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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방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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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방화 사건
Kyoto Animation arson attack
파일:쿄애니_전소.jpg

▲ 방화로 인해 전소된 제1스튜디오
발생일 2019년 7월 18일 오전 10시 35분
발생 위치
상세 위치
일본 교토부 교토시 후시미구 모모야마마치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유형 건물 화재
원인 방화
인명
피해
사망 36명[1]
부상 33명[2]
재산 피해 건물 전소[3]
피의자 아오바 신지 (青葉真司)[4]
1. 개요2. 사건 발생 과정 및 확산3. 피해
3.1. 사망자, 실종자3.2. 부상자3.3. 건물 및 자산
4. 피의자
4.1. 범행 과정4.2. 범행 동기4.3. 피의자 체포 이후
5. 반응
5.1. 업계인 반응5.2. 정치권 반응5.3. 그 외 유명인 반응5.4. 시민들의 반응5.5. 물의를 빚은 인물들
6. 여파7. 사건 이후8. 지원 모금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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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JTBC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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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뉴스
KBS 뉴스
아사히 신문
마이니치 신문
마이니치 신문
테레비 도쿄 (TXN 뉴스)
2019년 7월 18일 오전 10시 35분경에 방화로 인해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가 전소되고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

일본에서 처음으로 애니메이션 창작자가 살해 협박을 받다가 단체 살해당한 사건이자[5] 일본에서 방화로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사건이다.

2. 사건 발생 과정 및 확산

파일:lpt.c.yimg.jpamd20190720-00010001-kyt-000-view.png

日 '쿄애니' 스튜디오, 방화로 화재...최소 10명 사망·40명 부상 - 아시아경제

日 애니메이션 업체 스튜디오 방화로 33명 사망…36명 중경상 - 연합뉴스

2019년 7월 18일 오전 10시 35분경 교토에 위치한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에서 방화가 원인인 것으로 보이는 화재가 발생했다. 인근 주민에 따르면 폭발음이 들렸다고 하며 건물이 전소되고 중상자를 포함한 다수의 사상자가 나왔다.

오전 11시에 소방차 등 차량 약 30대가 출동하여 7월 19일 오전 6시 20분 경 20시간 만에 완전히 진화되었다.

18일 오후 6시 발표 기준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에서 일어난 방화 사건 중에서는 사상자 숫자가 최대급이라 후시미 경찰서에서는 특수조사반을 설치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

파일:1563456570.png

해당 건물의 구조 모형도. 1~3층까지 이어지는 나선계단(이미지의 파란색 원)이 존재해 화재의 확산이 빨랐으며 스프링클러가 없어 조기 진화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파일:1563456985.jpg

2016년 목소리의 형태 제작 당시 메이킹 필름 #에 나왔던 건물 내 모습. 2층인 듯하다. 화재가 확산된 원인인 목재 내장재와 나선형 계단이 보인다.

7월 20일, 피의자는 현관을 통해 건물 안으로 침입한 후 양동이로 10리터 가량의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고 수사 관계자는 밝혔다. 교토부 경찰의 현장 검증 결과 나선형 계단 서쪽에서[6] 불에 타 녹은 플라스틱 양동이와[7] 라이터, 그리고 착화제로 보이는 물건의 잔해가 발견되었다. 사건 당시 건물 안에 있었던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화재 당시 나선형 계단에서 순식간에 올라온 검은 연기 때문에 깜깜해져서 주변이 보이지 않았고 화재로 발생한 강한 열풍 때문에 창문으로도 도망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작화 작업 장소가 2, 3층에 있어서 평소에도 2층 이상에 사람들이 많았고 피해자들의 대부분은 옥상을 향해 계단을 올라갔지만 폭 1.2m의 옥상 문 앞 계단에서 숨졌다. 현장검증 결과 옥상 문은 잠겨 있지 않았지만 연기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열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

나고야 TV에서 화재가 발생한 제1스튜디오 건물 모형에 불을 붙이는 실험을 해 본 결과 적은 양의 휘발유로도 순식간에 불길이 건물 전체로 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영상

22일 교토 소방국이 시 의회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해당 건물이 소방법을 위반한 사항은 없다고 한다. 작년 시찰에서도 위반 사항은 없었고 방재 훈련도 주기적으로 행해지고 있었으며 2014년엔 소방청에서 표창도 받았다고 한다. 화재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 나선형 계단도 연기를 차단하기 위한 제연경계벽[8]은 설비가 법령에 근거해 설치되어 있었다. 현장에서 생존한 직원도 이번에 일어난 화재가 그동안 받아왔던 소방 훈련과는 차원이 달랐다고 증언했다.[9]

이에 따라 소방국은 이렇게 방화 대책이 철저하게 마련되어 있던 건물에서 어째서 큰 피해가 발생했는지 검증하고 향후 대처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NHK 보도

3. 피해

화재 당시 건물 내부 인원 74명 #
<rowcolor=#000000><colcolor=#000> 타임라인 사망 부상 생존
7월 18일 33명[10][11][12] 35명[13][14] 6명
7월 19일 1명[15] [a]
7월 27일 1명[17] [a]
10월 4일 1명[19] [a]

3.1. 사망자, 실종자


당초 NHK의 발표에 따르면 중태자 중 여러 명이 사망했고 실종자가 20명이며 구조가 되지 못한 사람이 있다고 경찰이 발표했다. 2층에서 사망자 10명을 추가로 발견했다고 한다. 당시 건물에 있던 사람 중 병원에 이송된 사람 36명, 사망 1명, 심정지 12명이며 나머지 20명 이상은 3층에서 실종 상태로 전부 사망으로 추정되었다. 16시 14분에 교토시 소방국이 심정지 상태로 이송된 12명 중 절반인 6명이 사망하였다고 발표했다. 사망자가 7명으로 변동되었다. # 16시 24분 보도에 따르면 사망자가 12명으로 늘어났으며 3층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심정지 상태로 쓰러져 있는 10명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 사건 당시 건물 안에는 쿄애니 직원 67명과 타사 직원 6명이 있었다고 한다. 20시 24분 보도에 따르면 사망자는 25명, 실종자가 5명이라고 한다. 사망자는 각각 1층에서 2명, 2층에서 11명, 2층과 3층 사이의 계단에서 1명, 3층에서 옥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에서 11명이 발견되었다. # 산케이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36명의 병원으로 이송된 부상자 중 10명이 중태이지만 현재 의식은 있는 상태라고 전해졌다. # 21시 24분 소방국의 성명으로 사망자는 33명으로 늘어났다. 소방국은 사망자는 남성 12명, 여성 20명, 성별불명 1인으로 총 33명, 병원으로 실려간 사람은 35명이며 건물 내 구조 작업은 완료되어 더 이상의 구조자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 사망자 33명은 헤이세이 시대 이후, 1938년(쇼와 13년) 츠야마 살인사건 다음으로 범죄사상 가장 많은 수라고 한다.[21]

경찰이 남성 1명의 사망을 추가로 확인하여 사망자 수가 34명으로 수정되었다. #

성별 불명이었던 사망자가 20일 경찰의 발표를 통해 여성으로 판명되었다.

