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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8 01:12:31

마일스 케오

마일스 케오
Myles Keogh
파일:1000139485.jpg
본명 마일스 월터 케오
Myles Walter Keogh
출생 1840년 3월 15일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 렌스터 지방 칼로주 레이린브리지
사망 1876년 6월 25일 (향년 36세)
미국 몬태나 준주 리틀 빅혼 강 인근
복무 교황군
미합중국 육군
최종 계급 미국 육군 대위
복무 기간 1860~1862(교황군)
1862~1876(미군)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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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일랜드계 미국의 군인.

2. 생애

아일랜드 중부 칼로주 레이린브리지에서 태어났고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인해 굶주림에 허덕이며 사망하던 시절 케오의 가족들 역시 시련을 겪었으며 동생이 사망하고 본인도 장티푸스에 걸려 생사를 오갔다. 이후 세인트패트릭 칼리지를 졸업했다.

1860년 이탈리아 통일전쟁당시 이탈리아로 건너가 교황청 의용군 소위로 입대해 이탈리아 왕국군과 대치했으나 카스텔피다르도 전투에서 패배해 포로로 잡혔다. 이후 협정으로 풀려나 로마에서 교황청 근위대에 1년가까이 복무했다.

1862년 교황군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갔고 북군에 지원해 기병 대위계급을 부여받고 불 런 전투, 앤티텀 전투, 게티즈버그 전투, 프레더릭스버그 전투, 애틀랜타 전역등 중요한 전투에 참가해 공을 세우며 전시계급 준장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1864년 조지아주에서 펼쳐진 선샤인처치 전투에서 군마가 총을 맞아 낙마해 포로로 잡히게 되었다. 하지만 포로 협정으로 풀려났다.

전후 미국에 정착을 결심했고 원 계급인 대위로 돌아왔으며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와 매부관계를 맺었다. 이후 제7기병연대로 전입해왔고 1876년 리틀 빅혼 전투에서 커스터 삼형제와 함께 원주민들의 공격으로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