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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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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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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룩셈부르크의 역사를 설명하는 문서.

2. 상세

카롤루스 대제 사후 프랑크 왕국이 셋으로 분할되었을 때 잠시 장남 로타르 1세의 영지인 중프랑크에 속했다. 중프랑크의 영토 중 알프스 이북 지역은 로타르의 이름을 따서 로타링기아(로트링겐)으로 불린다. 로타르가 죽고 로트링겐을 두고 서프랑크 왕국 동프랑크 왕국의 분쟁이 벌어졌으나 최종적으로 동프랑크 왕국을 계승한 독일 왕국에 병합되었다.

이후 브라반트 공국( 브뤼셀 백국), 림뷔르흐 공국, 룩셈부르크 공국, 플란데런 백국 등이 있던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하게 되었다. 아르덴 백작 지크프리트 1세가 트리어의 성 막시민 수도원으로부터 룩셈부르크 일대의 영토를 얻어내어 룩셈부르크 백작이 되어서 다스렸다. 지크프리트 1세가 세운 룩셈부르크 가문은 결혼 동맹 덕분에 14세기 초 보헤미아 왕국을 획득하였고,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까지 선출되었다. 룩셈부르크 가문은 아예 본거지를 보헤미아의 프라하로 옮겼다. 룩셈부르크는 브라반트 공국, 림뷔르흐 공국 등과 합쳐졌다.

1437년 룩셈부르크 가문의 대가 끊겼고,[1] 부르고뉴 공국이 새로 룩셈부르크를 지배했다. 이후 결혼 동맹을 통해 1477년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가 부르고뉴 공국을 상속받아서 합스부르크 네덜란드를 형성했다. 막시밀리안 1세의 장손자 카를 5세가 퇴위하고 합스부르크 가문이 둘로 나눠졌을 때 합스부르크 네덜란드에 속해있던 룩셈부르크는 스페인 압스부르고 왕조 스페인령 네덜란드에 상속되었다.

17세기에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에 의해 잠시 프랑스에 병합되었다가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1714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결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합스부르크 제국으로 넘어가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에 속했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후 대프랑스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1794년 프랑스 제1공화국이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를 점령했다.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열린 빈 회의에서 오스트리아 제국 이탈리아 반도 북부를 얻는 대가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를 포기했다. 룩셈부르크는 대공국으로 승격되었고, 네덜란드 국왕이 룩셈부르크 대공을 겸했다. 또한 같은 해 세워진 독일 연방에 가입했다.

1839년 런던 회의에 의해 서쪽 영토 절반을 벨기에에 할양했다.[2] 1842년 독일 관세동맹에 가입했다.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일어나고 나서인 1867년 독일 연방을 탈퇴하고 영세 중립국의 지위를 받았다.

1890년 동군연합이던 네덜란드에서 빌헬미나 여왕이 즉위하면서 룩셈부르크는 직위 계승 방식인 살리카 법에 따라 방계인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 아돌프 대공에게 상속되어 네덜란드의 지배에서 벗어나 분리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독일 제국군에게 점령되었다가 종전 후인 1919년에 마리아델라이드 여대공이 물러나고 동생 샤를로트가 즉위했다. 샤를로트 여대공은 부르봉파르마 가문의 펠릭스 공자[3]와 결혼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도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되었고, 네덜란드나 벨기에와 달리 아예 독일 본토로 합병되고 젊은이들은 독일 국방군으로 징집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인 1945년 영세 중립을 포기하고 NATO에 가입하였다.

6.25 전쟁 당시 한국으로 파병하였다. #

1987년에 부르봉파르마 본가와 귀천 상혼에 대한 분쟁이 벌어져서 장 대공은 공식적으로 부르봉파르마 가문과 결별하고 대공가는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으로 칭하고 있다.


[1] 룩셈부르크 가문의 최전성기를 이끈 명군인 카를 4세에게는 아들이 2명 있었으나, 바츨라프 4세 지기스문트 모두 후사가 없었고 지기스문트의 딸 보헤미아의 엘리자베트의 남편인 합스부르크 가문 알브레히트 2세에게 넘어간 주요 영지를 제외한 나머지는 분할 상속된다. [2] 이 때 룩셈부르크 영토 2/3, 인구의 절반이 벨기에에게 넘어갔다. [3] 파르마 공국의 마지막 공작 로베르토 1세의 6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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