사망자들을 1차 부검한 결과 1명은 사인 불명, 2명은 질식사, 4명은 일산화탄소 중독, 27명은 전신 화상으로 인한 소사로 밝혀졌지만 시신이 훼손되었기에 신원파악이 어려울 거라는 얘기도 있었다.

건물이 제1건물이라 쿄애니 간부진들이 실종자 명단에 들어갔다. 약 하루가 지나면서 어느 정도의 간부진은 생사가 확인되었으나 이케다 쇼코와 카와나미 에이사쿠 등이 이틀이 지난 20일 기준으로도 실종 상태였다.

실종자의 연령이 공개되었는데 20대가 가장 많은 15명, 30대가 12명, 40대가 6명, 그리고 60대가 1명[22]이다. #

7월 27일 20대로 추정되는 남성 1명이 병원에서 사망해 사망자 수가 35명으로 증가했다. # 10월에도 여성 1명이 화상치료를 받던 중 숨져 총 사망자 수는 36명이 되었다.

쿄애니 측에서는 사건의 수습이 완료될 때까지 사망자나 부상자에 대한 명단을 발표하지 않기로 하였으며 미디어 측에 대해서도 사상자의 가족, 친척, 지인 등의 관련자에게 취재를 요청하는 것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하였다. 사상자 명단이 공식적으로 안 나오니 언론에서 관련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취재경쟁을 하는 등 안 좋은 모습이 나오니[23] 쿄애니 측에서 암묵적인 항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사건의 수습이 일단락되고 경찰 측의 공식 발표가 나기 전까지 사망자나 부상자의 실명을 공식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었으나 25일 교토 부경에서 사망자 34인의 신원 및 사망 원인 확인이 완료되었다고 발표했다. 사망 원인은 소사 26명, 일산화탄소 중독 4명, 질식 2명, 전신 화상 1명, 미상 1명으로 소사에 의한 피해가 극심한 것으로 파악되었으며 사망자 대부분이 앞으로 쿄애니를 이어나갔을 터인 20~30대 젊은이들이라 안타까움을 더했다. 사망자 명단 공표는 협의 중이라고 전해졌다. #

2019년 8월 2일 기준으로 뉴스 보도를 통해 11명의 사망자 신원이 처음 확인되었다.

2019년 8월 27일 나머지 사망자의 명단이 추가로 공개되어 사망자 35명[24]의 신원이 모두 확인되었다. 이하 가나다 순.

3.2. 부상자

3.3. 건물 및 자산

파일:kyotoanimation_fire.jpg
전소된 건물 내부, 문제의 나선형 계단이 고열로 인해 변형된 모습이 보인다. #
그동안 만들어 온 몇몇 애니들의 컨셉 디자인이나 원화 자료들이 완전히 소실되었다고 한다. 사건 다음 날인 19일 사장의 인터뷰를 통해 공개되었는데 컴퓨터 하드 디스크 안에 있었던 자료들도 불타 소실된 바람에 누군가가 따로 보관한 게 아닌 이상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스튜디오 재건 및 재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었다. 전체 150명 가량의 기업에서 40%가 넘는 68명의 사상자가 나왔으니 회사로서는 중대한 피해라고 봐야 한다. 사망한 36명만으로도 전체 사원의 20%가 넘고 생존자 중에서도 부상으로 인해 업무 복귀가 어려운 직원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28] 설령 회복된다고 해도 PTSD 같은 트라우마로 인해 일선에 영영 복귀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특히 피해를 입은 직원들 중에는 오랜 기간 교토 애니메이션에서 실무현장을 지탱해온 핵심 애니메이터들도 있으며 1스튜디오에 있었던 과거 작화나 서류 및 전자 자료도 모조리 소실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교토 애니메이션의 재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극단적인 비관론마저 나왔다. 간부급인 타케모토 야스히로 감독이나 다수의 쿄애니 작품의 원화와 작화감독을 담당한 이케다 쇼코, 니시야 후토시, 키가미 요시지 등은 쿄애니의 정체성을 구축한 대체불가 인재들이라서 이 이상 인재들이 줄어들면 향후 원활한 작품 제작에 큰 제약이 걸릴 것이다. 이 때문에 재기에 성공하더라도 같은 수준의 인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뛰어난 인재들을 어떻게 대거 영입하더라도 그 인재들이 기존의 쿄애니 스타일과는 다를 것이다.

해당 사건으로 국내외 하청업체들까지 불똥이 튈 여지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쿄애니의 국내외 하청은 한국의 중소규모 하청사 한 곳과 일본의 회사 한 곳밖에 없다.[29] 일반적인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달리 쿄애니는 가능하면 하청을 외주로 돌리지 않고 직접 했기 때문이다.

2019년 7월 26일 나온 발표에 따르면 제1스튜디오 데이터 서버가 화재로 소실되는 건 피해 현재 전문가의 조언을 얻어 복구가 가능한지 살펴보는 중이라고 전해졌다. 일부 언론에서 서버에 저장된 원화 데이터까지 무사하다는 기사를 냈는데 교토 애니메이션 담당 변호사 오케다 다이스케가 코멘트를 통해 데이터가 무사한지 현 시점에선 100% 확신할 수 없다며 정정을 요구했다.

