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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3 02:53:56

레자 팔라비

<colbgcolor=#239f40><colcolor=#fff> 이란 제국 팔라비 왕조 수장
레자 팔라비
رضا پهلوی | Reza Pahlavi
파일:800_2_Cyrus-Reza-Pahlavi-iran-portrait-paris.jpg
출생 <colbgcolor=#ffffff,#191919> 1960년 10월 31일 ([age(1960-10-31)]세)
팔라비 왕조 테헤란
재임기간 팔라비 가문 수장
1980년 10월 31일 ~ 현직
아버지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어머니 파라 디바
배우자 야스민 팔라비(1986년 결혼)
자녀 장녀 누르(1992년생)
차녀 이만(1993년생)
삼녀 파라(2004년생)
정당 이란 국가평의회[1]
서명 파일:Reza_Pahlavi_II_signature.svg.png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장래
3.1. 폐지된 군주제가 복고되어 팔라비 왕조 제3대 샤가 될 경우3.2. 군주제 복고 주장을 포기하고 이란으로 귀국할 경우3.3. 모국으로 못 돌아가고 오로지 해외에서 사망할 경우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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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란의 전 황태자. 現 팔라비 가문의 수장이자 제위 요구자다.

2. 생애

1960년 10월 31일 팔라비 왕조의 제2대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와 파라 팔라비 황후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1967년 부황의 대관식 때 정식으로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형제로는 이복누나 샤나즈 팔라비(1940.10.27~)[2], 남동생 알리 레자 팔라비(1966.4.28~2011.1.4), 여동생 파라나즈 팔라비(1963.3.12~)와 레일라 팔라비(1970.3.27~2001.6.10) 등이 있다. 다만 이복누나인 샤나즈와 첫째 여동생인 파라나즈를 제외하면 아래의 동생들인 알리 레자 팔라비와 레일라 팔라비는 각각 자살 약물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파일:Queen_Elizabeth_II_and_Crown_Prince_Reza_Pahlavi_of_Iran.jpg

엘리자베스 2세와, 1978년

1977년에 조종사로서의 군사 수업을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1979년 팔라비 왕조가 이란 혁명으로 붕괴되고 호메이니 주도의 이란 이슬람 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어 결국 이란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고 이듬해인 1980년 부황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샤가 이집트에서 지병인 췌장암으로 붕어하여 결국 명목상의 샤이자 팔라비 가문의 수장으로 부황의 뒤를 잇게 되었다.

현재 미국에 망명해 거주 중이며 유학 경험 때문인지 모국어인 페르시아어를 비롯해 영어, 프랑스어에 매우 능통하다. 아내인 야스민 팔라비도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한터라 영어를 잘 한다.

이란이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군주제가 붕괴되고 공화국으로 바뀐 지 40년이 넘어가는데도 미국이나 서방세계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팔라비 왕조의 복고를 주장하며 반체제 활동을 하고 있다. 다만 최근에는 군주제 복고를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고 이란 국민들의 민의에 따라서 공화정을 수용할 수 있다는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군주제 폐지 후 왕족들이 국외로 추방됐다가 입국 금지령이 폐지되면서 귀국하여 모국 국적을 회복했던 불가리아, 루마니아, 이탈리아, 그리스 같은 동유럽, 남유럽 국가들의 사례처럼 이란 귀국을 주장/요구하고 있다.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자녀
1녀 누르 팔라비
(Noor Pahlavi)
1992년 4월 3일 생존 ([age(1992-04-03)]세)
2녀 이만 팔라비
(Iman Pahlavi)
1993년 9월 12일 생존 ([age(1993-09-12)]세)
3녀 파라 팔라비
(Farah Pahlavi)
2004년 1월 17일 생존 ([age(2004-01-17)]세)

가족으로는 1986년에 결혼한 아내 야스민 팔라비와 자식들이 있다. 아들이 없고 딸만 셋인 데다 권총 자살한 남동생 알리 레자 팔라비도 유복녀 1명만을 남겼기 때문에 차기 팔라비 가문의 수장은 친사촌인 패트릭 알리 팔라비에게 승계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패트릭은 팔레비 2세의 큰 남동생 알리 레자 팔라비(1922 ~ 1954)의 외아들로 계승 자격이 있는 이들 중 가장 가깝다. 하지만 '패트릭'이라는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이 사람은 팔라비 왕조 시절부터 외국에서 오래 떠돌았고 어머니도 아내도 유럽인이다.

