결국 물질은 분자, 이온이 무극성분자와 이온결합 사이의 어떠한 상태이듯이 입자와 파동 사이의 어떠한 상태라고 결론짓게 된다. 특히 입자 중에서 질량이 작은 전자는 파동의 성질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결국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에르빈 슈뢰딩거와 함께, 많은 과학자들은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낸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파동함수라는 것을 만들어내고, 고유치 문제를 변형해 연산자를 만들어 이를 측정의 개념에 대응시키면서 슈뢰딩거 방정식을 만들어낸다. 그 후 파동함수의 절댓값의 제곱이 입자가 그 위치에 존재할 확률밀도함수라는 코펜하겐 해석을 받아들였고, 운동량연산자와 위치연산자를 들이대는 순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보고 하이젠베르크 불확정성의 원리가 발표되었다. 그 후에 폴 디랙이 특수상대론과 양자역학을 결합해 디랙 방정식을 만들었다.

양자 역학의 발전으로 기존 원자 모형인 러더퍼드의 원자모델의 문제점을 수정할 수 있게 되었다.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에 의하면 전자는 극히 짧은 시간 내에 원자핵과 충돌해야 하는데, 실험해보니 영 딴판이었던 것이다. 1926년 슈뢰딩거와 물리학자들은 전자의 궤도를 양자역학적으로 계산하여서 새로운 원자 모형을 만들었다. 이 원자 모형에 의하면 전자는 궤도를 운동하는게 아니라 공간에 대해 퍼져있기 때문에 원자핵으로 충돌하여 붕괴하자 않는다.

5.4. 고체물리학

1900년 드루드는 고체 내부에 전자가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드루드 모형을 제안한다. 드루드 모델은 금속의 몇가지 특성들과 홀 효과를 대략적으로라도 설명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1912년 막스 폰 라우에는 X선 회절 실험을 통해 결정이 원자들의 규칙적인 배열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인다. 라우에의 발견은 고체의 구조를 처음으로 밝혀내었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X선 결정학에 따른 고체의 이해는 이후 고체 연구의 밑바탕이 되었다.

1926년 엔리코 페르미 폴 디랙은 페르미-디랙 분포를 발견하고 1928년 좀머펠트는 페르미-디랙 분포를 드루드 모형에 적용한 자유 전자 모형을 만들어, 금속의 비열, 전자밀도, 결합 에너지 등 다양한 성질을 계산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부도체의 성질은 잘 설명할 수 없었다. 1931년 크로니히와 페니는 주기적인 1차원 퍼텐셜이 있을 때 에너지 준위가 일련의 띠들로 나누어짐을 보였다. 같은 해 앨런 윌슨은 크로니히-페니 모형을 일반화시켜 밀접 결합 근사(tight binding approximation)를 이용한 띠 이론을 만들어낸다. 띠 이론으로 부도체와 반도체의 성질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1940년에는 반도체의 p-n접합이 발견되었고 p-n 접합과 띠 이론에 힘입어 1948년에는 트랜지스터가 발명되기에 이르른다. 띠 이론에 기반한 고체물리학은 이후로도 눈부신 발전을 이룬다.

5.5. 양자전기역학

1860년대 로렌츠와 맥스웰은 특수한 퍼텐셜 변환에 대한 전자기학의 불변성을 확인한다. 1918년 헤르만 바일은 전자기학의 그러한 특성에 게이지변환이라는 이름을 붙여 수학적 해석을 시도했고 1929년 전자기학의 게이지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립한다. 게이지 이론이란 게이지 대칭이라는 국소적 공간상에서의 대칭을 이용하여 물리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바일의 게이지 이론에 따르면 모든 전자기 상호작용들은 게이지 대칭이라는 원리에 의한 현상이 된다. 1947-48년 도모나가 신이치로, 줄리언 슈윙거와 1949년 리처드 파인만은 게이지 이론을 이용하여 전자기학과 양자역학를 체계적으로 엮어낸다. 이들이 만든 게이지 이론이 양자전기역학이라 불리는 최초의 양자장론이다.

1950-60년대에 게이지 장은 시공간과의 미분기하학적 접속(connection)으로 이해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 이러한 접속이 가지는 불변량은 뇌터 정리로 나타낼 수 있었다. 1918년 뇌터는 뇌터 정리를 발표했으나 1950년대까지는 양자장론에서의 중요성이 주목받지 못했다. 뇌터 정리의 새로운 이해를 통해 양자장을 좌표계에 의존하는 대상이 아니라 라그랑지안의 미분동형사상으로 이해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

양자장론에서 장은 파동처럼 진행하며 장의 양자화된 들뜬상태가 입자에 해당한다. 양자장론의 이러한 해석을 통해 파동과 입자가 하나의 이론으로 드디어 완전히 통합되었다. 또한 조지프 존 톰슨이 발견했던 고전 전자기학적으로 전자의 자체에너지(self-energy)가 무한대가 된다는 문제도 양자장론을 통해 해결되었다.

1954년 양전닝과 로버트 밀스는 비가환(non-abelian) 게이지 이론을 만들어낸다. 1961년 글래쇼가 양-밀스 이론을 양자장에 적용했고 1967-68년 와인버그와 살람은 전자기약력 이론을 정립한다. 이후 1973년 그로스, 폴리처, 윌첵이 양자색역학을 개발한다.

입자의 본질에 대한 연구 또한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6. 21세기 이후

현대의 물리학은 더욱 더 본질적인 입자의 탐구와 다른 이론과의 통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업적은 블랙홀 화상 촬영.

현재의 물리학은 하나의 이론체계로 최대한 많은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의 통합과 더욱더 본질적인 탐구를 목적으로 한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각각의 주 분야인 (고속/강한 중력의)거시영역과 미시영역에 대해선 잘 맞으나 이 둘의 개념 자체가 다르며, 섣불리 합치면 양자 요동 등을 고려 시 블랙홀의 특이점이나 우주론에서 거론되는 빅뱅 직후의 우주 같은 극단적인 고에너지 미시현상을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때문에 새로운 개념을 통해 이를 합쳐야 하며, 이것을 시도하는 게 초끈 이론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이다.

미시와 거시영역 중간에 걸쳐 있고 많은 입자를 통계적으로 다루고 있다. 열역학- 통계역학- 엔트로피- 빅 데이터 프로세싱의 경우처럼 개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발전하고 있다.


[1] 전자는 유클리드, 아르키메데스 등이 있었고 후자로는 에우독소스 등이 있었다. [2] 실제로 이는 최대진폭이 작을 때 성립한다. [3] 뉴턴은 이를 7가지 색으로 분리된다고 서술하였는데 그 때문이 영국과 대한민국에서만 무지개를 7가지 색이라고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