7월 29일, 소실을 피한 서버에 저장된 원화 데이터를 전문가의 협력을 받아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토쿠시마에 위치한 한 서점에서 교토 애니메이션의 원화를 전시하는 행사가 있어 사건 이전에 미리 반출된 원화 70점은 소실을 피했다고 한다. #

2020년 1월 7일 전소된 건물의 해체 작업이 시작되어 4월 28일에 완전히 해체되었다. #

4. 피의자

4.1. 범행 과정

파일:青葉真司.png
파일:A0E3F101-0277-4A20-90C1-E62232625AD8.png
<colbgcolor=#eee,#444> 이름 아오바 신지([ruby(青葉真司, ruby=あおば しんじ)])
출생 1978년 5월 16일
출신 일본 이바라키현
신체 키 180cm, 90kg

아오바 신지가 피의자로 확인되었다.

재판에서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가 추천한 게임을 계기로 교토 애니메이션의 작품을 알게 되었다고 밝혔다.

사건 현장으로부터 100m 떨어진 곳에서 화상으로 인해 엎어져 있던 그를 경찰이 구조하는 과정에서 피의자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 화재 현장에서 인화물질뿐만 아니라 피의자의 것으로 의심되는 망치 한 개와 4~5개의 칼들이 추가로 발견되어 단순 방화범 이상으로 테러리스트일 가능성이 높았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건물에 들어가 "죽어라(死ね)"라고 외치면서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고 한다.[30] #

사건이 일어난 건물은 원래 보안카드가 없으면 진입이 불가능했지만 사건 당일 NHK의 TV프로 촬영이 있었던 관계로 누구나 드나들 수 있었고 회사의 핵심 인물들도 여기에 있었다. 그나마 사건 발생 후 피의자의 촬영 및 피의자를 잡은 자가 그 TV프로 촬영차 방문했던 NHK의 디렉터였기 때문임이 밝혀졌다. # NHK의 7월 24일 브리핑에 따르면 NHK는 교토 애니메이션과 장애인 스포츠를 주제로 한 "애니×파라"(アニ×パラ)라는 작품[31]을 제작 중이었으며 화재 당일인 18일 11시에 관련 취재가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

옥상에서 담배 꽁초를 버리는 사람이 있어 옥상 문이 7월 초부터 잠긴 상태였다는 말이 있었는데 소방관이 옥상에 도착했을 때 옥상 문은 닫혀있었지만 잠겨 있지는 않았고 바깥에서 그냥 열 수 있었다고 한다. #[32] 피의자가 방화 후 옥상문을 잠그고 도주하여 피해가 커졌다는 루머도 돌았지만 옥상문 잠금 여부와 별개로 방화범이 옥상까지 도주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었을 리가 없으므로 현실성이 없다.

주소지가 공개되었는데 범행 현장에서 4시간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 경찰 당국이 19일 오후 5시경에 진행된 브리핑에서 피의자의 신원을 공식 발표하였다. # 7월 26일에 피의자의 거주지였던 사이타마현 사이타마시 미누마구의 아파트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되었는데 ' BOSE acoustic wave cannon system'라는 초대형 엠프 스피커가 발견되었다. 이웃 주민들과의 소음 관련 트러블의 원인이 이 물건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33] 참고로 저 스피커는 서브우퍼로 생긴 건 cannon이 들어간 만큼 무슨 바주카포 내지는 하수 배관 같이 생긴 물건이다.

파일:e4b250f9f1f842e79fc9ed73a2d3f683_13_11.jpg


피의자가 범행 3일 전부터 교토로 와 현장답사를 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철저한 계획범죄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르면 인근 주민들 이외에는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던 스튜디오 근방의 골목길에서 빨간 티셔츠를 입은 낮선 남자가 며칠 전부터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22일 추가로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제2 스튜디오 주변에서도 피의자와 비슷한 인상착의의 남성을 목격했다는 주민의 증언이 있다고 하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교토 애니메이션 전체를 테러 목표로 정했을 가능성도 있다. 범행 하루 전인 7월 17일에는 휘발유가 담긴 통을 실은 카트를 끌며 유유히 걷는 모습이 방범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으며 범행 당일인 18일 아침엔 스튜디오에서 500m 거리에 있는 공원 벤치에서 노숙을 했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이 나왔다. 경찰은 본사 등의 다른 쿄애니 관련 시설도 아오바가 사전 답사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하였으며 체포 당시 가방에서 칼과 망치 등의 흉기가 나오면서 만약에 본인의 몸에 불이 붙지 않았다면, 불타는 건물에서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흉기로 해쳤을 가능성도 있었다. 실제로 이러한 추악한 범행이 이뤄졌을 경우 일본판 진주 아파트 방화·흉기난동 살인 사건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34] 게다가 직원 여러 명에게 직접 가솔린을 끼얹기까지 했음이 드러나면서 살의를 품고 고의로 테러를 저지른 것이 명백해졌다. #

파일:Kyoani_Yougisha.jpg
파일:1563455292.png

피의자의 체포 당시에 대한 증언과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다리에 불이 붙어있었다고 한다.[35] # 방화 중 피의자 몸에 불이 옮겨 붙었고 가까운 인근 집 초인종을 누르며 살려 달라고 말했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볼 때 방화를 계획해 실행한 것과는 별개로 피의자 자신도 화재에 의해 피해를 입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36]

4.2. 범행 동기

피의자는 경찰에게 붙잡힌 직후 "표절이나 하고 말이야!"라고 외쳤고 이후 쿄애니가 자신의 소설을 훔쳤기에 불을 질렀다고 주장했다. 7월 30일 교토 애니메이션 대변인은 피의자와 이름 및 주소지가 같은 인물이 교토 애니메이션에서 주관하는 소설 공모전에 원고를 제출했지만 낙선한 사실을 확인했으나 해당 소설과 교토 애니메이션이 제작한 작품들 간에 유사성은 없었다고 밝혔다. # 이전에 핫타 히데아키 사장이 인터뷰에서 피의자가 소설을 응모해 온 적이 없었다고 발언한 적이 있었으나 대변인에 따르면 해당 소설이 1차심사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심사위원을 제외한 사장 이하 쿄애니 임직원들에게는 해당 소설의 응모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 다만 해당 소설은 저작권법상 저작자인 아오바 신지 본인의 동의가 없으면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 # 사실 저작권법 문제가 아니더라도 테러나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들은 대중의 관심과 이목을 끌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칫 범인의 관심병을 충족시켜 주고 테러의 목적을 달성시켜 주는 행위가 될 수 있어 조심스럽기도 하고. 일본에는 당장 사가와 잇세이 같은 범죄자들이 책을 써서 출판해 대중의 관심을 끌고 일부 추종자들까지 만들어낸 사례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일본 언론에서 피의자는 쿄애니에서 일했던 적이 없으며 업계에서 일한 경력도 없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피의자의 이전 직업을 봐도 비상근직원, 우체국 직원 등이라 애니메이션 업계와는 전혀 무관했다.