현재 그는 무직이다. 1989년, 2017년, 2018년에 한 인터뷰에서 팔라비 가문이 해외로 가져온 재산과 황실 복고를 지지하는 이란인들에게서 받는 지원금으로 살아간다고 밝혔다.

3. 장래

별로 밝지 않다. 팔라비 왕조가 망한 지 수십 년이 되어가는데도 군주제 복고를 주장하고 있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1980년대 CIA가 레자 팔라비를 비롯한 망명 이란인들에게 자금을 지원했지만 이란-콘트라 사건 이후 단절되었다고 한다. # 팔라비 왕조 망명 정부인 이란 국가 평의회를 세워서[3] 군주제 복고를 주장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현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강고한 안정성을 고려하면 과연 무너질 때까지 레자 팔라비가 장수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4] 레자 팔라비 자신도 이미 무려 60대라서 가능성이 높지 않다.

설사 이란 신정체제가 민심을 잃고 망하여 세속주의적 정부로 대체된다고 해도 구정권 개혁파 또는 망명자 출신 정치가들이 팔라비 왕조를 추대해 군주제를 복고할지는 의문이다. 이란 입헌당이나 이란 왕국회의처럼 군주제 복고를 희구하는 망명단체들도 있지만 반군주제 좌파, 공화주의 성향 단체들의 세력이 크다. 현재 팔라비 가문에게는 이것을 뒷받침할 만한 군사력이나 국내의 지지 세력이 전혀 없다. 애초에 이란의 야권 세력 자체가 동부의 발로치스탄, 서부의 쿠제스탄, 서북부의 이란령 아제르바이잔, 쿠르디스탄 같은 소수 민족 분리주의 세력, 과거 인민 무자헤딘 같은 좌파 계열, 이슬람 혁명 이후 망명 커뮤니티가 서구식 교육을 받으며 형성한 자유주의 성향의 이란 외 반정권 단체 등 자잘하고 성향이 전혀 다른 단체들이 서로간의 교류나 협력도 딱히 없이 이합집산하고 있는 상황이며 구 팔레비 왕조의 지분은 애초에 자잘한 야권 세력 중에서 딱히 주도적인 것도 아니다.

자신에게도 포스트 이슬람 공화국 시대의 이란 정계의 참여 기회라도 주어질지도 모르겠지만 팔라비 왕조 시절 부황 팔라비 2세 샤가 근대화와 경제발전 등의 치적들은 둘째치고 사치와 폭력적인 통치로 민심을 잃어 이란 혁명의 발단을 초래한 데다 이란 혁명 이후 이란 현지에서도 암군, 폭군 취급을 받는 군주고 신정 정권의 폭정과 경제폭망으로 어느 정도 향수가 있다고는 해도 팔라비 왕조에 대한 이란 국민들의 시선도 그리 곱지만은 않은 데다 현 이란 정부내의 개혁파 지도층 세력들조차도 팔라비 왕조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이를 갈고 적대하는 터라 가능할지 의문이다. 자력으로 안 되면 미국이나 유엔 등 국제사회나 외세의 지원을 등에 업는 것도 자칫 이란의 반미 감정을 더욱 키울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국제전문가들도 팔라비 왕조의 복고 가능성에 대해 고개를 젓고 있어 폐지된 팔라비 왕조의 복고가 레자 팔라비 자신의 뜻대로 이뤄질지가 의문이다.

