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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15 21:38:39

계성군

조선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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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종의 왕자
계성군 | 桂城君
봉호 계성군(桂城君)[1]
본관 전주 이씨
이름 순(恂)
수견(壽堅)
부왕 성종
생모 숙의 하씨
부인 안성군부인 원주 원씨
(安城郡夫人 原州 元氏)
자녀 슬하 1녀 1남
서장녀 - 이수철(李壽鐵)
양자 - 계림군 이유(桂林君 李瑠)
묘소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면 송전리
생몰
기간
음력 1478년 미상 ~ 1504년 미상
양력 1478년 미상 ~ 1504년 미상
1. 개요2. 행실3. 가족 관계
3.1. 후손

[clearfix]

1. 개요

조선 중기의 왕족. 성종의 2남이자 서장자이다. 어머니는 숙의 하씨이며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특하였으나 성인이 돼서는 행실이 좋지 못하였다. 26세로 조졸하였고 친형제는 없으며 전주이씨 계성군파의 파시조이다.[2]

2. 행실

계성군은 성품이 거만하고 포악했으며 시중잡배들과 어울려 다니며 나쁜 짓을 일삼았다. 심지어 그의 종들이 유생들을 함부로 구타하고, 형조의 하인들을 집안에 가두기도 했다. 이일로 조정이 시끄러웠으나 연산군이 그를 총애하여 벌주지 않았다. 또한 여색을 밝혀 궁궐에 머물던 기생(흥청)들과 자주 어울리며 가까이 하기도 했다.

계성군이 종실의 기강을 잡는 종부시 제조였을 때 그의 옳지 못한 행실이 문제가 되어 여러번 탄핵 당했으나, 연산군은 오히려 계성군을 비호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속 계성군의 행실을 이르자면,
전교하기를,
"가흥청(假興淸) 일소류(一笑留)가 계성군(桂城君)과 간통[通奸]한 일을 곧 승복(承服)하지 않다가 형세가 숨길 수 없게 되어서야 스스로 고하였으니, 가두고 국문(鞫問)하라." 하였다.
연산군일기 58권, 연산 11년 5월 7일 신묘 3번째기사
대사헌 민휘(閔暉)는 아뢰기를,
"종부시(宗簿寺)는 종친(宗親)들을 규찰하는 곳인데, 자신이 바르지 못하면 어찌 아랫사람들을 단속할 수 있겠습니까? 계성군(桂城君) 순(恂)은 법을 범한 일이 매우 많으므로, 본시(本寺)의 제조(提調)에는 적합하지 않으니 바꾸기를 청합니다."
연산군일기 47권, 연산 8년 12월 12일 경술 1번째기사
대사간 민휘(閔暉)가 아뢰기를,
"지난번에 계성군이 형조(刑曹)의 하인을 함부로 가두었으므로, 신 등이 국문하기를 청했는데, 전하께서 종친(宗親)이라 하여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국문을 못하도록 명령하시므로, 신이 감히 다시 아뢰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종부시는 종친들을 통솔하여 다스리는 곳인데 이순(李恂)은 제조에 아주 적합하지가 않습니다."
연산군일기 47권, 연산 8년 12월 13일 신해 3번째기사
계성군(桂城君) 이순(李恂)이 삭제(朔祭)의 헌관(獻官)으로서 병을 핑계하고 향축(香祝)을 받지 않으니, 왕이 이르기를, "계성군의 병이 그리 대단하지 않은데도 향(香)을 받지 않으니 심히 불가하다. 물건에 비유한다면, 무릇 나무는 반드시 북돋우고 가꾸어 주어야만 잘 자라는 법인데, 계성군에게 붙어 있는 자들은 모두 교만하고 어리석은 종들뿐이니, 누가 그 옳지 않은 것을 바로잡으랴. 그러나 병이 있다고 말하므로 국문할 수도 없으니, 버려두고 의원을 보내어 문병하도록 하라." 하였다.
연산군일기 12권, 연산 2년 1월 2일 신사 1번째기사
종부시(宗簿寺)가 아뢰기를,
"계성군(桂城君) 이순(李恂)이 까닭 없이 취학(就學)하지 않으므로, 직장(直長) 이분(李芬)이 그 집에 가서 물으니, 순(恂)이 관대(冠帶)를 벗은 채 신발만 신고 거만스럽게 나와 보았다는데, 이분이 연유를 갖추어 계(啓)하였습니다." 하였다.
승지들이 아뢰기를,
"전하께서 소문(召問)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묻게 하신 것은 존대하시는 때문이니, 순이 마땅히 관대(冠帶)하고 나와 맞아야 할 터인데, 소홀하고 거만하여 이처럼 불공하니, 신하된 예가 없습니다. 문책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내가 친히 묻겠다." 하였다.
연산군일기 13권, 연산 2년 3월 24일 임인 3번째기사

3. 가족 관계

3.1. 후손

첨정 원치의 딸 안성군부인 원주 원씨와 혼인했으나 자녀가 없었고 첩에게서 딸 1명을 얻었다. 하여 사후에 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둘째 손자인 계림군 이유(桂林君 李瑠)를 양자로 들였다. 계림군은 중종 시기 정치적으로 대윤(大尹) 세력에 속했으며 을사사화 때 왕위를 찬탈하려 했다는 모함을 뒤집어 쓰고 억울하게 사형당했다.

계림군은 슬하에 연양군, 금양수, 운양수, 정양군, 은양군 등 5남을 두었는데 위로 세아들에게는 후사가 없었고 아래 정양군과 은양군 두아들에게서 손자를 10여 명을 두어 후손들이 퍼져나갔다. 대대적으로 무과 급제자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 무림군파, 덕흥대원군파와 더불어 전주 이씨 문중의 3대 무관 집안이라 할 수 있다.

정양군의 후손은  제주도에 은양군의 후손은  경기도  고양시에 다수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의 후손들이 번성하여 오늘날의  전주 이씨 계성군파를 이루고 있다. 종통상으로는 계림군이 후사가 없는 계성군의 양자가 되었으므로 계성군파라고 불리나 실제 혈통으로는 성종의 친형 월산대군의 직계 후손들이다. 이 때문에 매년 월산대군의 기신제에 참석하며 의경세자(덕종)와 인수대비(소혜왕후)의 경릉 제향때 계성군파 후손이 종헌관을 맡기도 한다.

15대손에 제주 4.3 사건의 주역 이덕구가 있다.

[1] 봉호는 경상도 창녕에 있었던 옛 고을인 '계성(현 경상남도 창녕군 계성면)'에서 따왔다. [2] 전주이씨 계성군파 후손들은 종통으로는 계성군파이지만 실제 혈통으로는  성종의 친형 월산대군의 직계 후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