한편으로 핫타 히데아키 교토 애니메이션 사장은 NHK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건 전에도) 회사에 대한 항의가 일상적이지는 않았지만 적지 않았으며, 살인 협박 메일도 받아 왔다."고 토로했는데 이 중에 아오바 신지의 것도 있었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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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아오바 신지의 어릴 적 사진 보도. 자세히 보면 어렸을 때의 노트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자기소개가 나오는데 생년월일과 취미(비디오 게임), 장래희망( 부자)에 대해 적혀 있다. 생년이 53년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1926년부터 시작된 연호인 쇼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즉, 쇼와 53년이니 1978년생이라는 뜻.

일부 일본 언론에서는 피의자의 가정사정이 막장이었던 게 정신이상자가 된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신지의 친아버지는 원래 다른 가정을 꾸리고 있다가 자식이 다니던 유치원 교사와 불륜 후 재혼했고[37] 이 사이에서 태어난 게 아오바 신지다. 직후 전처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당시 생활고가 매우 심했던지 초등학교 시절 친구의 인터뷰에 따르면 아오바의 집은 쓰레기가 가득 차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으며 언제나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 슈퍼나 편의점에서 과자 등을 도둑질하는 버릇이 있었다고 하며 생활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중학교 때도 거의 학교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어머니가 집을 나가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고 아버지는 신지가 21살 때 택시기사로 일하던 중 사망 사고를 일으켜 손해배상금을 지불한 뒤 자살했다. 신지의 여동생은 다른 형제들이 독립한 뒤에도 아버지가 자살한 그 집에서 계속 살다가 훗날 자살했다고 한다. #

이후 피의자는 점점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2012년까지 살았던 이바라키의 집합 주택에선 2012년 봄부터 집세를 체납했다고 하며 밤중에 벽을 두드리고 괴성을 지르는 등 지속적으로 소음을 일으켜 관리인이 여러 차례 찾아갔음에도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같은 해 6월에 편의점에서 직원을 협박해 2만 1천엔을 훔치고 달아나다가 자수해 징역 3년 6개월을 복역한 뒤 출소되었다. # 강도죄로 체포된 후 관리인이 그의 방 안을 살펴봤을 때 벽, PC와 창문을 해머로 깨부순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 이사를 간 사이타마의 원룸에서도 이웃 주민들과 항상 갈등을 빚어 오고 있었으며 사건 발생 나흘 전에도 난데없이 이웃집의 문을 끈질기게 두드리고 참다 못해 항의하러 온 이웃의 멱살을 잡으면서 "죽여버리겠다", "나는 잃을 것이 없다" 등의 폭언을 내뱉어 파출소에 신고되었다고 한다. 정신병원 입원 경력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직업 없이 히키코모리로 살아왔다고 주민들은 증언했다. 다만 졸업한 뒤부터 계속 무직으로 살아 온 건 아니어서 비상근직원으로 취직한 적이 있고 인재 파견회사에 등록된 적도 있으며 우체국에 취직하기도 했었지만, 출소한 뒤에는 직업을 가졌다는 얘기가 없다. 출소 시점을 계산해보면 거의 7~8년을 내리 무직이었다는 셈이니 주민들이 직업이 없었다고 알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이타마현에 있는 오미야역에서 대량 살인까지 계획한 것도 사건 이후 드러났다. #

도쿄대 범죄 심리학 교수는 이런 피의자의 정신상태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왜 사회가 자기를 평가해주지 않는가"라는 소외감이 "사회가 나쁘다", "세상이 나쁘다"라는 증오심으로 표출됐다고 분석했다.

공판에서는 쿄애니의 여성 감독[38]과 자신이 연애를 하고 있었다며 그녀가 자신을 레이프마라고 부르거나 자신이 보낸 각본을 표절한 것이 살해 동기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를 부정하고 있고 법원에서도 인정하지 않았으니 그의 망상일 것이다. #

4.3. 피의자 체포 이후



당초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피의자의 생명에 이상은 없다고 하였으나 이후 다시 발표된 바에 따르면 얼굴, 가슴, 손, 발 등 광범위하게 화상을 입은 상태로 교토 시내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빠르게 수사를 진행하려고 했지만 치료를 위한 마취 상태이기 때문에 당일 내로 피의자를 조사하는 것은 어렵다고 하였고 # 중태라고도 전해졌다. # 20일 보도에 따르면 20일 10시 30분경 피의자는 닥터헬기편으로 교토에서 오사카 킨키대학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경찰은 "설비가 갖춰진 병원에서 안전하게 치료하게 위함"이라고 밝혔는데 여전히 중태에 빠진 상태였기 때문에 체포 이후 추가적인 심문은 하지 못했다고 한다. 7월 26일에 피의자의 의식이 되돌아왔으나 여전히 심각한 상태기 때문에 체포 영장 집행 및 심문을 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라고 전해졌다. #


피의자는 8월 9일 의식을 회복했으며 간단한 의사표시와 말이 가능할 정도의 상태가 되었다고 하지만 심한 화상을 입어 전신마취를 했으며 집중 치료를 받는 중이었기 때문에 영장 집행 및 심문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하였다. 킨키대학 병원에 따르면 피의자는 3도 화상을 입어 피하 조직까지 손상이 미쳤으며 전신 90%에 화상을 입어 피부 이식 등의 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하였다. # 예측 사망률이 97.45% 이상에 달했지만 킨키대학 병원 화상전문의로 피의자의 주치의를 맡게 된 우에다 다카히로 교수는 "그를 죽음으로 도망치게 만들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4개월 동안 필사적으로 치료해 살려냈다고 한다. # MBC 인용보도 #2

