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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6 09:27:01

달빛동맹

달빛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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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벌
대구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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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
광주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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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역사4. 활동
4.1. 정치4.2. 경제4.3. 문화4.4. 재난구호
5. 의의6. 여담(비슷한 사례)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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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3년 3월, 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가 상생 사업으로 추진해온 것을 계기로 만들어진 용어. '달'구벌 대구광역시, '빛'고을 광주광역시의 앞글자를 땄다. 다른 관점에서는 현대판 나제동맹이라[1] 부를 정도다.

2. 배경

한국의 대표적인 지역감정인 영남 vs 호남은 선거를 통해 증명되고 있는 바와 같이 그 해소의 실마리도 보이지 않는 문제이고 기성세대의 후손이 교육받아 온 비하적인 표현을 지양하고, 사회 통합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완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은 이견이 없는 사항이다.

이러한 노력은 작게는 특정 정치인이 반대 성향 지역에 꾸준히 출마하며 표를 호소하는 노력부터 각 지자체별 협력 모색, 정부 차원의 여러 정치 사회적 배려까지 다양했으나 정작 영남과 호남을 묶어줄 수 있는 공통된, 절박한 주제를 제시하지 못하여 생색내기식, 일회성 이벤트에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에 비해 달빛동맹은 대구 광주라는 두 대도시의 공통된 핵심 이슈인 경제 문제가 그 배경에 있는 점이 차이가 있다. 현재의 대구와 광주는 모두 시 내부에 시민들에게 넉넉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주고 지자체에 충분한 납세를 해줄 수 있는 생산 기업의 부족 및 특정 분야에 편향된 경제 구조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2]

과거부터 섬유 산업, 안경 산업 등을 통해 성장한 대구는 경공업의 가격 경쟁력 약화로 생산 기업 수와 규모가 크게 줄어들었다. 섬유산업의 경쟁력 약화는 그 이전부터 발생한 문제였으나, 1997년 외환 위기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혔다. IMF 이후 섬유산업 부흥을 위한 정부 노력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냥 대실패. 이후 도시 내 생산은 대구테크노폴리스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 부품, 기계 부품 등 부품 산업 위주로 개편되었으나 여전히 타 대도시에 비해 생산 분야의 비중이 낮은 것은 변함이 없다.

이처럼 현재의 대구의 경제는 포항, 구미 등 다른 주변 도시에 위치한 공업단지에서 벌어 들인 수입을 시 내부에서 소비하고 있는 전형적인 소비 도시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삼성전자, LG전자, SK실트론 등이 있는 구미와 포스코, 에코프로비엠이 있는 포항과 대구 간 교류가 많다. 출퇴근 패턴도 대구 -> 구미, 포항 출근 패턴이 주를 이룬다.

다른 지역 도시에서 벌어온 돈을 대구에서 소비하는 형태로 도시의 경제가 운영되는 만큼 대구시 주민들의 소비력은 수도권이나 부울경 지역 못지 않으며, 시의 재정자립도 역시 높지는 않아도 전국적인 기준에서는 무난한 편이지만 타 지역의 소득을 대구에서 소비하는 것으로 버티는 경제 구조는 다른 지역의 경제 사정 변화나 소비 패턴의 변화에 따라서 대구 경제도 함께 휘청거릴 수 있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안정적인 고용을 약속할 수 있는 생산 기업의 부족 문제는 어떠한 정당, 어떠한 사람이 시정을 이끌어도 늘 고민 거리가 되었다.

광주는 산업면에서 대구보다 상황은 낫지만 그 경제 구조가 현대자동차그룹을 위주로 한 자동차 산업[3]에 집중되어 있어 자동차 산업의 부침에 따라서 도시 경제가 휘청이는 불안정함을 안고 있다. 이러한 자동차 산업 역시 대한민국의 산업 시설의 큰 그림이 그려지던 군사독재 시기에 어떠한 버프도 받지 못하고 소외된 상황에서, 그나마 지역에 위치하던 상용차 제조사인 아시아자동차의 뿌리가 어찌저찌 지금까지 내려온 결과에 가깝다.

