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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08:12:49

김포시/역사

1. 개요2. 고대3. 고려4. 조선5. 일제강점기~현대

1. 개요

김포시의 역사를 다룬 문서다.

2. 고대

마한의 소국중 하나인 속로불사국이었다가 백제에 복속되었다. 당시의 지명은 전해지지 않고, 고구려 장수왕 시기 고구려 영역이 되었는데 이 때는 검포현(黔浦縣)으로 불렸다고 한다. 신라 진흥왕 한강 유역을 차지하면서 신라의 영역이 됐고 남북국시대에는 9주 5소경 한주에 속했으며 이후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에 행정제도 개편으로 금포현(金浦縣)이란 이름이 되었고 장제군(長堤郡)의 영현이 되었다. 원래의 영역은 현재의 김포 시내와 고촌읍, 검단 지역 일대였다. 후삼국시대에는 태봉~고려의 영역이었다.

3. 고려

1182년 고려 명종(明宗) 2년에 감무를 두었으며, 1198년 고려 신종 원년에 어태(御胎)를 매장하고 현령을 두었다.

4. 조선

조선시대인 1632년 인조 10년 북성산(北城山)에 장릉(章陵)이 조영된 뒤 군으로 승격되고 읍치가 현재 북변동으로 이전되었다. 1895년 23부제 시행 당시 인천부에 편제되었다가, 이듬해 13도제 시행으로 다시 경기도 산하가 되었다.

구한말에는 한강변의 일부 월경지인 고란태면(髙蘭台面; 골안테면) 신평리(현 고양시 덕양구 신평동)가 고양군에 편입되었다.

5. 일제강점기~현대

파일:김포군기.svg
김포군 시절 사용된 깃발. 부천군 폐지 이후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1997년까지 사용되었다.

원래 독음은 '금포군'이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김포군'으로 변화했다. Daum 카페 배우리 땅이름 연구 다만, 금포를 김포로 읽게 된 것은 김알지의 사례처럼 본래 쇠 금(金)자를 김으로도 읽던 관행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링크[1]

일제강점기부터의 행정구역 변화 및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1] 강원도 김화군도 금성군과 통합되기 전에는 금화군으로 읽었다. 다만 경상북도 김산군은 김천군으로 통합되기 이전에도 금산군이 아니라 김산군으로 읽었다. [2] 오정면 편입 때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환원된 것에 가깝다. 당시 북구 대부분(십정동 제외)이 부평의 중심지였기 때문. [3] 김포1동(북변동 일원 및 감정동 일부, 걸포동 일원)과 김포2동(장기동 일원, 운양동 일원 및 감정동 일부), 김포3동(사우동, 풍무동)의 3개 행정동으로 분할되었다. [4] 같은 날에는 안성군도 안성시로 승격되었고 여수시, 여천시, 여천군이 통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