일본의 사형 제도 나가야마 노리오 사건 당시 만들어진 나가야마 기준에 따라 4명 이상 고의적으로 살인한 성인은 극단적인 심신미약이나 심신상실 상태 혹은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는 한, 무조건 얄짤없이 사형 선고를 내리기 때문에 피의자가 회복되어 법의 심판을 받는다면 사실상 사형 확정이다. 더구나 일본은 건물에 목재를 많이 쓰던 문화가 있어 방화범에 대한 처벌이 기본적으로 화형에서 시작할 만큼 가혹했던 전통이 현대까지 이어져 방화범죄로 인한 사망자가 나오면 일반살인보다도 더 큰 중형을 내리는 관례[39]가 있고 게다가 이 사건은 범인 본인도 쿄애니 직원들을 모두 죽이기 위해 처음부터 사형당할 각오로 저질렀다고 인정한 100% 계획범행이어서 조현병 등 중증 정신질환이 인정되지 않으면 사형을 면할 수 없다.

2019년 7월 21일에 체포 영장이 발부되었다. #

제작사에 관심을 가지고 일방적인 혐오를 가진 것으로 보고 조사했다. 부경은 아오바 신지 용의자의 아파트에서 물품을 압수했는데 물품 중에는 쿄애니 관련 서적과 DVD가 있었다. # ##

2019년 7월 28일, 학창 시절 동급생이 아오바 신지에 대해 증언했다. 루리웹 번역

11월에 교토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걷지 못하지만 대화 가능한 수준으로 회복했다고 한다. # 보통 중증 화상 치료에는 기부받은 시신의 피부(스킨뱅크)를 이용하지만 수십 명을 사상시킨 피의자에게 피부를 기부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 피부에서 배양한 피부나 인공 피부를 이용해 치료를 하였다. 기존에 전신 70% 화상 환자에게 자가배양한 피부를 이식한 사례는 있었으나 피의자같은 전신 90% 화상 환자에게 자가배양한 피부를 이식하는 것은 처음 있는 사례라 학계에도 보고될 예정이라고 전해졌다. 관련 기사

2019년 11월 8일 열린 최초의 조사에서 신지는 "사이타마의 집을 나설 때부터 살의가 있었다", "가장 많은 사람이 일하는 제1 스튜디오를 노린 것이다" 등이라고 진술했다. 한편, 병원 의료팀에 대해서는 "남들이 (내게) 이렇게 잘해준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며 감사하고 "사람의 길을 벗어나는 일을 했다"는 등 처음으로 반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말을 했다고 한다. 킨키 대학 병원에서 간호했던 여성 간호사 한 명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가 있을 때는 기분이 좋은 태도를 취하지만 없을 때는 기분이 언짢고 이기적으로 행동했으며, 병원을 옮긴 후에는 기분의 기복이 심하고, '어차피 사형이니까' 얘기할 필요가 없다 등으로 부루퉁해져 재활치료에도 소극적이라는 관계자의 증언을 보아 사람이 되긴 먼 것 같다. 출처1, 출처2, 출처3

2020년 5월 27일에 치료를 마치고 경찰에 체포, 구속됐다. # 수용시설의 노후화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등으로 체포가 늦어졌다. 아오바가 구속되면 오사카 구치소에 수용된다고 한다. 아오바의 몸 상태가 진술은 할 수 있을 정도는 되나 몸을 가눌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들것에 실려서 연행되었다. (사진)

구속 후 조사에서 모든 혐의를 순순히 인정하였고 죄값을 치르기 위해 자신에게 가해질 사형도 순순히 받아들이겠다고 하였지만 첫 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쿄애니 측에서 자신의 소설을 표절하여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하였다. # 경찰이 아오바의 치료 과정에서 사건에 관한 정보가 나오면 수사에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해 사건 관련 정보를 전하지 않았으므로 아오바는 사망자가 36명이라는 사실은 정식 체포 이후에야 알았는데, 피의자 본인은 사망자가 2명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다만 쿄애니 직원 모두를 살해할 생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 자체는 인정했고 사형도 이미 각오하고 있다고 했다. # 한국 기사 가방에서 발견된 각종 흉기에 대해 만약 문이 잠겨 있으면 부숴서 열기 위해 가솔린을 구매할 때 망치도 같이 샀다고 진술했다. #

피의자는 쿄애니에서 자신의 소설을 표절했다는 작품이 츠루네 -카제마이고교 궁도부- 애니메이션 5화였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쿄애니 측에서는 피의자의 소설이 해당 작품과 학원물이라는 공통점은 있으나 애니메이션의 주요 소재인 궁도 관련 내용이 없다며 표절 혐의를 부인하였지만 피의자는 특정 장면이 표절이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

2020년 12월 10일, 일본 검찰이 피의자를 공식적으로 기소하였다. (유료기사)

이후 피의자의 아버지와 여동생이 자살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둘 다 방화 사건 이전에 있었던 일이며 신지의 범행과는 관련이 없다.

2023년 4월 21일 교토지방법원은 제1회 공판전정리수속 절차 기일을 5월 8일로 지정했다. #

2023년 5월 8일 교토지방법원에서 공판전정리수속절차를 실시했다. 비공개로 진행되었으며 1시간 반 만에 종료되었다. #

2023년 5월 12일 교토지방법원은 공판은 32회로 진행할 예정이며 첫 공판일을 9월 5일 이후 11월 8일까지 2~3회에 걸쳐 공판을 진행하고 11월 27일에 재개해 12월 13일에 결심공판을, 2024년 1월 25일 판결하기로 결정하였다. #

