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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1-08 06:50:40

가에타노 시레아

가에타노 시레아의 역임 직책
{{{#!folding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마르코 타르델리
(1984~1985)
가에타노 시레아
(1985~1986)
안토니오 카브리니
(1986~1987)

유벤투스 FC 주장
주세페 푸리노
(1976~1984)
가에타노 시레아
(1984~1988)
안토니오 카브리니
(1988~1989)
}}} ||
가에타노 시레아의 수상 이력
{{{#!folding ▼ 둘러보기 틀 모음
베스트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27px-UEFA_Euro_1980.svg.png

파일:Guerinsportivologo.png
Player of the Year 1982
수상
파올로 로시
2위
가에타노 시레아
3위
카를하인츠 푀르스터
호베르투 파우캉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 ||
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
파일:가에타노 시레아.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가에타노 시레아
Gaetano Scirea
출생 1953년 5월 25일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주 밀라노 광역시
Cernusco sul Naviglio
사망 1989년 9월 3일 (향년 36세)
폴란드 인민 공화국 우치 주 밥스크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78cmㅣ 체중 75kg
직업 축구 선수 ( 스위퍼 / 은퇴)
축구 코치 은퇴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아탈란타 BC (1970~1972 / 유스)
아탈란타 BC (1972~1974)
유벤투스 FC (1974~1988)
기타 유벤투스 FC (1988~1989 / 수석 코치)
국가대표 78경기 2골 ( 이탈리아 / 1975~1986)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4. 은퇴 이후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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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계 최고? 수비에서라면 그건 시레아를 다르게 부르는 이름이다. 모든 수비수들은 시레아의 "그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디에고 마라도나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 유벤투스에서에서만 552경기에 출장한 레전드로 주장도 역임하였다.

1974년부터 1988년까지 유벤투스에서 활약하고 은퇴를 했고 그해 유벤투스의 수석 코치로 임명됐으나 1년 3개월 뒤 1989년 9월 3일에 유벤투스와 구르니크 자브제 UEFA컵 경기 해설을 위해 폴란드 자브제로 가던 도중 밥스크에서 36세의 나이로 교통사고로 사망한 비운의 사나이.

대표적인 업적으로 미셸 플라티니, 파올로 로시, 마르코 타르델리, 클라우디오 젠틸레 등과 함께 유벤투스의 전성기를 이끌고, 이탈리아 44년 만의 월드컵 우승을 이룬 것이 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아탈란타 BC 유스에서 1군 팀으로 승격하며 프로에 데뷔하였다. 팀의 핵심 선수였지만 세리에 B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유벤투스 FC가 시레아를 영입한다. 시레아는 안토넬로 쿠쿠레두, 클라우디오 젠틸레, 안토니오 카브리니와 함께 포백을 이루며 UEFA컵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1984-85 시즌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리버풀 FC를 상대로 승리하여 빅 이어를 들어올렸다.[1]

2.2. 국가대표 경력

1975년에 국가대표에 데뷔한 시레아는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4위에 그쳤고, UEFA 유로 1980에서는 체코슬로바키아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4위에 그쳤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우승에 공헌했는데, 이때 서독과의 결승전에서 최후방부터 드리블을 몰고 가서 원투 패스로 독일 진영을 완전히 유린하고 마르코 타르델리의 득점을 도와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16강에서 탈락했고, 이후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3. 플레이 스타일

이탈리아식 리베로의 상징. 보다 공격적이고 과시적인 성향이 강했던 독일식 리베로와는 다르게 안정성을 우선한 경기 운영을 꾀했으며, 침착성에서 비롯된 리딩 능력이 뛰어났다. 상당히 지능적인 선수로, 상대의 패스 흐름을 정확히 예측하여 차단하는 인터셉팅 능력, 수비 조율, 커버 플레이, 안정적인 클리어링, 정교한 태클 등, 커맨더형 수비수의 진가를 보여주었다.

시대를 풍미한 리베로답게 그의 공격력 또한 짚어보자면, 중앙에서 뿌려주는 정확한 중장거리 패스로 팀 빌드업의 한 축을 담당하는가 하면, 타이밍을 빼앗아 한 번에 수비 지역까지 들어갈 수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드리블링이나 스피드가 뛰어났다기보다 볼을 운반할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잘 잡았던 탓이 크다. 공격 전개 시 자칫 실수로 팀을 위기에 빠뜨리는 모험적인 플레이를 극도로 기피했으며 철저하게 계산된 플레이 내에서 적재적소에 공격 가담을 하는 확고한 플레이 스타일을 지니고 있던 선수로 회자된다.

4. 은퇴 이후

이후 1988년까지 유벤투스에서 활약하고 은퇴를 했고 그해 유벤투스의 수석 코치로 임명됐으나 1년 3개월 뒤 1989년 9월 3일에 유벤투스와 구르니크 자브제의 UEFA컵 경기 해설을 위해 폴란드 자브제로 이동하던 중 밥스크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향년 36세.

그 후 1990년 신축된 스타디오 델레 알피에는 '쿠르바 가에타노 시레아'라는 이름의 서포터석이 설치되었고, 유벤투스 측은 매년 시레아를 기리는 행사를 열고 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기타

파일:GOAL_Defender.jpg }}}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수비수 5인을 선정했는데, 1980년대 수비수들 중 2위에 이름을 올렸다.

[1] 하지만 이날은 헤이젤 참사가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