물론 자동차 산업 이외에도 삼성전자 광주공장 등 다른 분야의 생산 기업이 없지는 않으나 자동차 산업체의 규모에 비해서는 영향력이 작으며, 호반건설 등 광주에 기반을 두었던 기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회사 역시 서울로 거점을 옮기면서 더 이상 광주의 기업이라 하기는 어려워졌다.

광주권 대구권에 비해 대도시권이 부실[4]하여 소비로 경제 활성화를 하는 것도 한정적인데, 김천 - 구미 - 칠곡 - 대구 - 경산 - 영천 - 경주 - 포항을 잇는 넓은 권역이 영향권에 들어가는 대구와 달리 광주의 경우, 여순광을 제외한 전라남도 전 지역을 자신의 영향 아래 두고 있으나, 목포, 나주 화순을 제외하면 광주의 실질적인 경제력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전라남도 서부에서는 광주, 목포 외에는 인구 20만 이상인 도시가 아예 없고, 이마저도 목포는 광주와는 독립된 모습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광주에 위치한 대기업 공장은 고용 창출에는 도움을 주지만 인구 150만인 광주에서 산업적 편중이 심하다보니 광주시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실한 소비력과 지역 기반 기업의 부재는 세수를 비롯한 시 운영에도 악영향을 주어 광주는 대도시 중 가운데 가장 열악한 재정자립도를 갖고 있으며, 이는 광주에서 광주신세계처럼 대기업이 진출할 때 지역 법인을 설립하도록 규제를 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5]
이러한 경제적인 약점을 공유하고 있기에 달빛동맹의 주요 교류나 결과물은 지역 감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시민단체 등 시민의 자발적인 움직임보다는 주로 지자체와 경제계 등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으며, 아직 각 지역의 시민들이 갖는 깊은 지역감정의 골은 해소되지 못하고 있으나 지자체나 기업 입장에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곳끼리 손을 잡고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녹아들어 있어 지역간 협력에 적극적이다. 특별한 정치적인 이슈가 없는 이상 대구는 보수정당, 광주는 민주당계 정당 출신의 시장을 배출하지만, 달빛동맹만큼은 각 광역시 시장의 출신 정당 성향과 무관하게, 선거에 따른 시장 교체와 무관하게 흔들림 없이 진행되고 있다.

3. 역사

달빛동맹이라는 말이 쓰인 것은 200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대구경북이 첨단의료복합단지로 선정되자, 의료산업 공동 발전을 위한 업무 협약을 서울에서 맺은 것이 시초이며, 이 때부터 달빛동맹이라는 말을 쓰게 된다. #

이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았고, 2013년 3월 대구 광주가 본격적인 교류 협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후 광주광역시장 2.28 대구학생민주의거 기념식에 참석하고 대구광역시장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서로 참석하는 등으로 우의를 다져오기도 했다. #1 #2 #3

역사적으로 대구 광주는 시사하는 바가 깊은데, 국채보상운동(1907, 대구), 광주학생항일운동(1929, 광주)[6], 2.28 민주운동 - 4.19 혁명(1960), 5.18 민주화운동(1980) 등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징성 때문에 행정수도 이전 논의 당시 헌법재판소 광주로, 대법원 대구로 옮기는 법안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 의해 발의되기도 했다. #, #

2015년에 민관협력위원회 구성 조례를 지정하고 각계 전문가 30명을 위원으로 선정하면서 5월 18일 달빛동맹 민관협력위원회가 출범했다. 2015년 12월 달빛동맹 민간협력위원회 2차 총회가 개최됐다. #) #