물론 잉글랜드의 찰스 2세나 그리스의 요르요스 2세, 캄보디아의 노로돔 시아누크,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1세 전 국왕과 같이 폐지된 군주제가 부활해 왕위를 되찾아 다시 군주가 되었거나 부활한 군주제에서 새 군주가 된 사람들도 더러 있다.[5] 하지만 이란 팔라비 왕조는 이란 국내에도 지지 세력이 거의 없다시피하고 여기 열거된 유라시아 국가들 3개국들도 이란의 팔라비 왕조보다는 사정이 더 열악하지 않았다. 잉글랜드는 청교도 혁명으로 왕정이 폐지된 후 들어선 크롬웰의 공화정부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던 막장 정권이었고 캄보디아도 노로놈 시아누크 전 국왕이 축출되고 왕정이 폐지된 후 들어선 론 놀 크메르 공화국 크메르 루주 민주 캄푸치아, 친베트남 성향 캄푸치아 인민공화국 모두 막장이었으며 스페인도 왕정폐지 이후 스페인 제2공화국 정부와 그 공화국 정권을 스페인 내전으로 무너뜨리고 집권한 프랑코 정권이 왕정 시절의 스페인보다 더 답이 안 나오는 막장이었다. 특히 스페인은 프랑코 자신이 말년에 왕정복고를 의결하며 후안 카를로스 1세 국왕을 후계자로 지명했기 때문에 프랑코 사후에 왕정복고가 이뤄졌지만 팔라비 왕조는 그 어디에도 조건이 충족되지 못한다.

3.1. 폐지된 군주제가 복고되어 팔라비 왕조 제3대 샤가 될 경우

설사 아주 만약 군주제가 복고되어 팔라비 3세로 다시 황위에 오른다고 해도 과거 아버지 팔라비 2세 샤가 저질렀던 전횡 때문에 천황처럼 상징적인 군주로 머물 가능성이 높다. 군주제가 복고된 나라들은 선대 군주가 저질렀던 실책들로 인해 군주의 권력을 박탈하고 총리가 실질권력을 취하는 형태인 의원내각제 하의 입헌군주제를 도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6] 따라서 팔라비 왕조가 복고되어도 몰락한 아버지 팔라비 2세 샤와는 달리 외교에서는 친서방 정책을 취하기보다는 반서방 내지는 중립, 내치에서는 급격한 세속화보다는 현재 러시아나 인도처럼 시아파 이슬람의 기득권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노선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어찌됐건 기득권으로서 호강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마찬가지지만.[7]

3.2. 군주제 복고 주장을 포기하고 이란으로 귀국할 경우

군주제 복고 주장과 황위 계승권 주장을 포기하고 현 이란 정부와 협상하여 이란으로 귀국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실제로 레자 팔라비도 복고가 어렵다면 이를 포기하고 이란 정부의 허가를 받아내서라도 귀국이나 일시방문을 할 수 있다며 귀국 의사를 보이기도 했다. 다만 이란으로 돌아온다 해도 신변안전을 장담하기 어렵거나 정권을 위협할 후환이 될 가능성이 높아[8] 당국으로부터 통제를 받을 수 있다는 문제도 존재한다. 당장 이란 정부로부터 신변안전을 보장받는다고 해도 극단주의자에 의해 암살당하거나 공격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실제 이란 현 정부는 팔라비 가문 인사들이 해외 망명을 접고 이란으로 귀국해올 경우 이들을 당장 검거해 사형[9]을 집행하겠다고 강경하게 주장하고 있다.[10] 하지만 이전 왕/황족들을 사형시켜 죽이는 사례를 따져 봐도 프랑스 혁명 루이 16세 러시아 혁명 니콜라이 2세와 그의 일가족들을 프랑스 혁명 세력들과 볼셰비키 세력들이 단두대로 처형시키거나 총살형으로 모조리 없애 버리는 등 국내 혁명 과정에서 죽여 버린 사례는 몇 건 있었을 뿐 군주제 폐지 후 망명 생활하다가 모국으로 돌아온 이전 군주 및 왕/황족들을 죽인 사례는 극히 드물다. 결국 이란 정부가 레자 팔라비 등 팔라비 가문 사람들이 귀국할 경우 체포해 처형할 시 연좌제에 대한 국제적인 비난이 이란 정부를 향해 쏟아질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귀국 후 검거해 억류한다고 해도 사형을 시킬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현 이란이 아무리 사형과 신체절단과 같은 인권 탄압으로 국제적인 비난을 받는다고 해도 국제사회의 여론을 어느 정도 의식하기 때문이다.[11]

