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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29 10:35:23

김개시

조선 선조, 광해군의 후궁
김개시 | 金介屎
<colbgcolor=#89236A><colcolor=gold> 출생 미상
장소 불명
사망 1623년( 인조 1년)
장소 불명
본관 미상
부모 아버지 김씨
어머니 강씨
부군 선조 광해군
자녀 없음

1. 개요2. 이름3. 생애4. 평가5. 여담6.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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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중기인 선조, 광해군 때의 상궁.

광해군에게 총애를 받았으며 이 총애를 등에 업은 채 비선 실세처럼 국정에 관여하고, 매관매직을 일삼는 등 권력을 휘두르다가 인조반정으로 인해 참수되었다. 연산군 때의 장녹수와 함께 조선 시대 대표적인 나쁜 궁녀 대명사로 불린다.

2. 이름

개시의 시(屎)가 ‘ 똥 시’ 자이기 때문에 실제 이름은 김개똥이었을 것으로 흔히들 생각하지만, 계축일기에서는 ‘가히’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또 연려실기술과 공사견문록 등에는 그녀의 이름이 각각 ‘개희(介姬)’, ‘가히(可屎)’라고도 표기되어 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그녀의 이름 ‘개시(介屎)’는 기존에 흔히 알려져 있는 개똥이가 아니라 ‘가히’의 음차인 것으로 보인다.[1]

3. 생애

천민의 딸이었지만 선조 광해군의 궁녀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다가 선조의 궁녀로 자리를 옮기게 되는데 이 때문에 광해군과 선조의 나쁜 관계를 잘 중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조가 광해군을 눈엣가시로 여기고 영창대군으로 세자로 바꾸려고 하는 상황에서 광해군을 김개시가 도왔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선조가 급사한 후 광해군이 왕이 되자 김개시는 광해군의 총애를 받게 된다. 덕택에 국정에 관여하며 권신 이이첨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권력을 휘둘렀다. 거의 후궁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녀의 지위는 상궁에 머물렀는데 이는 후궁이 되면 궁 밖 출입이 불가하기 때문에 일부러 상궁 자리에 머무르며 궁 밖 출입을 자유롭게 하며 정치적 행동을 하려는 계산이었다. 권력을 잡고 난 이후 김개시는 관직을 돈을 받고 파는 매관매직을 일삼는 등 큰 비리를 저질렀고 윤선도(尹善道), 이회(李洄) 등이 여러 번 상소하여 논핵하였으나 도리어 그들이 유배되었다. 광해군 치세 말기에는 광해군에게 모반의 징조가 있다는 상소가 여러 번 올라왔었는데 김개시가 "그럴리가 없다"고 광해군을 안심시켰다는 기록이 있으며 김개시가 반정 세력과 내통하였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에 대한 확실한 근거는 없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김개시는 반정군에 잡혀 결국 참수되었다.

4. 평가

김상궁은 이름이 개시(介屎)로 나이가 차서도 용모가 피지 않았는데, 흉악하고 약았으며 계교가 많았다.
춘궁의 옛 시녀로서 왕비를 통하여 나아가 잠자리를 모실 수 있었는데, 인하여 비방(祕方)으로 갑자기 사랑을 얻었으므로 후궁들도 더불어 무리가 되는 이가 없었으며, 드디어 왕비와 틈이 생겼다.
세자빈 박씨가 들어올 때 이이첨이 조국필(趙國弼)과 은밀히 왕에게 아뢰어 선발했다.
빈으로 들어오게 되자 박승종과 박자흥이 친정아비와 친정할아비로서 왕에게 총애를 받아 류희분(柳希奮)과 더불어 세력을 끼고 이이첨을 견제하였는데, 이이첨이 크게 한을 품고는 두터운 예로써 상궁의 아비와 관계를 맺어 상궁과 통하였다.
상궁이 인하여 이이첨 및 여러 권행가(權倖家)를 출입하였는데, 매우 추잡한 말들이 있었다.
그의 지기(志氣)와 언론(言論)은 이이첨과 대략 서로 비슷하였으니, 항상 의분에 북받쳐 역적을 토벌하는 것으로 자임한 것이 비슷한 첫째이다.
그리고 상궁이 되어서도 호를 올려달라고 요구하지 않은 채 편의대로 출입하면서 밖으로 겸손을 보인 것과, 이이첨이 항상 조정의 논의를 주도하면서도 전조의 장이나 영상의 자리에 거하지 아니하여 밖으로 염정(廉靜)을 보인 것이, 비슷한 둘째이다.
뜻을 굽혀 중전을 섬기면서도 내면의 실지에 있어서는 헐뜯은 것과, 이이첨이 저주하고 패역한 일들을 모두 스스로 했으면서 남에게 밀어넘겨 도리어 토벌했다는 것으로 공을 내세운 것이, 비슷한 셋째이다.
광해 5년 8월 11일 병신 11번째 기사

5. 여담

6. 대중매체에서

실록에서 추녀로 기록된 것과는 달리, 대중매체에서는 대체로 용모가 아름다운 간교한 요부 이미지로 많이 나오는 편이다.
파일:external/3.bp.blogspot.com/iq52555bd264f798282d472a81e091159d.jpg
파일:DzGt4Te.jpg
파일:FAQXFFq.jpg
파일:f131901090636866000(0).png

[1] 屎의 음훈은 대개 ‘똥 시’라고 알려져 있으나, ‘끙끙거릴 ’라는 음훈도 존재한다. 이미 ‘히’는 6세기에 편찬된 『옥편』에서부터 확인되는 발음으로(喜夷切), 현대에 들어 타 사료와의 대조 없이 무턱대고 '개시'라고 읽은 것이고, 차라리 ‘개히’라고 읽는 것이 정답에 더 가까우리라고 생각하는 게 나을 것이다. 90년대 능인출판사에서 발간된 만화 고전 계축일기에서도 인목왕후를 모시던 궁녀들이 김개시의 뒷담화를 하는 장면에서 '여우 같은 상궁 가히'라고 표기하고 있다. [2] 동궁전 나인이라면 세자의 여자이고 승은을 주었다면 최소한 특별 상궁으로 신분을 올려주는 것이 정석이다. 이 소설에서 선조는 아들의 여자를 빼앗고 여자한테 책임도 안 짐이라는 악행을 저질러 버린 것이다. [3] 2010년 KBS 드라마 < 추노>에서는 초복이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