2022년 42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날에는 광주시청에서는 달빛동맹을 성공적으로 이끈 권 시장에게 명예시민증을 전달하는 행사가 열렸다. 권 시장은 광주 명예시민, 이용섭 광주시장은 대구 명예시민이 됐다. 대구시의회는 지난달 이 시장의 명예시민증 수여 동의안을 처리했다. 이 시장은 이날 권 시장에게 명예시민증을 주며 “5·18 정신과 2·28 정신이 맞닿아 상생협력으로 이어 온 달빛동맹이 영호남의 화합과 지역균형발전을 선도하고 있다”고 했다. 권 시장도 “달빛동맹이 국민통합과 국가균형발전의 촉매제가 되고 있다”고 화답했다. #

또한 광주와 대구는 에너지 전환 분야에서도 ‘달빛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두 지역은 4월 29일 광주에서 ‘달빛동맹 햇빛찬란e 플랫폼 구축위원회’와 2022년 에너지 전환마을 통합 발대식을 개최했다. 이 사업은 광주가 ‘에너지 전환마을 지원 플랫폼’을 개발하고, 대구는 시민햇빛발전소 지원 플랫폼인 ‘누구나 햇빛발전 지원 플랫폼’을 개발해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인프라면에서도 공통된 이슈에 대해서는 정부를 향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달빛고속철도 건설에 대해서는 수 년전부터 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지역 개발의 공통된 걸림돌인 대구국제공항 광주공항에 대해서도 이전 특별법 제정에 한 목소리를 내 공조하고 있다. # # #

4. 활동

4.1. 정치

2013년 3월 대구시 광주시는 상생발전을 도모해 달빛동맹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같은달 27일 김범일 대구광역시장 강운태 광주광역시장이 하루동안 서로의 근무지를 바꾸는 상호교환근무를 했다. 2013년 4월 대구시의회 광주시의회는 달빛동맹 강화와 공동발전을 위한 상호교류협력을 체결했다. # #

광주대구고속도로 고속도로의 조기확장 공사, 3차원 입체영상 융합사업, 전기자동차, 의료, 신재생에너지 등 4개 분야에 대한 협력 방안을 구체화하는 전략적 제휴를 잇달아 맺고 있다. 숙원사업인 달빛내륙철도 등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국채보상운동의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협력한 적이 있다. 2016년 1월 광주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과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세계기록유산 달빛 학술토론회'를 개최해, 광주 5.18 민주화 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에 대한 경험와 지혜 등에 대해 토론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결과 2017년 10월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또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는 쾌거를 이뤘다. #

자유한국당 5.18 민주화운동 망언 사태가 터졌을 당시, 권영진 대구시장은 "당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가슴 터질 거 같다"며, 이용섭 광주시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했다고 한다. 물론 권영진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의 주축이었던 친박과 거리가 먼 인물이다보니 그랬던 것도 있으며, 이철우 경북지사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또한 2021년 대구광역시청과 대구 버스 518번에 5.18민주화운동을 기리는 현수막이 붙었다. 비슷하게 광주 버스 228번 역시 2.28 민주화운동을 기리는 의미가 있다. 민선 8기 출범으로 대구시장과 광주시장이 각각 홍준표 강기정으로 바뀐 후[7]에도 두 시장은 달빛동맹 기조를 계속 이어오고 있다.

4.2. 경제

광주은행 대구은행이 2015년부터 달빛동맹 MOU를 맺고 상호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2015년 12월에 미래차 상용화 개발과 실증 테스트를 위한 협약을 맺었다. #

2016년 10월 삼성전자가 광주에서 삼성개방특허 광주설명회를 개최해 창조경제 분야의 협력을 가졌다. 12월 1일에는 현대자동차가 대구에서 설명회를 가질 예정이다. #

2019년 10월 23일 광주 시청에서 대구와 광주 사회적경제연합회와 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민‧관 거버넌스 워크숍을 개최하고 광주시 사회적경제 협업 박람회 현장을 방문했다. #

4.3. 문화

대구 시민숲 조성사업, 시립예술단 교류 공연, 야구·축구·마라톤 등 문화체육 분야에서도 교류협력을 이어 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KBO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 88고속도로 씨리즈[8][9], K리그 대구 FC 광주 FC의 경기를 두고 달빛 더비라고 부르는 것이 그 예이다.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열렸을 때 권영진 대구시장이 직접 가서 관람하기도 했다.