다만 귀국 후에도 왕정 폐지 후 망명 생활을 하다가 모국으로 다시 귀국하거나 왕정 폐지로 왕위를 잃고 폐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추방당하지 않고 여전히 모국에 거주하고 있는 전 국왕들이나 몰락 왕조 가문들의 사례처럼 이란 정부로부터 처벌을 당하지 않고 이란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는 전주 이씨 가문 사람들이 여전히 대한민국 국적자로 거주하고 있고, 이탈리아에서 제2차 세계 대전 후 왕정 폐지, 공화정 정부 개헌으로 축출당했던 사보이아 왕조도 이탈리아 공화국 신정부의 추방 밑 입국 금지령을 받아 스위스, 포르투갈 등 해외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2002년에 이탈리아 정부가 입국 금지령을 폐지하면서 이탈리아로 돌아와 현재 이탈리아 국내에서 이탈리아 국민으로 거주하고 있다. 네팔도 내전으로 인해 왕정이 몰락하고 공화국으로 바뀌면서 폐위당했던 갸넨드라 전 국왕이 여전히 네팔 국내에서 생활하고 있고 루마니아의 미하이 1세 전 국왕도 루마니아 국내에서 별 지장 없이 생활하다가 2017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이란의 이웃나라 아프가니스탄에서도 1973년 쿠데타로 왕정이 폐지되어 왕위를 잃고 실각당했던 무함마드 자히르 샤 전 아프가니스탄 국왕도 탈레반 정권이 무너진 뒤 아프가니스탄으로 귀국하여 자신의 모국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2007년에 생을 마감했다. 이집트의 무하마드 알리 왕조 가문도 1952년 쿠데타로 축출된 후 이집트에서 추방되었다가 나세르 전 대통령이 사망한 뒤에 입국 금지령이 폐지되어 이집트와 유럽을 오가면서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나라들은 왕정 폐지를 주도하여 정권을 잡은 1세대 세력들이 몰락했거나 왕정을 축출하고 새로 성립된 공화정부에서 입장을 전향하여 입국 금지령을 해체했거나 왕정 폐지 과정에서 전 국왕이 생존한 채로 폐위하는 선에서 왕정을 없앴기 때문에 가능했다. 적어도 이란의 현 정권이 망하거나 입장을 바꾸지 않는 이상 이마저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3.3. 모국으로 못 돌아가고 오로지 해외에서 사망할 경우

이변이 크게 일어나지 않는 한 가장 가능성이 높다. 팔라비 왕조의 복고 가능성은 희박하고 복고 시도를 포기하고 이란으로 돌아오자니 이란 당국에 붙잡혀 처벌받거나 혹은 처벌받지는 않더라도 이란 국민들에게 '이 XX 무슨 낮짝으로 귀국이냐?'라며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을 가능성이 높고 결국 귀국이나 방문을 포기하고 망명자 신세에서 현재 상황을 유지하면서 아버지 팔라비 2세 샤처럼 타지에서 사망할 가능성도 높다. 레자 입장에서는 팔라비 왕조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혐오가 적어도 현 이란 집권층에서는 강경파건 온건파건 상상 이상이기 때문에 불안정한 이란에 귀국해 돌아가서 살 바엔 이 편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4. 여담



