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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23:46:02

로스앤젤레스 전투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투 목록 | 아시아/태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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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c002d><colcolor=#fff> 로스앤젤레스 전투
Battle of Los Angeles
파일:로스앤젤레스 전투.jpg
▲ 로스앤젤레스 타임즈지의 보도 사진(채색 복원 버전).
발생 일시 1942년 2월 24일
발생 장소

로스앤젤레스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상공)
유형 오인 사격 (추정)
관할 미합중국 육군
영향 민간인 피해 발생
1. 개요2. 전개3. 원인4. 기타

[clearfix]

1. 개요

1942년 2월 24일, 로스앤젤레스 상공에 출현한 미확인 비행체를 향해 미합중국 육군 방공포병 대공포를 발포한 사건.

2. 전개

The Battle of Los Angeles[1]

1942년 2월 24일 밤, 미 육군은 로스앤젤레스로부터 4km 떨어진 지역 상공 12,000피트[2]에 정지된 상태의 물체를 발견하였다. 당시는 제2차 세계 대전 가운데 태평양 전쟁이 한창 진행중이었고 진주만 공습을 받은 지 이제 세 달이 될 무렵이었기 때문에, 이를 일본 해군 항공대의 본토 공습으로 판단한 미 육군은 25일 새벽 3시 16분부터 1,400여발의 대공포를 발포하기 시작했다. 발포는 새벽 4시 14분까지 이어졌으며 아침 7시 21분에야 경보가 해제됐다. 해당 비행체는 반격과 같은 특별한 행동을 보이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떠 있었다. 미군의 포격이 계속되었지만 적기가 격추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attle_of_Los_Angeles_LATimes.jpg
당시 로스앤젤레스 타임즈에 실린 기사

대공포 사격으로 인하여 사망한 공식적인 사망자 수는 5명이다. 세 명은 대공포 사격 이후 발생한 교통사고 등으로 사망하였고, 나머지 두 명은 대공포 사격 후 공포감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후 미합중국 해군 장관 프랭크 녹스 육군 항공대 사령관 헨리 아놀드가 직접 나서 경보가 잘못 울린 것이었으며, 전쟁 공포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었다고 발표했다. 이런 반응이 나오자 육군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비난이 이어졌다. 침묵을 지키던 육군참모총장 조지 C. 마셜 장군은 논란이 계속되자 로스앤젤레스 상공에 15개의 비행체가 떴고 그것을 조준해 사격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3. 원인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나오자 당시 전쟁부[3]장관이었던 헨리 L. 스팀슨의 지시 아래 조사가 진행되었고 24~25일 비행체가 나타난 것은 사실이라는 발표를 했다. 다만 그것의 정체가 뭔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훗날 당시의 기록 등을 토대로 조사한 결과 단지 탐조등 불빛으로 인한 오인에 전쟁의 히스테리가 겹쳤을 뿐이라는 말이 있다. 당시 목격자들도 비행물체답지 않게 해당 물체들이 탐조등의 움직임에 따라 느리게 움직였다고 진술했고, 시속 29,000km로 움직였다고 주장한 목격자는 1명이었던 걸로 드러났다.

당시 찍힌 사진은 얼핏 보면 탐조등이 마치 ufo를 비친 듯한 모습인 것 같지만 사실은 탐조등의 빛이 구름에 반사되어 만들어진 원형의 발광체인 것 뿐이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즈에 게시된 사진은 원본이 아닌데, 당시 좋지 않은 인쇄술로 인해 사진의 인화 과정에서 잉크가 번져 음영이 강조되었을 뿐, 원본은 아래와 같이 물체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구름에 탐조등이 비친 모습과 스스로 빛을 내는 물체는 구분이 된다. 탐조등이 움직이는데 따라 구름에 비친 부분이 움직여야 하는데 따로 놀면 자체 발광 비행체이므로, 적기로 판단하고 사격했을 가능성이 있다.
파일:external/forgetomori.com/battlela_redbrightness.jpg

4. 기타


[1] LEMMiNO의 영상. 한국어 자막이 있다. [2] 약 3600m [3] 오늘날의 국방부와 달리 육군만을 통제할 수 있었고 해군부가 독립적으로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