2017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두산 베어스 더스틴 니퍼트를 상대로 KIA 타이거즈 이범호가 만루홈런을 기록하자, 삼성 팬들이 대환호하기도 했다. 그 이유인 즉슨, 2015년 한국시리즈 때 삼성을 준우승으로 몰고 간 대삼성 최종병기가 니퍼트였고, 이범호가 삼성 라이온즈의 연고지인 대구 출신이기 때문이다.

달빛오작교를 통한 청년들의 만남과 청소년 역사·문화 교류 체험 등의 사업은 두 지역의 젊은 세대들에게 화합의 장을 만들었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2021년 5월 27일, 두 지역은 함께 2038 하계 아시안 게임 공동 유치에 나섰다. #

4.4. 재난구호

2016년 1월, 광주에 폭설이 내리자 대구에서 2박 3일 동안 제설차량 5대와 인력 6명, 소금 50t을 지원해줬다.

2018년 1월, 광주에 최악의 폭설이 왔을 당시 광주의 제설차량이 부족한 것을 알게 된 대구에서 다목적 제설차량 1대, 덤프트럭 4대, 소금 50t과 함께 시설관리공단 직원 8명으로 구성된 대구시 제설지원단을 광주에 파견했다. #

4.4.1.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2020년 2월, 광주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진자가 발생하자 대구광역시청에서 마스크 1만 장을 지원해줬다. 그 후, 대구에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틀 뒤인 2월 20일에 광주광역시청에서 제일 먼저 마스크 2만 장을 기부했고, 28일에는 2만 장을 추가로 더 기부했다.

신천지 대구교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으로 대구가 큰 위기에 처하자 3월 4일에는 손소독제 3,000개와 자가격리자를 위한 생필품 세트 2,000개, 광주 청연한방병원에서 기탁한 경옥고 1,000세트를 잇따라 지원했다.

2월 28일, 의사 1명, 조선대병원 간호사 2명, 아이안과 행정직원 1명, 모 복지기관 사회복지사 1명 등 5명이 팀을 이뤄 '달빛의료지원단'을 만들어서 대구로 의료봉사를 떠났다. 이와 별개로 광주광역시시의사회는 의사회원들의 성금 3,000만 원 중 2,000만 원을 대구광역시의사회에, 1,000만 원은 경상북도의사회에 전달했다. #

2월 29일, 5·18기념재단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유포한 지만원 등에게 손해배상금을 받아 조성한 공익기금으로 마련한 돈을 대구에 기부했다. #

3월 1일부터 광주시는 코로나-19 경증 환자를 빛고을전남대병원과 광주시립제2요양병원으로 이송하여 치료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대구의 코로나-19 확진자를 받기로 한 것은 모든 지방자치단체 중 광주광역시가 처음이다.

3월 5일, 광주은행 DGB대구은행에 마스크 1만 장을 기부했다. #

3월 5일, KIA 타이거즈 선수단 및 코치진, 2020 시즌 주장 양현종과 이화원 대표이사가 각각 1,000만 원씩 총 3,000만 원을 대한적십자사 대구광역지사에 기부를 하며 달빛동맹에 힘을 쓰기도 했다. #

3월 8일, 광주광역시교육청에서 1,091만 3,050원을 모아서 9일 대한적십자사 대구광역지사를 통해 대구광역시교육청에 전달했다. #

3월 10일, 광주 흥사단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서 651만 5천 원을 대구·경북 흥사단을 통해 대구광역시에 전달했다. #

