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29:57

풍신(천관사복)

南风에서 넘어옴
남양장군
풍신
风信
<colcolor=#8A402E> 이름 풍신(风信)
호칭 구양진군(俱阳真军)
구양장군(俱阳将军)
거양진군(巨阳真军)
거양장군(巨阳将军)
남양진군(南阳真军)
남양장군(南阳将军)
[스포일러]
남풍(南风)
188cm
소속 천계
성우
[스포일러]
파일:중국 국기.svg 문삼[애니메이션]
파일:중국 국기.svg 궈하오란[오디오드라마]
파일:일본 국기.svg 후루카와 마코토[애니메이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최승훈[애니메이션]
파일:미국 국기.svg 필 송[애니메이션]
배우 파일:중국 국기.svg 초개중[길성고조][풍신]
[스포일러]
파일:중국 국기.svg 정이빈[길성고조][남풍]

1. 개요2. 작중 행적
2.1. 드라마 길성고조

[clearfix]

1. 개요

묵향동후 BL 소설 천관사복》의 등장인물. 남양장군(南阳将君). 동남쪽을 관장하는 무신으로, 사당 8천 채를 지녔으며 민간 백성들의 열렬한 추앙을 받고 있다. 주로 사용하는 법보는 풍신궁(風神弓).[10]

팔백 년 전 선락궁 태자전의 개선장군이었다. 과거 태자 사련의 호위무관으로, 사련이 열네 살이었을 때부터 호위를 맡았다. 사련과 같이 태창산 황극관에서 함께 자란 인물로 사련이 비승하여 자신을 보좌하는 소신관으로 풍신을 지명해 나란히 신관이 되었으며, 사련이 폄적되자 자신도 나란히 땅에 떨어졌다. 이후 사련을 떠나서 다시 비승해 남동쪽 방위를 관장하는 무신이 되었다. 모정과는 항상 티격태격하는 사이로, 이 때문에 두 신관을 보좌하는 소신관들은 물론이고 신도들 끼리도 사이가 매우 나쁘다. 원래 이명은 구양장군이었지만, 과거 인간계의 어떤 왕이 구양을 거양으로 잘못 적어 이명이 거양장군(巨阳将军)이 된 일이 있었다.[11][12] 이상하게 여자들의 기원이 늘어났다고 의아해하던 중 왕이 죽고 나서 사태를 알아챈 풍신이 이명을 남양으로 바꿔달기는 했지만 이미 거양이라는 별명이 퍼질대로 퍼져서 지금도 심심치 않게 거양이라고도 불린다. 이런 사정 때문에 남양전을 찾는 신도들은 여자들이 대단히 많다.[13] 입이 험한 편이지만 평소에는 체면치레하느라 자제하는 모양. 하지만 흥분하면 버럭 화를 낸다. 과거사 때문에 사련을 꺼리는 편이지만 잘 보면 은근히 신경써주고 있다.[14]

[스포일러]
이후 태아령의 친부가 바로 그였음이 밝혀진다. 하지만 처음에는 자신의 아들인지도 알아보지 못한다.

남양장군 풍신 밑에서 일하고 있는 소신관으로는 중천정의 무관인 남풍(南风)이 있다. 여군산 사건 때 사련을 돕는 지원자로 자원해서 내려왔다. 현진전의 부요와는 티격태격하는 사이. 사련이 여군산 사건을 해결하고 반월관 사건에 관여하는 듯 하자 부요와 함께 자원해 내려왔다. 이후 반월국 조사 때에도 자원해서 사련을 도우러 왔다. 삼랑이 요괴가 아닐지 의심하여 경계해서 요괴의 본모습을 비추는 홍경검을 들여다보게 유도했으나, 홍경검이 부러져 버려서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스포일러]
사실 남풍은 애초에 존재하는 소신관이 아니며 사련을 돕기 위해 풍신이 만든 분신이다. 애초에 풍신과 성격이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에 사련은 이미 눈치 챈 상태였다.

2. 작중 행적

2.1. 드라마 길성고조

드라마판인 길성고조에서는 초개중이 풍신 역을 맡았고, 정이빈이 남풍 역을 맡았다.


[애니메이션] [오디오드라마]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길성고조] [풍신] [길성고조] [남풍] [10] 군오가 하사한 은백색의 활로 영광을 응결해 화살을 만든다. 사련에 의하면 몹시 골치 아픈 법보라고 한다. [11] 왕이 적은 글자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가 없어서 다른 신전들도 구양에서 거양으로 이름을 바꿔달았다(...). [12] 구양과 거양은 발음이 비슷하지만 ‘거양’의 경우 남자의 그것이 매우 크다, 정력이 훌륭하다는 뜻이 된다. [13] 하지만 풍신은 배명과 달리 여색을 밝히지도 않고, 오히려 여자가 말을 걸면 사색이 돼서 자리를 급하게 뜰 정도로 숙맥에 가깝다. [14] 사련이 세 번째 등선을 하면서 궁전 하나를 박살을 냈는데, 팔백팔십팔만 공덕을 대충 갚았다는 셈으로 치고 넘어간다. (사련은 절대 갚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나오기도 했었다.) 사련의 황소고집 덕에 선락국이 그야말로 정말 참혹한 일을 당했을 때에는 당장 먹고 살 게 없었기 때문에 사련을 저버리고 등선해서 신관이 되었다. 그걸 마음에 담고 신경 쓰는 것으로 추정.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53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53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