2023년 9월 5일 첫 공판이 열렸다. # 교토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원 재판 첫 공판에서 아오바 피고측은 기소 내용을 인정했지만 사건 당시는 정신 장애에 의한 심신 상실 상태였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변호 측은 모두 진술에서 아오바 피고가 31세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 라이트 노벨 편집자로부터 한눈에 보여 애니메이션 감독으로부터 조언을 받게 됐다고 밝혔지만 이 「애니메이션 감독」과의 대화에서 「레이프마」(강간마) 등으로 야유를 받으면서 자신이 과거에 일으킨 여성 폭행 사건을 알고 있다고 의심암귀가 되어 심하게 침체되었다고 한다. 자포자기가 된 아오바 피고는 34세 때 편의점 강도 사건을 일으켜 복역했다고 하는데 변호인 측은 이때 교도소 생활에서 어둠의 인물로부터 대출책이나 TV광고 등을 통해 다양한 메시지를 받게 됐다고 밝혔다. 검찰 측이 범행 동기로서 지적한 「쿄애니 대상」에 응모한 자작 소설의 낙선에 대해서도 변호 측은 「어둠의 인물이 짰다」고 아오바 피고가 파악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다가 「어둠의 인물과 쿄애니가 일체가 되어 괴롭히고 있다」, 「어둠의 인물과 쿄애니에게서는 벗어날 수 없다」라고 믿게 되어 양자를 「소멸시키고 싶다」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호소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며 일본 사법체계의 특성상 2심 확정판결만 해도 2~3년, 최고재판소까지 가면 5년 이상, 형 집행까지는 그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죄질과 범행 동기 그리고 참작을 해 줄 만한 사유가 전혀 없다는 것 등 모든 면으로 봤을 때 사실상 사형은 확정이고 본인도 그걸 인지는 한 듯하지만 그 정해진 판결 내용을 선고하는 데도 보통 사건 발생으로부터 몇 년이 걸리고 사형도 바로 집행하는 게 아니다. 이케다 초등학교 무차별 살상사건의 범인인 타쿠마 마모루는 형이 확정된 지 1년도 안 되어 집행되었지만 이는 본인이 사형 선고를 받고 싶어했고, 빨리 집행해달라고 난동을 부리는 등 매우 예외적인 경우이며 보통 집행까지는 몇 년에서 몇십년 정도가 소요된다. 이케부쿠로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의 범인 조타 히로시는 수십년째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으며 2022년에 사형이 집행된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사건의 범인 가토 도모히로만 해도 사형이 집행되기까지 14년이 걸렸다. 게다가 후술하겠지만 처음에는 사형을 받아들일 것처럼 보이더니 심신 상실을 운운하며 무죄를 주장한 만큼 최고재판소까지 재판을 끌고 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신지의 사형이 집행되는 날은 최소 2030년대쯤으로 예상된다.

2023년 12월 7일 검찰은 피의자에게 사형을 구형하였다. # 이에 대해 변호인 측은 피의자의 정신장애를 이유로 형사 책임 능력이 없거나 있어도 부분적이며 현재 일본의 사형 방식인 교수형은 위헌성이 있는 잔학한 형벌이라는 이유로 사형 회피를 요구하였다. #

2024년 1월 25일 교토지방법원은 피의자의 형사책임능력을 인정하여 사형을 선고하였다. 판결 이유에 대해서는 사건 당시 피의자의 정신상태가 심신상실이나 심신미약 상태가 아니었음을 지적하며, 망상성 장애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범행에 대해서는 망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피의자의 형사책임능력이 있다고 판결하였다. 오사카 구치소에서 사형을 대기하게되었으나 다음날인 2024년 1월 26일 피의자의 변호인에 따르면 피고인이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5. 반응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방화로 전소해버린 경우는 이례적인 사건인 데다[40] 일본에서 방화 사건으로 인한 사건 중 역대 최다 희생자를 낸 사건이라 사건의 충격과 여파가 굉장히 컸다. 일본 주요 매스컴에서 톱라인 뉴스로 보도되었으며 NHK에서는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특보를 편성하였다. BBC, CNN 외신에서도 주요 사건으로 다루었다. BBC, CNN, FOX 한국에서도 지상파 3사, 종편 등을 비롯한 다수의 주요 언론매체에서 이 사건을 주요 사건으로 보도하였다. ( KBS, MBC, SBS, JTBC, MBN, TV조선, 채널A, YTN, 연합뉴스TV, 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문화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연합뉴스,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전후 현대 일본 성립 이래 수많은 피해를 낸 초대형 테러 참사[41]라는 점에서 애니메이션 팬과 일반인을 막론하고 애도하는 반응이 쏟아졌다. 전세계에서 이를 애도하기 위한 해시태그 '#PrayForKyoani'가 급부상했다. 다만 한국에서는 수십 명이 죽은 대참사에 대해 애도하기는 하지만 애니메이션 팬/오타쿠를 제외하면 그다지 큰 관심은 없었다. 물론 일반인 같은 경우 외국의 한 기업이 큰 피해를 입은 것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별달리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애니 관련 기업이나 협회 같은 업계에서조차 아무런 공식 입장이 없는 건 너무 한 거 아니냐는 말들도 나왔다. 다만 몇몇 대중문화 계열 웹툰 작가들이 개인적인 추모의 글을 남기기는 했다. 한국에서는 애니메이션이나 애니메이션 문화가 일본에 비해서 영화나 드라마, 아이돌 산업에 비해서 밀리는 상황이라 사회적인 주목은 받지 못했다.

한편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를 비롯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이 사건을 자신들이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5.1. 업계인 반응

많은 관련 업계인들이 트위터나 블로그 등을 통해 사고 피해자들의 무사를 기원하였다.

5.2. 정치권 반응

5.3. 그 외 유명인 반응

5.4. 시민들의 반응

일본의 쿄애니 팬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이를 애도하고 재건을 위한 수익을 올리는 걸 도와주자는 취지로 극장에서 상영되었던 쿄애니 작품인 Free!의 극장판을 여러 차례 관람하거나 쿄애니작 DVD 및 블루레이를 구매 및 넷플릭스 d아니메스토어 같은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쿄애니 시리즈를 구매하여 수익을 올리는 걸 도와주기 시작했다. 한편 미국에서 애니메이션 배급을 맡고 있는 센타이 필름웍스 지원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모금)을 시작했다. ( 모금 링크) 교토 만화박물관에서도 모금 활동을 진행하였다. #

FREE의 성지로 알려진 돗토리현 이와미초에서도 돗토리현과 같이 모금 활동을 벌였다. # 케이온!의 학교 모델인 토요사토 초등학교에는 헌화대가 설치되었다. # 케이온 무대인 시가현 토요사토정에서도 애도의 뜻을 밝혔다. #