3월 11일, 광주에 본점을 두고 있는 '민물장어 양식수협'이 1차분으로 준비한 민물장어 도시락 2,000인분을 보온용기에 담아 대구의료원과 동산병원에 우선 배달했다. 1억 원어치, 3t 가량의 민물장어를 7번 정도 나눠서 보내기로 하였고, 횟수나 양도 대구에 힘이 된다면 추가할 생각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1차분으로 보낸 민물장어는 총 600㎏이자 시가로 2,000만 원 상당이라고 한다. #

3월 11일, 빛고을전남대병원에 경증 환자로 입원했던 대구 확진자 가족 4명이 치료를 마치고 귀가했다. 광주시는 이들이 대구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구급차량을 이용해 이송할 계획이다. #

6월 20일, 한 광주 시민이 대구소방안전본부 동부소방서에 현금 152만 원을 기부했다. 대구시 페이스북

7월 2일, 광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진자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권영진 대구시장이 이용섭 광주시장에게 전화를 걸어 병상 200개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

7월 13일, 대구 출신 약사인 김희진 박사가 '달빛동맹'에 감명받아 광주YMCA에 식약처 인증 비말차단 마스크 5,180매와 손소독제 518개를 기부했다. #

8월 28일, 대구가 인력부족을 겪고있는 광주 '빛고을전남대병원'으로 간호사 10명을 파견했다. #

5. 의의

보수정당의 철밥통인 대구경북과 민주당계 정당의 철밥통인 광주전남을 상징하는 도시들답게 광주와 대구 사이에서는 오랫동안 지역감정이 계속 이어져 왔었다. 특히 각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인 박정희 김대중이 맞붙은 7대 대선 이후 선거전에서 지속적인 지역감정 자극과 불균등한 지역성장 등으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었다.[10]

또한 대구를 연고로 하는 삼성 라이온즈와 광주를 연고로 하는 해태 타이거즈가 맞붙은 1986년 한국시리즈는 대한민국 스포츠사에서 지역감정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대사건이었다.[11] 훗날 2000년대에 광주광역시 출신 선동열 감독이 삼성을 두 번(2005, 2006) 우승시켰고, 대구광역시 근교 의성군 출신 조범현 감독이 KIA를 한 번(2009) 우승시킨 것을 생각하면 묘한 일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지역 협력사업이 단순 이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생과도 연계된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지자체간 협력의 모범 사례 중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지역주의 타파와 지자체별 공동발전을 통해 상생하는 신 경제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대구 버스 518, 광주 버스 228, 광주 버스 419는 각각, 5.18 민주화운동 2.28 민주운동, 4.19 혁명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나온 노선이다. 그 중 대구 버스 518은 광주와는 관련없이 기존에 사용되던 노선명인데, 달빛동맹의 일환으로 5.18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부여했다. 대구와 광주의 우정어린 행보에 두 도시간 많은 시민들은 지지하고 환영하고 있다.

6. 여담(비슷한 사례)

