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2-03 04:22:13

경덕궁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한성부
경모궁 계동궁 남별궁 누동궁 도정궁
명례궁 사동궁 선희궁 수진궁 순화궁
안동별궁 어의궁 연희궁 영수궁 영희전
용동궁 운현궁 이현궁 인경궁 인덕궁
자수궁 죽동궁 창성궁 창의궁 칠궁
태화궁
경기도
강화행궁 개성행궁 경덕궁 남한산성 행궁 낙생행궁
낙천이궁 노량행궁 목청전 수원행궁 수창궁
시흥행궁 안산행궁 안양행궁 양주행궁 용흥궁
월미행궁 이천행궁 이태조 행궁 진위행궁 통진행궁
파주행궁 풍덕행궁 풍양궁 포천이궁 화성행궁
충청도
노은리 행궁 목천행궁 보은행궁 신도안 대궐 온양행궁
전의행궁 직산행궁 초정행궁 천안행궁
전라도
격포행궁 경기전 무풍 명례궁 전주행궁 보길도 행궁
경상도
집경전
평안도
영변행궁 영숭전 영유행궁 의주행궁 평양행궁
풍경궁
황해도
배천행궁 평산행궁 해주행궁
강원도
고성행궁 분수령 행궁 상원사 행궁 춘천이궁
함경도
영흥본궁 함흥본궁
행정구역은 조선시대 당시 기준 }}}}}}}}}
파일:external/photos.wikimapia.org/01_big.jpg
<colbgcolor=#bf1400> 경덕궁의 대문. 대문과 비각을 빼면 터만 남아 있다.
1. 개요2. 역사3. 여담4. 관련 문서

1. 개요

敬德宮

경기도 개성시에 있었던 태조 이성계의 두 잠저 중 한 곳.[1] '추궁(楸宮)', '추동궁(楸洞宮)'이라고도 했다.

2. 역사

조선 건국 이후, 태조는 자신의 을 넓혀 짓고 경덕궁이라 이름을 붙인 뒤 신하들에게서 조회를 받았다. 그리하여 1394년(태조 3년)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기까지 이곳에서 거주하였다. 1398년(태조 7년)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수도를 한때 개성으로 다시 옮겼을 때, 태종(조선) 또한 이 곳에서 거주하였다. 태종이 한양으로 환도한 뒤에도, 이후의 왕들이 개성에 들르거나 근교의 제릉, 후릉을 참배할 때에는 이 곳에서 묵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불타고, 지금은 대문과 경덕궁 터였음을 알려주는 비각만 남아 있다. 조선 숙종이나 영조가 개경을 방문했을 때 경덕궁 터를 들러서 둘러보고 감회에 젖어 시를 짓기도 했다. #

3. 여담

4. 관련 문서



[1] 다른 한 곳은 목청전. [2] 북한에서는 평부선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