일본 전국의 애니메이트 점포들은 피해 지원을 받기 위해 모금을 시작하였다. # 케이한 전기철도는 2019년 7월 20일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던 '울려라! 유포니엄'과의 콜라보레이션 기획은 랩핑 열차 운행 외에는 연기하다가 11월 1일에 다시 운행하며 승차권 등 발생하는 수익은 피해자들에게 기부했다. # 일본 애니메이션 협회는 피의자에 대한 취재 중에 언론사한테 신중한 보도가 이뤄져야 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

교토 애니메이션에서 이 사고 직전에 개봉한 작품은 극장판 프리! -로드 투 더 월드- 꿈이었다. 이 사건이 터지자 추모 차원에서 개봉 3주차로 영화관에서 내려가던 극장판 프리! -로드 투 더 월드- 꿈에 대한 N차 관람 운동이 벌어지면서 도쿄, 오사카, 교토, 나고야 등 주요 대도시들의 영화관에서는 프리 영화 회차가 죄다 매진되었다.

아사히신문은 어려운 한일관계 속에서도 추모식을 찾아간 한국인들을 취재하였다. #

미국인들 중에는 이 사건을 보고 9.11 테러와 관련된 PTSD를 호소하는 이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5.5. 물의를 빚은 인물들

6. 여파

7. 사건 이후

8. 지원 모금

2019년 8월 2일 2억 4903만 484엔 (약 28억 520만 3887원) #
2019년 8월 13일 19억 6800만 엔 (약 224억 627만 원) #
2019년 12월 27일 33억 4138만 3481엔 (약 354억 7백만 원) #

모금은 2019년 12월 20일부로 종료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약 33억 4138만 3481엔, 한화로 약 366억 3225만 5378원의 기부금이 모였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숫자가 숫자라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33-4 드립이 난무했다. #