7. 둘러보기



[1] 신라의 중심지는 경상도라 어느 정도 맞지만 백제의 중심지는 경기남부와 충청도~전북 서북부 지역이라 완벽하지 않다. [2] 반면 서울 대한민국 최대 도시이고, 부산은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큰 대도시이다. 인천 울산은 부산과 더불어 주요 항구 도시이며 중화학 공업이 발달했다. 대전 한국철도공사 등의 공기업 외에도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있으며, 주변에도 청주 등 공업 도시가 있다. [3] 기아자동차 연구소, 광주 공장 및 광주글로벌모터스가 있으며, 그 외에도 금호타이어 등 다른 자동차 산업 공장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4] 단순 인구로만 비교해도 대구와 그 위성도시들의 인구가 약 380만 명인 데 비해, 광주와 그 위성도시들의 인구는 약 210만 명으로 150만 명 가량 차이가 난다. [5] 단 이 법인 설립 규제가 효과적인지는 검증이 필요하다. [6] 상기 두 사건은 한일관계 및 항일항쟁과 관련이 있다. [7] 두 사람은 제17대 국회 제18대 국회에서 8년간 함께 의정 활동을 했던 인연이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상대 당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친분이 제법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취임 전 당선인 시절에 100분 토론에 동반 출연도 한 적이 있을 정도. 전임 시장들이었던 권영진 이용섭도 둘 다 제18대 국회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었어서, 민선 7~8기 대구시장, 광주시장 4명은 모두 18대 국회의원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8] 양 구단의 연고지를 이어주는 88올림픽고속도로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9] 김응용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에 부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1980~1990년대를 대표하는 불꽃튀는 라이벌리였지만, 김응용 감독이 2002년 삼성의 첫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겨다주고 2000~2010년대 삼성왕조를 만드는 초석을 다진 점에서 해태-KIA 프랜차이즈와 삼성 양 구단 관계자 및 팬들에게 성웅으로 받들기도 한다. 그리고 김응용의 후임 삼성 감독이 바로 광주 출신인 선동열이다. 한편 인식과는 다르게 과거부터 두 구단의 트레이드는 활발하게 이뤄졌다. [10] 그나마 군사정권 시절에는 각 지역민들의 정치적인 선택인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극단적으로 골이 깊지는 않았다. 이 때까지만 해도 여촌야도 특성이 아직 남아 있었으며 각각 영남과 호남을 대표하는 야당 거두인 김영삼 김대중이 완전히 갈라서지 않았으며 5.18 민주화운동 등 호남에 대한 탄압이 군사정권하에 덜 알려진 이유도 있었다. 정치적으로 영남과 호남이 완전히 갈라진 것은 5공화국이 무너진 이후로서 김영삼과 김대중이 갈라서고 아예 김영삼은 보수진영으로 합류하면서 영남, 특히 PK 지역이 보수화되면서 두 지역의 정치 지형은 지금처럼 물과 기름과 같은 상태가 되었다. [11] 광주 1차전에서 술에 취한 광주 해태팬이 호투하던 삼성 투수 진동한을 소주병으로 가격하자 이에 대구 삼성팬들이 복수심으로 해태 구단버스에 불을 지르는 대사건을 저질렀다. [12] 반면, 울산 출신 홍자는 전라도 공연에서 지역비하성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비난받고 사과문을 올렸다. 다행히 해프닝으로 넘어갔는지, 다음날 공연도 전라도였는데,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13] 광주 서구 을에서 총선 후보로 나섰다가 무려 39%라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고 낙선했었으며 지역구를 고향인 전남 순천곡성으로 옮기고 나선 이 지역구에서 초선도 아니고 무려 재선까지 했다. [14] 19대 총선에서 높은 득표율을 올린 이정현과 마찬가지로 대구시장 선거에서 40%를 기록하고 낙선했었으며, 2년 뒤 20대 총선에서는 수성구 갑에서 승리했다. [15] 사실 두 사람은 선거 당시 상대 후보를 잘 만나기도 했었다. 이정현이 처음 당선됐던 19대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맞붙은 후보 서갑원은 같은 당의 노관규 순천시장과 반목해서 노 시장을 엿먹인다고 자기 지역구의 예산을 스스로 깎는 트롤링을 해서 순천시민들의 인망을 다 잃었었으며 김부겸의 상대는 다름 아닌 과거 경기지사 시절 소방서 긴급전화에 대고 자기소개하면서 관등성명 요구했다가 전국적 망신을 산 김문수였다. 물론 이것이 두 사람의 빛을 바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정현의 경우 다음 선거인 20대 총선에서는 별로 문제가 없는 노관규 전 시장과 붙고도 이겼기 때문. [16] 여기에 이재명이 경북 안동 출신이라는 영향도 컸다. 실제 득표율로 보면 지난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가 대구에서 기록한 득표율과 거의 비슷한 수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