[1] 망명정부를 주장하지만 정부라기보다는 일종의 군주제 복고 단체에 더 가깝다. [2] 모하메드 레자 팔라비와 이집트 공주 출신 푸아드 전 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딸. [3] 정부라기보다는 망명 야권 조직 정도에 가깝다. [4] 물론 소련이나 카다피 정권의 예에서 보듯 그 '안정성'이란 게 한 방에 훅 갈 가능성도 있지만 적어도 현재로서는 그렇다. [5] 물론 찰스 2세도 청교도 혁명으로 아버지 찰스 1세가 사형당하고 크롬웰의 공화정 정권에 의해 쫓겨나 해외에서 망명생활을 하게 되었고 현 레자 팔라비 황태자같이 몰락한 왕족으로 전락한 이후에는 왕위에 복귀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결국 다시 왕정복고가 이뤄져 잉글랜드 국왕이 된 것도 올리버 크롬웰이 사망하고 그 뒤를 이은 리처드 크롬웰이 반대파들의 공격을 받아 축출되고 잉글랜드 내 권력 헤게모니를 장악한 뭉크 장군 등 반 크롬웰파 세력들이 유럽에 망명 중이던 그의 귀국과 왕정복고를 결의했기 때문이다. [6] 당장 왕정이 복고된 뒤의 잉글랜드 찰스 2세도 전제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고 귀족층들과 협력하면서 정치를 했고 스페인 후안 카를로스 1세도 즉위한 후 프랑코 독재정권 청산과 민주화 개혁 조치들을 취하면서 상징적 군주로 내려와 모든 권력을 국회와 총리에게 넘겼으며 캄보디아 노로돔 시아누크가 복위하긴 했으나 실질적인 권력은 총리가 취하며 권력이 제한된 상징적 군주로 격하됐다. [7] 오로지 국민들의 세금으로 생활비를 지원받고 그 금액조차도 적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군주 가문이라 평가받는 일본 황실 입학 특혜 손타쿠 등 사회적으로 대접받는 영향력이 엄청나다. [8] 이란 신정체제에 적대적인 일부 근황파 반체제 세력들의 입장에선 레자 팔라비와 그의 일가족들은 자신들에게 정치적 구심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란 신정체제의 기득권층들의 입장에서는 레자 팔라비가 시메온 2세 불가리아 국왕처럼 유력 정치인으로 급부상하여 황제는 못 되더라도 이란 대통령이 되어 버리면 그야말로 자신들에게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이들이 오랫동안 이란을 지배해온 전적이나 인적 자원의 부재로 인해 레자 팔라비가 이란 신정체제에 복무했던 이란 정치인들과 고위 각료들에 대한 처벌과 보복을 하지 않고 기득권을 어느정도 보장하며 이들을 용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시메온 2세 전 불가리아 국왕은 불가리아로 귀국한 뒤 제2차 세계 대전 전후 공산당 정권에 의해 폐지됐던 왕정의 복고를 주장했다가 국내의 반대 여론에 부딪혀 실패했다. [9] 실제로 이란에서 이란 혁명 직후 팔라비 황족들애게 내려진 궐석재판의 사형판결이 아직도 취하되지 않고 있다. [10] 망명국에서 팔라비 가문 인사들 전원이 사망할 때까지 입국 금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11] 이란은 지속적으로 이라크 넘어 레반트 일대의 헤즈볼라를 필두로 한 중동 전체 범시아파권의 물주 노릇을 하며 동부 국경 쪽의 ~스탄 돌림자 중앙아시아 국가들 상대로도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어쩌면 역사적,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는 실제 국력을 훨씬 상회하는 국제적 영향력을 지닌 나라다. 국제 사회, 아니면 적어도 자신들의 영향력을 받는 인근 국가들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는 위치다. 꼭 굳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시하며 사형을 강행해 죽일 필요는 없고 옛 망명지였던 미국/서방과의 모든 연줄을 끊게 만들고 공화국이 된 이란 국민으로 동화시키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12] 팔레비 왕조 가주는 재미있게도 세대가 갈수록 종교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팔레비 2세 팔레비 1세만큼의 탈종교주의자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국외 망명 살이가 더욱 길어지다 보니 종교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