9. 관련 문서


[1] 남성 14명, 여성 22명 [2] 15명 중상(한국인 여성 직원 1명 포함), 18명 경상. [3] 사장 핫타 히데아키에 따르면 제1스튜디오에 보관 중이던 과거 자료들도 모두 소실되었다고 했으나 서버에 저장되어있던 디지털 자료들은 회수에 성공했다. 그리고 2020년 4월 28일 철거가 완료되었다. [4] 범행 직후 실명, 나이, 거주지, 성별이 공개되었다. [5] 이 사건 이전에도 안노 히데아키, 타니구치 모리야스 등 많은 크리에이터가 살해 협박을 받았지만 실제로 살해 사건이 벌어진 적이 없어 경각심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진짜로 살인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6] 참고로 정문 방향이 남쪽이고 직원 출입구 방향이 서북쪽이다. [7] 피의자는 사건 발생 30분 전 쿄애니 제1스튜디오 기준 서쪽 500미터 떨어진 주유소에서 발전기에 사용한다는 명목으로 휘발유 40리터를 구입했다는 사실이 조사결과 드러났다. [8] 일본어로는 '타레가베'(垂壁)로 부른다. 연기는 위쪽으로 확산하므로 천장쪽에 연기가 지나가는 걸 막기 위해 설치한 벽을 뜻하며 위쪽 사진에서 나선형 계단 쪽의 천장을 둘러싸고 있는 투명한 벽을 확인할 수 있다. [9] 상술한 내용인 스프링클러 미설치, 목조 구조물, 나선 계단으로 인한 것이 매우 유력하다. 이 세 가지 원인들은 모두 대규모 개축 공사로만 해결 가능하고 화재에 매우 취약한 시설물들이다. 소방 훈련만으로는 화재가 났을 경우 대피는 가능해도 확산 시간이 늦춰지지 않는다. [10] 사건 당일기준 | 1층 2명, 2층 11명, 3층 20명 | 남성 12명, 여성 21명 [11] 3층 사망자 중 19명은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지만 문을 열지 못하고 서로 겹쳐서 쓰러진 상태로 발견, 1명은 2층에서 3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에서 발견. [12] 1명은 발견 당시 성별을 판독할 수 없었으나 2일 뒤 여성으로 성별이 밝혀졌다. [13] 현장에서 구급차로 병원에 간 인원의 숫자 [14] 입원 16명 [15] 누적 사망자 34명 | 30대 남성 1명, 병원에서 사망 # [a] 부상자는 치료가 끝나서 줄어드는 경우가 다수고 이 때문에 정확한 카운팅이 안 되므로 사망으로 인한 부상자의 변동은 따로 기록하지 않는다. 무사한 인원의 변동도 같은 이유로 생략. [17] 누적 사망자 35명 | 20대 남성 1명, 17시 53분에 병원에서 사망 # [a] [19] 누적 사망자 36명 | 20대 여성 1명, 치료 중 감염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 [a] [21] 2001년에 일어난 가부키초 빌딩 화재사건이 사망자 수는 44명으로 더 많지만 이쪽은 방화 가능성이 높을 뿐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확실하게 범죄로 판명된 사건 중에는 이쪽이 가장 많은 수이다. [22] 키가미 요시지로 추정되었다. [23] 전 세계 누리꾼들이 SNS 등을 통해 이 부분을 엄청 비판하였는데 전소된 쿄애니 제1스튜디오를 슬픔 속에 직접 보러 온 사상자 가족들에게 무작정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밀면서 인터뷰를 따내려는 상식 이하의 행동을 했다. [24] 10월 4일에 1명이 추가 사망하면서 총 사망자 수가 36명으로 늘었다. [25] 만화 시로바코의 주인공 미야모리 아오이와 같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26] 외전인 리즈와 파랑새 제외 [27] 부친도 생존은 거의 포기했는지 살아있기를 바란다는 식의 말은 하지 않고 "지금 바라는 건 사건 전으로 시간이 돌아갔으면 좋겠다. 단지 그것 뿐이다."라고 말했으며 "손자가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라고도 말했다. [28] 핫타 히데아키 쿄애니 사장에 따르면 피해를 입은 직원들 중 한 명이 다리를 절단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29] 일본 회사는 이마저도 자회사에 가깝다. [30] 휘발유는 사건 당일 스튜디오에서 500m 거리에 있는 주유소에서 "발전기에 사용한다"며 40리터를 통 2개에 담아간 것으로 드러났다. [31] 2020 도쿄 패럴림픽에 관련된 작품이다. [32] 휘발유 같은 인화물질로 인한 화재의 경우 아주 빠르게 불타올라 산소가 빠르게 고갈되고 실내에 연기가 빠르게 퍼지면서 산소 부족 및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인한 호흡곤란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져서 창문을 열 생각을 못하고 질식하는 경우가 많다. 비닐봉지를 뒤집어 쓰면서 장난치다가 호흡곤란이 오자 뒤집어 쓴 비닐을 찢거나 벗지 못하고 질식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경우와 같다. [33] 이 영상에서 엠프 스피커의 소리가 얼마나 큰지 대강 느껴 볼 수 있다. 참고로 이 물건은 상당한 고가다. [34] 실제로 해당 사건의 범인 안인득과 1살 차이이며 사건도 3개월 차이로 비슷한 시기에 발생하였다. [35] 사진 속에서(특히 하단) 드러누워 다리만 보이는 사람이 피의자, 얼굴을 들이대는 사람이 경관이다. [36] 상습방화범이 아닌 이상 휘발유나 시너 같은 즉화성 액체로 방화를 시도한 방화범은 열에 아홉은 크든 작든 화상을 입기 때문에 화재 조사관이나 보험 조사원들은 탐문을 할 때 관련자들의 얼굴이나 사지를 유심히 살핀다. 대구 지하철 참사의 피의자 김대한도 이렇게 잡혔다. [37] 키가 크고 잘 생긴 외모 탓에 인기가 많았다고 하며 바람기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지도 유전인지 키가 큰 편이다. [38] 아오바가 인터넷에 글을 투고하던 당시 교토 애니메이션에서 여성 감독은 야마다 나오코 밖에 없다. 야마다 나오코가 맞다면 아오바 신지는 자신이 죽이려고 했던 야마다 나오코는 죽이지 못하고 억울한 사람들만 죽인 것이 된다. [39] 도쿄 대공습 당시 육군항공대 책임자였던 커티스 르메이가 기존 고폭탄 60%, 소이탄 40% 비율이 아닌 100% 소이탄으로 바꿔서 폭탄이 바닥날 때까지 쏟아 부은 이유도 미군 자체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일본의 도시 구조 자체가 화재에 취약했기 때문이다. [40] 화재 전반으로 보자면 전 토에이 애니메이션 연구소장 야마구치 야스오의 저서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 1923년 관동대지진과 1945년 일본 본토 공습 때도 애니 제작 스튜디오들이 파괴되거나 불타 버렸다고 서술되었고 영국 아드만 스튜디오가 2005년 전기화재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해 스튜디오가 전소한 적이 있다. [41] 마츠모토 시 사린가스 살포사건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의 사망자 수를 합친 것보다 사망자 수가 더 많다. [42] 쿄애니는 신인 혹은 인지도가 낮은 무명급 성우들을 적극 기용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렇게 캐스팅된 성우들 중에 업계에서 입지도를 다진 성우들이 많은 편이며 트위터로 지속적으로 추모하는 계열도 성우 쪽이다. 자세한 사항은 교토 애니메이션 문서 참고. [43] 번역: 일을 하자. 소설을 쓰고, 만화의 원작을 쓰자. 책을 읽고 게임을 즐기고 애니메이션과 영화도 보자. 나에게 아름답고 가치있는 것들을 하나라도 늘리자. [44] 타케모토 야스히로가 특히 적극적인 열의를 보여 오랫동안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정도였다. 작가도 타케모토 감독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여러번 전했다. [45] 벨기에, 프랑스 만화의 캐릭터들이 추모하는 모습을 올렸다. 땡땡의 모험 등이 눈에 띈다. [46] 처음에 불을 내는 방화(放火)를 불을 막는 (防火)라고 잘못 적었으나 이후 '방화' 한자의 한국 한자음이 같다는 점으로 이해한 일본인들의 제보로 이틀 만에 수정되었다. [47] 쿄애니 최고 흥행작 중 하나로 꼽히는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1기의 연출이 바로 이 사람이다. [48] 자민당과 공명당, 그리고 민주당 교토부연합, 사민당 교토부연합이 공동으로 후보추천. 한국에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과 외모가 닮은 것으로도 유명하며 이름 때문에 KADOKAWA가 쿄애니를 비난했다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참고로 카도카와의 한자 표기는 角川이라서 음독만 같을 뿐이지 실제로는 다르다. [49] 재무성과 금융청의 전신인 대장성 출신인 재정학자. [50] 현재 이곳은 한국 쪽 인터넷 뉴스를 근거로 반박하는 이와 편승해서 혐한 발언을 하는 이들로 들끓었지만 되려 마음 20개 이상의 리플을 보면 루머를 퍼뜨리는 일부 악유저들을 지적하고 있다. 그 중에는 아예 한국 포털 사이트에서 쿄애니 방화 참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이미지를 가져와서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51] TVA 혹은 극장판 중 어느 쪽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52] 유족측에서 원하지 않아 필명으로 나온 직원들도 있다. [53] 애니플러스에서는 "현지 방송국 사정으로 인한 결방"으로 간주하고 2화 재방송으로 대체 편성했다. # 다만 이에 대해선 비판점과 논란점이 좀 있다. [54] 이 작품의 메인소재가 원자력 사고라 연기될 수 밖에 없었으며 2년이 지난 2013년에 애니화가 이뤄졌다. [55] 추모 영상은 7월 19일 기준으로 비공개 처리되었다. 번역판 | 번역글 [56] 공교롭게도 해당 에피소드의 나레이션을 담당했던 최원형은 실제로 교토 애니메이션 작품을 더빙한 적( 풀 메탈 패닉? 후못후 사가라 소스케, Kanon 아이자와 유이치)이 있었다. [57] 방화 과정에서 피의자에게 불이 옮겨붙었다는 공통점이 있는 사건이다. 다만 김대한은 병원에서 치료 중 체포되었다. [58] 사건 2주기에 만화가 후지모토 타츠키가 그린 헌정작이다. 작가 본인의 언급은 없었으나 작품 속 캐릭터들의 이름과 내용으로 관련 내용임을 짐작할 수 있다. [59] 방화 사건의 생존자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작품. 시대극이지만 실제로는 이 사건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다룬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해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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